삭제된 영화, "그 때 그사람들"

  • 79호
  • 기사입력 200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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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그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러저러한 말이 많았던 영화, 나오면 파장이 더 증폭될 것이라고들 예측되었던 한 영화가 있다. 제작사와 배급사가 중견 영화사이어서도 아니고, 인지도 높은 감독이나 묵직한 출연진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 영화가 다룬 내용의 무게 때문이었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획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왔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10.26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이다. 극비리에 촬영이 이루어졌다고도 하고, 관련인물이나 일부정치인으로 인한 제작중단을 우려해서 언론에 기사가 나가는 것도 통제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결국 영화 상영을 눈앞에 두고 영화에서 다루어졌던 ‘그때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아들이 일어섰다. 그는 아버지의 인격권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이름'으로 이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여 일부 삭제 후 상영하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우리 역사상 법원에 의해 영화가 삭제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세 장면이 잘려나간 채, '그 때 그 사람들'을 우리 앞에 내 놓았다.

그 사람의 망령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영화에 대한 검열이 헌법상 명시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예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초기인 ‘1962년 헌법’ 밖에 없었다. 1962년 헌법 하에 제정된 당시 영화법상의 ‘영화상영 사전허가제’는 그 이후의 헌법이 채택한 검열금지원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땅의 많은 영화를 상영되기도 전에 가위질을 하였다. 영화의 사전 검열은 1996년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검열을 인정하던 영화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1996년 위헌결정을 내린 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1997년부터 발효된 영화진흥법이 영화의 종류를 전체관람가, 12세관람가, 15세관람가, 18세관람가로 분류하고서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문제되는 부분을 영화제작사가 스스로 삭제해서 재심을 받을 것을 내용으로 하는 등급분류보류제도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상의 검열금지의 원칙을 등급보류제도에 대해서도 적용하여 등급분류보류제도에 대해서도 다시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온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사법판단에 대해 말이 무성하다. ‘사법만능주의’에 대한 우려도 있고, 사법부에 의한 ‘사전검열’이라는 비판도 있다. 종래 행정부에 의해 일상화된 사전검열제가 두 차례에 걸친 위헌결정을 받은 후에 사법부로 옮겨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성급한 진단도 있다. 박정희시대에 탄생한 사전검열의 망령이 그를 다룬 한 영화를 계기를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납득되지 않는 삭제이유

순전히 법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영화는 법원에 의해서도 절대로 삭제되지 말아야 하는 존재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삭제사건의 문제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자의 주장내용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에 있다. 법원은 “이 영화는 허구에 기초한 블랙 코미디여서 풍자가 본질적이며, 공인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어느 정도 참아야 한다”며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신청권자가 문제삼지도 않은 세 장면인 부마항쟁 시위,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 장면 등 역사적 사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장면의 삭제를 명하였는데, 이 장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격권이나 명예와는 무관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장면이 삭제되어야 하는 이유로 판결문에 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다큐멘터리 장면이 영화가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10·26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문제의 다큐멘터리 부분이 없더라도 영화 속 등장인물이 실제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다큐멘터리 장면을 보고 실제와 허구의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혐의를 받을 사람은 판사가 염려하는 ‘관객’이 아니라 관객의 수준을 염려하는 ‘판사’일 수도 있다.

삭제사건의 의미지평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삭제사건을 보는 세간의 시각은 다양하다. 구시대의 잔존 권력이 압력과 힘을 행세한 정치적인 사건이거나 법원이 정치적인 고려를 과도하게 고려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분출하려는 세력과 사회전반에 걸친 반동세력간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사람들' 삭제사건을 그러한 사회적인 의미지평에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이 사건이 우리사회의 성숙도와 일반시민의 이성능력과 판단능력을 무시하는 한 판사의 오판에서 비롯된 해프닝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판사는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보호와 감독이 필요한 ‘미성년자’ 내지 ‘한정치산자’와 같은 부족한 사람들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는 그 판사가 제시하고 있는 또 다른 삭제이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법률전문가임에도 그는 “문제의 (다큐멘터리) 장면들이 작품의 완성도나 흐름상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영화평론가적 수준의 유능함까지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감독은 문제의 장면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지난 2월에 있었던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도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사람들, 지금 그 사람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 '한사람의 그때'를 풍자하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에게는 그 한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그때'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제각기 다른 생각과 다른 사정을 가진 그들의 그때를 우리가 온전히 ‘허구’로서 감상하든 아니면 그것을 역사적 ‘실제’로 감상하든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역사적 중대 사실을 다양한 차원에서 해석하고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개인적 차원의 일로 치부하거나 사회적 차원에서 반성적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자유도 있으며, 그러한 능력과 자유를 누릴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예술 창작자들 역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예술적 표현물을 창작함에 있어 스스로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표현을 할 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예술작품의 가치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월권이고, 합리적인 토론과정에서 상식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법원이 개입하는 것은 법원의 오만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마땅히 자제해서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국가후견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국가 후견적 간섭주의는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 발전, 더 나아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장애물을 설치한 ‘지금 그 사람들’이 먼 훗날 어느 탁월한 예술가의 작품소재가 되어 다시 ‘그때 그 사람들’로 희화화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