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버지의 이름으로」와 두 아버지 이야기

  • 135호
  • 기사입력 2007.07.21
  • 취재 신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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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로스쿨의 영화들> 저자

두 이야기

□ 한국의 어느 한동네 부자집에 철수라는 명문대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웃동네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곧바로 선수시절 동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아들을 때린 자들을 찾아내어 집단보복을 자행했다. 아들도 아버지의 주문대로 저항불능상태에 빠진 자들을 향해 자신이 맞은 부위에 주먹을 날렸다.

동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았지만 보복이 두려워 누구도 감히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도 신고를 받았지만 그 집안에 아는 사람들이 줄을 대어 없던 일로 무마했다. 하지만 동네 밖 누군가에 의해 결국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졌고, 처음에는 강력하게 사실을 부인하던 철수의 아버지도 마침내 실토를 하였다. 재판을 받게 된 아버지는 폭행죄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안있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철수 아버지가 소속된 태권도연맹에서는 지금도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아일랜드 어느 한 동네에 ‘제리’라는 철없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남의 집 지붕위를 넘나들며 좀도둑질을 하다가 영국에 무장투쟁하던 IRA요원으로 오인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자영업을 하던 제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변화를 기대하며 제리를 런던의 이모집으로 보냈다. 영국으로 가던 도중 고향친구를 만난 제리는 이모집에도 가지 않고 히피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집으로 돌아온 제리는 그가 런던 체류시 발생한 폭탄테러사건의 주모자로 혐의를 받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갖은 고문과 위협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한 제리는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마저 테러사건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아 유죄판결을 받고 같은 교도소의 같은 방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착하긴 하지만 진중함이 없는 제리는 최악의 불행과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도 마약과 철없는 행동을 이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말없이 진실을 알리기 위한 구명운동을 계속해나갔다. 과로와 병에 걸려 교도소안에서 고생하던 제리의 아버지는 마침내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두 아버지 첫 번째 이야기는 2007년 상반기 보복폭행사건으로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그룹 회장과 그
아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가상스토리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1970년대 아일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제리 콘론 사건’을 영화화한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father)’라는 영화의 줄거리의 일부이다. 세상에 아들을 사랑하지 않고 아들의 성장을 염려하지 않는 아버지는 한사람도 없겠지만 그 방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수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외부에 드러난 행동방식만을 두고 볼 때 두 아버지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

철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를 되짚어보기에 앞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사적인 힘을 통해 통렬한 복수로 나아갔다. 반면에 제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에 인내심을 가지고 아들이 자율적으로 변화하고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기다렸다. 철수의 아버지는 사적인 채널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려고 시도하다가 그것이 드러난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리의 아버지는 형편없이 왜곡된 진실앞에서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공식적인 불복절차를 차분하게 전개해나갔다.

철수의 아버지는 병세가 있음을 구실로 구금시설에서 병원으로 후송되도록 조치하여 죄값을 달게 받기 보다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하였다. 그 결과 그에게는 자신을 누르는 압력과 무게를 피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있다는 외부평가가 내려졌다. 그러나 제리의 아버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아들과 함께 대화하며 서로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사망은 동료죄수들의 애도와 외부세력의 구명운동을 한층 증폭시켰다.



두 아들

두 아버지에게서 나타난 양극적인 태도도 궁극적으로는‘부성애’라는 단일한 꼭지점을 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깊은 통찰력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아버지의 사랑방식의 차이가 각각의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에 있다.

□ 좀처럼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않던 제리는 아버지가 생전에 견지하였던 오래참음과 사랑의 진정성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함께 고압전류처럼 몸속으로 이어받는다. 제리는 마침내 인간적 성숙을 이루어내면서 평화적 투쟁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을 행동으로 따른다.

변호인의 노력 끝에 제리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증거와 당국이 그 증거자료를 은닉까지 하였음을 알게 해주는 서류가 발견되어 제리는 마침내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당당하게 법정밖으로 걸어나온 제리는 사망자로서 아직 누명이 벗겨지지 못한 자신의 아버지의 명예와 정의의 회복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을 격앙된 목소리로 선언한다. 그것도 다름아닌 자신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숨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 반면에 철수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우리는 알길이 없다. 아마도 아버지의 더 큰 지원을 받게 될 철수는 이미 체험한 힘과 부의 강력함과 달콤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버지가 가지지 못한 또 다른 힘과 능력을 겸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철수의 내면의 의식과 가치관은 자신의 외부적 힘과 실력에 비례해서 커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철수의 의식세계는 아버지의 그것과 닮은 꼴로 유지되어 힘과 부가 곧 정의라는 사고틀이 더욱 고착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박제화된 철수의 자기중심적 폐쇄회로에는 자기 자신이나 그 가족 혹은 보다 큰 부나 명예 이외에는 들어설 틈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것들 외에는 그가 걸 수 있는 다른 가치있는 \'이름\'을 가지지 못하게 될런지 모른다.





두 법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법(국가)과 국민과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흔히 법률부권주의 내지 법률후견주의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러한 관계는 자식에 대해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동의를 받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유익이 가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법률후견주의는 그것의 목표가 시혜를 주는 것이지만 그 수단이 강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후견주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국민을 보호함에 있어서 형벌이라는 금지 수단을 사용하는 형사법 영역에서 가장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철수 아버지의 행동이 상징하는 법(국가)의 모습은 아들(국민)을 보호하고 아들의 이익을 위해 복수를 지향하기 때문에 극단적 후견주의적 법(국가)모델과 상통한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져 제리네 가족들처럼 약하고 힘없는 시민들에게 무리한 희생을 강요하는 1970년대 영국의 테러방지법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법)의 비호를 받은 아들(국민)은 건전하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아버지(법) 아래서 억압받고 보복당한 타인들은 그 법에게 신뢰와 믿음을 보낼 수도 없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법적용은 결국 그러한 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강자는 그 법의 호혜자가 되지만 결국 그는 건전하고 자율적인 공동체의식을 갖지 못하고, 약자는 약자대로 퇴로없는 막다른 길에서 모든 희망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국가)모델의 정반대에 있는 법모델은 제리의 아버지의 행동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모델은 아들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적인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보복보다는 회복을, 힘보다는 진실과 정의를 향하는 지향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모델은 자유주의적 법적 사고에 터잡고 있어 여기에서 성장한 아들(국민)을 자율적이고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나게 하여 자신을 성숙시킨 바로‘그 법의 이름으로’정의를 추구하게 만든다.



내 아들이 부를 이름

아들의 인간성을 회복시킨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아버지의 이름으로’는 나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특히 주인공 제리 역을 맡은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력에 반한 아들은 이 영화를 DVD로 사서 보관하기 위해 많은 상점들을 찾아다녔다.

지구상의 어디에도 후견주의적 사고를 어느 정도 반영하지 않은 법체계가 없듯이 나 역시 아들에 대한 강제와
개입을 하고 싶어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들에게 또 바라는 것이 한가지 생겼다. 종교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독일의 판사가 국민의 이름으로 판결을 내리듯이, 내 아들도 그가 걸 수 있는 가치있고 의미있는‘이름’을 가지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