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실험과 계속된 영화, '익스페리먼트 (Experiment)'

  • 93호
  • 기사입력 200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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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충격적인 실험, 스탠퍼드 감옥실험

인간본성에 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실험이 있었다. 이른바 ‘스탠퍼드 감옥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라 불린 이 실험에서는 '환경조작에 따른 심리변화’를 측정하려고 하였다. 실험의 내용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24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감옥 상황을 연출한 실험실내에서 절반은 죄수, 절반은 교도관의 역할을 하게 한 후 이들의 행동을 2주 동안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험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이 매우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죄수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이들로부터 반복적인 구타와 감금을 당한 죄수 역할의 참가자들은 심한 혼란감과 불안, 우울감에 휩싸이는 상태가 되었다.

실험의 주관자 짐바도(Zimbardo) 교수는 피실험자들의 안전을 위해 결국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하였다. 1971년에 행해진 이 실험이 행해진 동안의 기록과 미완성으로 남겨진 날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영화, 실험이라는 뜻을 가진 ‘익스페리먼트’(Das Experiment)는 독일 쾰른의 가상 감옥을 무대로 하고 있다.



스탠퍼드 실험과 영화 익스페리먼트

스탠퍼드 실험에서 연구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영화 익스페리먼트는 더 이상 실험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경과를 시뮬레이션으로 극화하여 소름끼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스탠퍼드 실험은 극단적인 폭력성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이므로 어느 누구도 그가 놓여진 사회적 상황과 주어진 역할에 따라 너무도 쉽게 악마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영화, 익스페리먼트도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잡으면 약자를 학대하게 되는 우리 내부의 악마성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인간속의 악마를 뼈아프게 인식시켜 준 대가로 2001년 독일에서 제작된 이 영화가 수상하고 노미네이트 된 세계의 유수 영화제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본성을 드러내게 하는 결정적인 동인(動因)

그러나 스탠퍼드의 실험결과는 물론이고 익스페리먼트에서의 결말에서 입증된 것이 인간본성의 전모 만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익스페리먼트에서 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악마성을 외부로 드러나게 하는 직접적인 동인이 바로 그 사람이 처해있는 외부환경이나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이라는 점이다. 집단학살에 앞장선 나치의 장교들이 보여준 행태들이 어제의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 같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맡은 역할 때문으로 보인다.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옷을 입혀 열악한 환경 속에 투입하여 경멸적인 이름을 붙이고 고통을 야기하는 냉혹한 역할을 하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그 정신적 스위치가 건드려져 폭력모드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환모드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을 비인간으로 재분류하고 바다가재를 산채로 삶듯이 그를 고문하거나 죽이는 일을 쉬운 일로 여겨지게 된다. 스탠퍼드실험에서나 영화 익스페리먼트는 폭력과 억압 등 비인간화전술을 하게 자행하게 하는 것이 본성이라기보다는 역할 내지 입장임을 웅변하고 있다.

25년간이나 지속된 청송의 실험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던 비인간화 전술 하나가 포기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뜻 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중처벌과 재범 우려에 대한 판단 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논란이 된 보호감호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8월 4일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이 제정,공포된 것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삼청교육생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사회보호법을 만든 지 25년만의 일이다.


25년간 청송보호감호소 수감자들은 자신의 죄 값에 따라 선고된 형기를 다 채우고도 다시 사회보호 및 재범의 위험을 이유로 보호감호라는 이름의 처벌을 받고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정해져 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만 키워오면서 갱생과 자활의 길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삶을 살아왔다. 폭력모드에 맞추어진 비인간화전술 맞은 편에는 가죽장갑 한 켤레 때문에 4년 11개월의 보호감호를 선고받거나 단돈 1만원을 훔치고 7년의 감호처분을 받게 되어 수동적이고 무기력화 되어 가고 있는 보호감호대상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인간에게 가해질 수 있는 가장 환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조치를 받다가 출소 후에도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재범의 길을 택한 후 다시 보호감호소로 돌아오는 악순환 속에 머물렀다.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었고 보호감호소가 현판을 내리게 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취해온 비정한 형벌정책을 포기하게 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역지사지와 감정모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맡은 역할에 따라 어제의 선량한 인간이 오늘의 악마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러나 그에게 다른 역할이 주어지면 다시 선량한 인간으로 바뀔 수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역할이 변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취해 온 비인간화전술의 희생자들을 폭력이 제거된 도덕적 동심원 속으로 넣을 수 있게 된다. 영화 익스페리먼트는 바로 이러한 희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본성스위치를 공감모드로 만들 수 있는 희망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가운데 가장 초보적인 방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가다듬는 일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일은 한 사회내의 개인과 개인의 관계 뿐 아니라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확대시켜 나갈 수도 있다. 언어를 배우고, 여행을 하고, 역사적 지식을 익히고, 사실주의 예술을 감상하는 일을 통해서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은 호혜의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이해될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원수의 모습이 나에게 동일하게 투영되어 있음을 바라볼 수 있다. 다른 시대였다면 목숨을 걸고 싸웠을지도 모를 적과의 감정이입이 가능하고 그들의 일상에 우리자신을 투사해 볼 수도 있다.


중단되었지만 끝나지 않은 청송의 실험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청송실험은 중단되었음에도 피실험자는 아직도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어 보호감호라는 제도가 사라지게 되었지만 사회보호법의 대체법안인 치료감호법상의 경과규정에 의해 266명의 피감호자들과 징역형과 보호감호판결을 병과해서 받은 434명의 대기자들은 사회보호법폐지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보호감호소 현판까지 내렸으나 266명의 피감호자들은 여전히 석방되지 못하고 있고, 징역형과 보호감호처분을 병과받은 434명은 징역형의 형기 만료 후 다시 최고 7년까지 보호감호되어야 하므로 법은 폐지되었지만 처벌은 살아있는 이상한 형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무가들은 감호제도의 폐지 때문에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게 되어 위험한 범죄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후 민생치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명목 하에 상습절도자에 대한 형량을 2배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슬그머니 개정되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를 지켜줄 수 없듯이 법률의 촘촘한 그물망과 가중된 형벌만이 사회의 안전을 지켜주고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현재와 같은 격리수용방식은 범죄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거나 그들의 재활과 갱생을 위한 긍정적인 장치가 되지 못하다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범죄자들을 사회에 복귀시켜야 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역지사지의 정신에서 호혜의 네트워크를 가동시켜 보면 범죄자들도 우리의 도덕적 동심원내의 일원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사회는 구금형을 줄여나가는 대신 다양한 사회내 제재를 도입하여야 하고 미국의 중간처우의 집(halfway house)이나 민간위탁 사회내처우센터(CTC), 영국의 호스텔(Hostel)과 하우징(Housing)과 같은 출소자들의 자활과 갱생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법을 폐지하고도 보호감호를 여전히 살아있게 하고 범죄자에 대한 중형주의 형사정책을 앞세우는 것은 반인권적 이중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사회보호법을 반성적 차원에서 폐지한 입법정신에 배치된다. 법률에 경과규정을 두었다고 해도 법률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이상 그동안 사회보호라는 미명하에 감호의 역할을 위해 완장 채워진 많은 사람들이나 국가의 폭력스위치도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모드로 과감하게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청송실험이 영화 ‘익스페리먼트’와 같은 비극적 결말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 ㅣ 성균웹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