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열한 거리」와 폭력의 시장법칙

  • 109호
  • 기사입력 2006.06.30
  • 취재 도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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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 차별화된 조폭영화 ‘비열한 거리’

조폭(조직폭력의 준말)을 다룬 영화는 많은 경우 폭력을 사용하는 한 개인을 영웅시하거나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춘다. 조폭을 도덕적인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영화에서도 조폭은 의리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간인’은 절대 건드리지 않으며 악의 세계에도 상대성이 있음을 은근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비열한 거리’는 여타의 조폭영화와는 몇 가지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삼류조폭 병두(조인성 분)가 움직이는 비열한 거리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액션’ 대신에 ‘싸움’이 등장하고, ‘의리’ 보다는 ‘배신’으로 얼룩져 있으며 ‘조폭에 대한 두둔이나 비난’은 없고 ‘조폭에 대한 중립적인 시선’이 ‘비열한 거리’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비열한 거리’에서의 폭력의 수요와 공급

영화, ‘비열한 거리’의 큰 그림의 밑그림에는 뭐니뭐니해도 - 이 영화의 감독의 말에 의하면 - 폭력이 소비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병두는 책임져야 할 두 개의 식구단위가 있다. 하나는 철거될 무허가에서 신산스럽게 살고 있는 병든 어머니를 정점으로 한 혈육의 식구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조직의 식구들이다. 이들의 ‘입구멍’을 위해 병두는 두눈을 번득인 채 폭력의 수요자를 찾아 ‘천하고 용렬한’ 거리를 헤맨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던 차에 황회장(천호진 분)의 달콤한 제안이 들어오자 병두는 마침내 자신의 폭력을 필요로 하는 황회장과 은밀한 거래를 터면서 폭력의 시장에 고가품 하나를 판매한다. 이를 통해 허기진 욕망은 일단 채워지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확대재생산하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평범한 진리는 로터리파의 보스(윤제문 분)와 병두 그리고 병두의 오른팔 종수(진구 분)로 이어지는 폭력의 계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폭력의 생산자가 폭력을 공급하고 폭력의 소비자가 폭력을 수요하는 원천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 원천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는 폭력의 시장을 형성하는 근본 뿌리가 바로 인간의 욕망에 있다는 범죄원인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동시에 폭력의 생산 및 재생산 구조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론이 폭력의 공급과 폭력의 수요와의 관계에서 찾아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상징적인 법률 그물망의 무용함

폭력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고 그러한 인간의 욕망은 폭력의 수요곡선과 폭력의 공급곡선에서 교차한다는 점이 사실이라면 폭력의 먹이사슬을 끊는 방법은 바로 폭력의 시장법칙에 개입하는 일이다. 알량한 경제학적 기초지식에서 보자면 어떤 물건의 거래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 물건의 수요를 없애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수요가 없는 곳에 공급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우리 사회가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 내놓은 처방을 보면 이와 같은 경제학적 접근방법과는 정반대의 방안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내놓은 폭력대처방안은 폭력의 수요를 차단하는 대신에 폭력의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에 편중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조직폭력(법률가들은 이를 조직범죄라고 함)근절에 대응함에 있어서 견지되고 있는 태도는 형벌의 양을 가중하는 이른바 ‘중형주의’적 태도이다. 형법은 범죄목적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기만 하고 아무런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범죄단체조직죄’를 통해 조폭의 공급로를 빈틈없이 그리고 매우 강력하게 차단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혹은 ‘특정 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등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과 같은 높은 법정형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은 모두 조직폭력의 공급로 차단을 통해 범죄예방과 진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높은 형벌로 준비된 촘촘한 법의 그물망은 실제로 실효성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러한 ‘특별한’ 법률들은 우리 사회가 폭력예방과 진압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을 부각시켜 주는 상징적인 법률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오늘날 법학계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다. 범죄문제는 범죄자의 처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진대, 이 나라의 국민의 대표자들과 정부당국은 가장 손쉽게 뭔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입법을 마련한 후 뒷짐을 지고 있다.

▣ 폭력수요자에 초점을 맞춘 폭력제거 프로젝트

영화, ‘비열한 거리’를 관람한 후에 각 출연자들을 형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상의 범죄구성요건을 나열해 보라는 과제는 법전만 펼쳐보면 능히 수행할 수 있는 과제이다. 반면에 ‘비열한 거리’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폭력의 시장 철폐방안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해결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폭력 역시 수요와 공급의 시장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적어도 한 가지 현실성 있는 방안은 내놓을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폭력공급자 보다는 폭력수요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형사정책을 구상하는 일이다. 폭력에 대한 수요자가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한 공급자측의 폭력욕망의 출구는 막을 길이 없다. 공급로를 차단하면 차단할수록 폭력가격만 높이는 셈이 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폭력욕망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폭력공급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폭력을 생산해 낼 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위해서도 조폭의 든든한 ‘그늘’이 필요하고, 떼인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심부름’시키는 도리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만큼 폭력의 수요자는 도처에 깔려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폭력조직의 양태도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폭력수요자의 외관은 이와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80년대 중반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향락산업이 당시 폭력의 수요자라면, 80년대 후반에는 사회봉사단체, 종교단체 혹은 정치인들이 폭력의 수요자로 등장했다. 90년대 이후에는 파이낸스 등의 명칭을 가장한 사채업, 부동산 경매 및 폐기물처리업 등 합법성을 가장한 기업의 경영이나 금융회사의 운영 등에 비열한 거리의 사람들을 동원하고 있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는 황회장이 합법적인 사업의 운영주체로서 욕망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폭력을 공급받아야 할 폭력 수요자의 대표격에 해당한다. 병두의 고향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민호(남궁 민 분) 역시 관객의 입맛에 드는 영화시나리오를 위해 폭력의 수요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수요가 온존하는 한 폭력은 생산에 생산을 거듭할 것이다.

▣ 폭력시장의 경기불황을 위해

따라서 장차 우리나라의 현행법이나 법집행기관이 폭력의 정점에 서 있는 폭력수요자들의 척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한 폭력의 시장에는 불황이 없을 것이다. 법망을 피해 끊임없이 합법의 외피를 두르는 폭력수요자가 득세하고 있는 한, 폭력의 시장에서 희생되는 자는 언제나 폭력의 인간먹이사슬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존재들뿐이다. 황회장과 같은 폭력수요자에게 칼을 대지 못하는 한 비열한 거리에는 언제나 비열한 인간 군상들이 득실거릴 수밖에 없음을 영화, ‘비열한 거리’는 말해주고 있다.

 

편집 ㅣ 성균웹진 전미린 기자 (wjsalfls@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