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이 주는 묵시록 -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막아라

  • 132호
  • 기사입력 2007.05.15
  • 취재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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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로스쿨의 영화들> 저자
영화, ‘타인의 삶’이 보여주는 냉기와 온기

프라이버시가 소멸되고 없는 사회는 감시사회이다. 개인간의 의사소통의 모든 채널이 통제되고 일거수 일투족이 남김없이 관찰되는 유리벽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위협당한다. 이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가 랙 휘태커(Reg Whitaker)는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감시기술의 보급이 초래하는 프라이버시의 침해 및 침해가능성을 “개인의 죽음”이라고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감시사회가 맞게 될 개인의 죽음을 알리는 전주곡은 이미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울려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설 1984에 묘사된 ‘오세아니아’와 유사한 감시사회가 우리시대에 실재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영화, ‘타인의 삶’이 우리를 데려가는 현실의 감시사회는 체제유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했던 구동독사회다. 소설속의 감시사회인 오세아니아에서의 빅브라더(Big Brother) 역할을 동독사회에서는 비밀정보국(쉬타지)이 담당한다.

‘타인의 삶’은 현실속에 실재했던 극단의 감시사회에서 감도는 싸늘한 냉기를 우리몸이 오싹해지도록 만든다. 전체주의사회에서 개인의 존엄과 권리가 얼마나 형편없이 오그라드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은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삶이 주조해낸 도가니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선 ‘타인의 삶’이 전해주는 온기를 느껴보자.

‘타인의 삶’이 주는 따뜻함

영화, ‘타인의 삶’에서 감시자 비즐리는 동독비밀정보국의 요원이고, 비즐리에 의해 감시당하는 타인은 인기극작가 드라이만이다. 감시자 비즐러는 독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이념을 신봉하는 자로서 정보를 캐내는 기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지만 스스로 엄격하고도 절제된 삶을 살아간다. 한편 드라이만은 사회주의의 이념을 신봉하면서 기질상 체제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 온건한 지식인이다.

그는 사회적 명성뿐 아니라 미모의 여배우를 연인으로 두고 있으면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기까지 하고 있다. 드라이만이 비밀정보국의 감시대상자로 지목되는 것은 그가 반체제 인사이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문화부장관의 사적인 욕심 때문이다. 드라이만과 문화부장관과의 사적인 관계속으로 비즐러가 들어선다. 드라이만을 제거한 뒤 드라이만의 연인을 차지하려는 문화부장관의 저열한 동기를 모르는 비즐러는 자신이 신봉하는 체재의 안전과 수호를 드라이만과 드라이만의 연인의 안방 깊숙히까지 도청장치를 설치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해감에 따라 감시는 감시의 본래적 의미에서 변질되어 간다. 비즐러의 메마른 고독의 가지는 드라이만의 삶이 만들어내는 생기있는 삶의 바람결에 뿌리채 흔들리고 탐욕에 눈먼 문화부장관의 마수에 시달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애정 그리고 인간미에 대해 기계같은 비즐러의 마음이 움직인다. 도청장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감시작용은 감시자의 심장과 뇌를 자극하는 감화로 승화된다.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아파시오나타는 비즐러의 가슴을 때리고, 드라이만이 읽은 브레히트의 시는 비즐러의 두뇌를 자극한다. 소통은 쌍방향일 경우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감화는 일방향일 때 더 큰 위력을 발하는 것일까. 드라이만의 삶은 마침내 사회주의이념의 실천기계 비즐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다.

 

‘타인의 삶’이 전해주는 차가움

감시자 비즐러와 피감시자 드라이만의 관계가 어떻게 반전되어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냉정하게 감시사회가 주는 차가운 느낌을 법적인 관점에서 프라이버시권과 관련하여 재해석 해 보야 할 차례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이 자유의 본질적 부분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는 양상은 과거 전체주의국가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오늘날의 감시의 기술적 범위는 앞시대의 감시국가들의 감시능력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감시장치로서 에셜론(ECHELON)의 위력은 가공할만하다. 에셜론은 위성에 의한 감시의 세계화를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셜론은 미국 주도 아래 앵글로색슨 국가 5개국(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이 공동으로 가동하고 있는 전세계적인 통신 도청망으로서 지상 기지와 통신위성, 고성능 신호인식 컴퓨터를 연결, 시간당 200만건, 매달 1억 건의 전화, 팩스, 텔렉스, 이메일의 내용을 검색하는 전자 스파이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에셜론의 눈과 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내에도 휴대전화를 통한 위치추적장치, 자동차운전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GPS시스템, 더 나아가 작업장이나 건물 또는 길거리마다 설치되고 있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우리의 자유로운 공간을 점점 축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감시형태는 일상적인 상황속에서 무수히 많은 형태의 사회통제를 위해 개발되고 배치된 새로운 감시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각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의 파악이 단체와 국가에 대해 데이터 이용감시자가 되고 이를 통해 개인정보를 사회통제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새로운 감시기술은 그 자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데이터이용감시를 통해 개인을 단순한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만 개인들은 그러한 불이익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형태의 감시장치는 외형적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기 보다는 범죄예방이나 공공의 안전을 위해 긴요하게 필요한 것(예컨대, 길거리의 CCTV, 범죄자의 DNA정보은행, 공항검색대의 특수광선)으로 간주되거나 편의성을 더해주는 것(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으로 오히려 환영할만한 문명의 이기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직접적으로 심각하게 침해당했다고 느끼기 이전에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중요한 권리로 생각하지도 않는 경향조차 생기게 되었다.

 


프라이버시는 왜 중요한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바야흐로 정보사회에 진입한 이후 우리가 사는 세상에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프라이버시는 가장 밀도있는 자유의 공간이다. 프라이버시가 소멸하면 개인은 죽는다. 감시가 일상화되면 감시대상자들은 규율을 내면화하고 명백한 강압없이도 감시자에 대해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게 된다. 타인에 의해 읽혀지고 타인에 의해 조종되는 것을 알고 있는 개인의 삶은 더 이상 주체적인 삶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개인은 정보형태를 대부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정보는 개인의 진실된 자아를 어둡게 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소외를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기업체와 정부기구들은 리스크에 노출된 경영의 원리를 바탕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정보프로필에 따라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에 제약을 하여 사회참여를 막는다.

DNA정보의 남용, 전국민 지문 전산화, 얼굴이나 신체 정보의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화 등은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차별을 낳을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2006년 정보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장 우려되는 정보화의 역기능으로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침해\'(74.6%)가 꼽혔다. 프라이버시의 가치가 소멸되어 가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프라이버시는 부활되어야 할 새로운 권리로 조명받아야 마땅하다.

프라이버시의 부활을 위해

우리는 개인정보 누설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지문날인제도와 주민등록번호의 유지가 개인 식별을 용이하게 하고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의 연동을 쉽게 한다는 점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개인을 점점 더 노출시키며 사적인 공간을 무자비하게 축소시키고 있는 새로운 감시기술의 역기능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개인의 모든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전자주민카드나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전기통신사업자가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갖추도록 하고, 개인의 인터넷 로그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는 프라이버시의 침해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점이 들어있다. 먼저 감청 장비를 가진 주체가 수사기관에서 전기통신사업자로 바뀐다고 해서 불법수사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국가권력의 감시가 민간기구의 감시로 대체된다고 해서 불법이 합법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다음으로 전기통신사업자가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보관을 의무화한 내용은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사이버 감시 체제의 구축을 뜻하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분신이 되어버린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무분별한 감시를 조장하는 개정안은 통신비밀\'보호\'라기 보다는 통신정보의 감시체제구축을 위한 입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미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의 폐해가 만연한 상황에서 특별한 보안책도 없이 모든 국민의 통신내용을 일정기간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하는 것은 수사기관이나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한 개인정보의 남용과 누설 위험성을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보화시대에 기술의 발달이 잠식하고 있는 사적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프라이버시권의 부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새로운 원형감옥(파놉티콘)의 구축을 방지하고 잠식되고 있는 자유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입법적 방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프라이버시 기본법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앎에 대한 욕구는 알권리로까지 격상되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삶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와 권리는 필연적으로 그의 프라이버시와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타인의 삶’은 사적공간을 침해하는 악몽과 같은 국가권력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지만, 오늘날 정보혁명의 자장에 놓여질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문화적 차원의 수많은 변화는 감시‘국가’에서 감시‘사회’로의 변천을 가져오고 있다. 일상적이고 보편화되고 있는 프라이버시침해는 지하철, 은행, 직장, 관공서, 거리 등에서 소규모의 감시네트워크에 의해 독립적이고 분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에 따라 프라이버시권의 쟁취를 위한 입법적 투쟁대상의 외연도 중앙의 국가 뿐 아니라 다양한 비공식적 권력복합체까지 확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를 담지해주는 프라이버시 보호법으로서 프라이버시기본법과 같은 포괄적인 법률의 제정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