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X)파일 사건과 영화, ‘닉슨’(Nixon)

  • 89호
  • 기사입력 2005.08.28
  • 취재 황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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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

옛 국가안전기획부 도청사건(이하 엑스파일사건이라 부른다)으로 나라 전체가 의혹과 혼란에 빠져있다. 도청사건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제38대 미국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닉슨 후보 측 비밀공작반이 상대방 민주당 후보의 움직임을 알아내려고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의 한 빌딩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발각된 사건을 말한다. 처음엔 단순한 절도사건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워싱턴 포스트지의 젊은 기자 두 명이 내막을 파헤치면서 사건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닉슨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 ‘닉슨’은 닉슨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전기적 영화만은 아니다. 영화, ‘닉슨’은 권력유지와 권력쟁취를 위한 파워게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러한 파워게임을 움직이는 기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재평가하기 위한 영화제작 소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후 30여년이 지난 후 현실의 도청사건을 목도하고 있는 나는 바로 이 때문에 비디오가게의 선반 높은 곳 구석진 곳에서 아무에게도 선택되지 않고 있는 영화 ‘닉슨’을 일부러 끄집어 들었다.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과 한국의 엑스파일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과 엑스파일사건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두 사건 모두 도청문제를 핵심 고리로 가지고 있다. 도청을 시도한 주체도 국가기관이고, 사건의 전모를 밝힌 것도 언론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의 쟁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 그 자체는 미수에 그쳤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도청연루여부가 핵심적인 관건이 되었다. 닉슨은 특별검사를 해임하고 법무장관까지 교체하고 국가보안을 이유로 개입의혹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백악관 집무실의 대화를 담은 비밀테이프의 공개마저 거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될 18분 30초 분량이 누군가에 의해 삭제된 채 총 4천여 시간에 달하는 문제의 테이프가 공개되고 마침내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엑스파일 사건에는 도청의 주체가 옛 국가안전기획부(현재 국가정보원)라는 점이 이미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당초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도청행위 주체 및 도청된 내용에서 드러난 사실을 증거로 하여 그에 연루된 자들에 대한 형사책임이 가능한 지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 이후 도청한 결과물을 담고 있는 테이프가 수백개 더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고 발견됨에 따라 문제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행위 그 자체의 불법성문제와 도청된 내용의 공개문제를 분리하여 공개문제에 관한 법리적 문제점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문제에 대한 법리적 논란

국정원 엑스파일 사건에서 문제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라 도청된 내용의 공개문제의 해결에 대한 결론이 달라진다. 우선 불법적인 도청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은 그 내용의 무차별적 공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아무리 이미 도청된 것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공개하게 되면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또 다른 불법행위가 된다는 것이 논거이다. 이러한 태도에는 국가기관에 의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도청이니 만큼 이를 공개하는 것은 국가의 자기제한의 원리인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건의 초점이 도청된 내용의 불법성을 규명하는 일에 있다고 보는 입장은 도청행위 자체의 불법성 때문에 도청된 내용 속에 들어있는 더 큰 불법이 가려져서는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불법적인 수단으로 획득된 사실이라고 해도 그 속에 정치경제언론의 유착이라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악의 뿌리가 있다는 증거가 포착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거악을 발본색원하여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고, 더 나아가 그러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을 비교하면서 공익을 위해서는 통신비밀의 자유나 사생활의 보호라는 사적인 인권의 침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통신비밀보호법과 비공개원칙

우리 사회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은 1960년대 ‘요정정치’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술자리 시중을 드는 미녀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서 ‘미녀들의 숲’의 약칭이라고 전해지는 미림팀의 실체가 최근 드러났다. 미림팀에 의한 도청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도청에서 고성능도청장치로 진화해 오면서 40여년간 지속되어 왔다.
정보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에 의해 도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한 최초의 사건은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이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서 당시 법무부장관을 위시한 부산의 유력기관장이 조찬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이들은 여권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요지의 대화를 나누었는데, 상대방 후보 측에 의해 매수된 국가안전기획부의 직원에 의해 이 대화내용이 도청된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 사건에서는 도청된 내용의 불법성보다는 도청행위 그 자체의 불법성이 더 부각되었다. 도청된 내용의 불법성과 무관하게 지역감정을 부추긴 여당 후보 측은 결집된 지역감정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초원복집 사건을 계기로 하여 얻은 것이 있다면 1993년 12월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이 법률에 의하면 일정한 법적 요건 하에 도청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그것을 ‘감청’으로 부르면서 제한적으로 감청허용범위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 법에는 감청으로 취득한 내용이더라도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사용되는 경우 이외에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법 제11조).

 

법논리와 현실논리의 대립각

그러나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해서는 과거 초원복집의 사건에서 도청내용까지 문제 삼지 못한 측면을 반성하는 진영에서는 도청된 내용의 공개를 적극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사회에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반대진영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공개되지 말아야 할 도청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실정법위반이라고 맞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양 진영의 대립각을 특히 자연법주의와 법실증주의의 대립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연법주의 진영에 선 한 국회의원이 ‘나를 기소하려면 하라’고 하면서 도청된 내용 속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실명을 공개하자 거기에 거론된 법무부차관이 사표를 던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제 수백개의 테이프의 내용이 모두 공개되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갖가지 재앙이 우리사회가 걷잡을 수 없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론’과 도청이 피운 안개 속으로 더 큰 악의 실체가 숨겨져서는 안된다는 ‘기개론’이 팽팽한 대립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시민들도 통신의 자유 및 비밀보호냐 알권리냐를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특별법제정의 필요성과 유비쿼터스 사회의 위험성

그러나 따지고 보면 비리규명이 국민의 통신비밀보호라는 헌법적 명제를 넘을 수 없다는 ‘법논리’와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실정법위반을 무릅쓴다는 ‘정의론’은 극한으로 무한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생활보호와 관련된 기본권도 무조건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제한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그 제한의 방법은 법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헌법 제37조 제2항). 이 때문에 정의론도 결국 불법도청의 결과물을 공개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공익우위론을 내세우는 자연법주의의 논리가 타당하기 위해서라도 공개를 합법화할 수 있는 특별법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별법 제정이 되더라도 그러한 특별법을 통해서도 침해해서는 안되는 본질적인 영역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을 응용한 분야가 확산됨에 따라 사생활의 비밀의 안전에 대한 위협도 그만큼 더 커지고 있다. 유비쿼터스 사회의 비전은 5-Any시대로 특징지운다. 즉, 어디서나(Anywhere), 언제나(Anytime), 어느 장소에서나(Anyplace), 어떤 장치로나(Anydevice), 어느 네트워크로나(Anynetwork)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의 청사진은 사생활의 비밀의 보호라는 관점에서는 조지오웰식의 미래 사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감시와 공개가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동과 말은 극도로 제약 당한다. 그러한 제약은 결국 개인의 사고조차 통제하거나 개인의 자가통제를 통해 결국 개인은 주체성을 상실한 기계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통신의 비밀과 사생활의 보호는 특별법을 통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는 그 보호객체가 재벌이든 검사이든, 국회의원이든 범부이든 차이를 두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원의 기본적 인권의 보호는 개인적인 대화내용이 불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도 여전히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의 복리와 관계가 없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도청된 이상 어떠한 경우에도 공개되어서는 안된다고 해야 한다. 만약 이 부분에 관해 우리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여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개의 칼날은 언제 부메랑처럼 나 자신에게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밝은 면과 엑스파일 사건의 미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의 헌정사상 임기도중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한 초유의 사태로 오점을 남겼지만, 미국 정치사에서 많은 긍정적인 면과 교훈을 보여주었다. 당시 의회와 연방대법원은 본연의 직무를 완수하여 민주주의의 전통을 수호하였고, 무엇보다도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이 대통령을 용서치 않고 저항과 압력을 가함으로써 대통령도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였으며, 언론도 정부의 숱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본분인 사실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의혹과 혼란을 안겨주고 있는 엑스파일사건도 올바른 해법을 발견할 수 있으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훨씬 더 성숙시키게 할 수 있고 더욱 안전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폭제로 삼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도청행위의 불법성과 도청된 내용의 불법성을 다 같이 균형감각 있게 처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국가에 의한 불법도청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도청사실을 더욱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도청된 내용 속에 들어있는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정의 전모를 도청의 불법성의 껍데기 속에서 은폐시키기 위해 공개의 요건과 공개의 범위에 관한 합의를 이룩하여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개되어서는 안 될 개인의 사적 영역의 보호가 공익에 비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히 되어야 한다.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은 감시망이 만들어낼 순치된 인간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미해결의 과제: 문지기는 누가 지킬 것인가

그래도 한 가지 미해결의 과제가 있다. 엑스파일의 진실을 캐내고 매듭을 푸는 일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국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문지기는 과연 누가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를 다시금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도 불법연결망속의 회로의 일부가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검사는 이 엑스파일 사건에 관한 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검사 해법론이 특별법 해법론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개를 위한 특별법의 제정은 이 나라의 법치주의의 기틀의 유지, 실질적 정의의 수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의 보호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모든 얽혀진 매듭을 풀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