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답한다 - 영화 가타카 (Gattaca)

  • 85호
  • 기사입력 2005.06.28
  • 취재 황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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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인간본성에 관한 두 가지 이론

인간의 자질과 능력은 선천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교육과 환경에 의해 무한정 변할 수 있는 것인가? 해묵은 물음이지만 여전히 답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에 답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고 무수한 논쟁을 거쳐 왔지만 여전히 난공불락(難攻不落)의 한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인간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무한히 달라질 수 있는 비어있는 존재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1998년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가타카는 이와 같은 통념적 인간상과 정반대의 인간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영화 가타카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질과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에 그 유전자에 의해 우성인간과 열성인간으로 구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전자조작을 통해 열성인자를 제거하여 DNA 맞춤형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미래사회가 그려지고 있다.

1998년 단순한 SF영화로서만 가타카를 접했던 나는 2005년 새로운 과학혁명의 시대에 이 영화를 다시 찾았다. 2001년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의 유전공학의 급격한 발달과 더불어 들려오는 갖가지 개가와 미래예측 때문에 그동안 상상 속에 머물러 있던 가타카의 미래사회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장정일은 영화란 두 번 본 것만이 영화라고 단언하고 있다. 영화의 장정일적 의미에서 보면 영화 가타카도 영화의 범주 속에 들어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타카’의 미래사회

영화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 분)는 심장질환에, 우울증, 게다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31살에 사망할 것으로 결정되어 있는 이른바 열성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유전적 우열에 따라 계급이 분류되어 있는 사회에서 열성인간 빈센트는 이룰 수 없는 우주비행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우성인간에게만 진입이 허용되어 있는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빈센트가 유전자 중개인으로부터 우성유전인자를 구매하면서부터 꿈을 향한 노력이 개시된다. 빈센트가 구입한 우성유전자는 교통사고로 신체 장애인이 되어 꿈을 이룰 수 없는 제롬(쥬드 로 분)의 유전자였고, 그때부터 빈센트는 제롬으로 행세한다.

가타카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평가받으면서 우주비행 날짜를 눈앞에 두고 있던 빈센트는 우성인간 아이린(우마 서먼 분)과의 사랑도 시작한다. 그 즈음 평소 빈센트의 유전자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감독관이 가타카 내부에서 피살되면서 부터 빈센트의 우주비행의 꿈이 좌절될 위기를 맞게 된다.

유전공학적 현실사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할 때 유전적 역할의 가능성은 충격적일 만큼 강력한 사실을 말해준다. 2001년 인간게놈의 완전한 배열이 발표되었고, 그와 함께 뇌에서 활동하는 활성유전자 등 각 유전자와 그 산물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후 면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의 어느 조합이 정상, 비정상, 또는 특별한 정신능력과 관련되어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인간의 학습, 느낌, 행동을 위한 뇌 체계들을 빚어내는 과정인 태아 발생의 인과관계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유전자치료를 통해 불치 또는 난치의 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외모와 지능 등 자질을 바꿀 수 있는 유전자조작가능성의 어두운 면 때문에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후자의 입장에서는 유전자조작가능성이 현실화되면 기존의 계급불평등이 유전자조작으로 고착화된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영화 가타카도 인류의 미래가 유전자계급사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한다. 가타카(gattaca)라는 영화제목 자체에서도 기존의 계급불평등 사회가 유전자조작으로 고착화된 생물학적 불평등사회로의 전환이 암시되고 있다. 미래의 우주 항공회사의 이름인 가타카는 염색체를 이루는 4가지의 염기, A(아데닌), G(구아닌), T(티민), C(시토신)의 서열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거부감의 원천과 신화의 미덕

인간의 선천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생물학적 사실’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면서 그러한 과학적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비도덕적인 개념으로 배척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한다(스티븐 핑커, 빈서판).

첫째,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다. 둘째,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면 인간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 무익하게 된다. 셋째, 사람의 행동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 책임을 행위주체에게 물을 수 없게 된다. 넷째,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존재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두려움은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존속되었던 미국과 서유럽의 강제불임법, 이민법, 결혼금지법과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던 나치정권의 단종법 등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과 우생학을 악용한 사례로 현실화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들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인간본성에 관한 생물학적 사실 보다는 차라리 근거 없는 신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세계 각국의 법체계도 인간의 선천적 구조를 거부하면서 합리적인 행위선택을 할 수 있는 의사자유를 가진 인간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사실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을 구별하는 이성적 법정책

그러나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은 사실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므로 이것만을 토대로 해서는 원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폭넓게 실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 개인들 간에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에 대한 과학적 발견은 억눌러야 할 금단의 지식이 아니라, 자유와 물질적 평등간의 취사선택을 지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익한 정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생물학적 사실을 토대로 법정책을 펴나갈 때에는 ‘생물학적 사실’과 ‘지향해야 할 인간의 가치’를 구별하는 것을 핵심적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에 따라 재능이 다르다면 그들은 최대한 노력한다고 해도 가난과 무지 등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향해야 할 인간의 가치를 척도로 하여 다시 작업을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수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수정되어야 할 불평등 상황이라고 평가내릴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의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불평등 상황 자체가 간과되어 우리의 검열대에 오르지 조차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결정론의 입장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선천적 차이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아가 오늘날 행동유전학에서는 유전자조합의 역할을 중요시 하면서 하나의 유전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행동을 낳는다고 한다. 요컨대, 생물학적 차이 그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뚤어진 사상이 그러한 차이를 악용하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가타카

이러한 의미맥락에서 나는 7년 만에 다시 본 영화 가타카에서 유전자적 차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적어도 나는 가타카의 우울하고 어두운 공간에서도 여러 줄기의 밝은 조명 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다.

영화, 가타카는 열성인간이 의지와 노력에 따라 우성인간을 이길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열성인간의 건전한 정신이 우성인간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적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도와줄 수도 있음을 예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범죄적 인자를 가지지 않은 우성인간이 맹목적 이기심에 사로잡히면 살인까지 서슴지 않을 수 있지만 범죄적 형질을 타고 났더라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형질이 퇴화되어 차단될 수 있음을 대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차디찬 회색공간에서도 열성인간을 도와주는 따뜻한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지성과 감정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이해를 일깨워 줄 모닝콜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러한 깨어남과 발견의 시대에서도 만약 우리가 평화와 평등 또는 과학과 진리에 대한 헌신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려 한다면, 인간에 관한 근거 없는 ‘신화’들만 억지로 고수하면서 그러한 가치들을 지키려는 태도를 과감하게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하여 인간배아에 대한 종교계와 과학계의 대립에서도 신화와 과학의 일대 회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가타카는 장차 신화를 버리지 않고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음을 조용하게 외치고 있다.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