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본능의 원인을 찾아, 영화, ‘추격자’

  • 154호
  • 기사입력 2008.04.18
  • 취재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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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로스쿨의 영화들> 저자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올해 안에 백명은 거뜬히 죽였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시체를 토막내는 것도 모자라서, 뇌수와 간을 먹었다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한 변호사는 사형폐지운동차원에서 그의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육류를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비위가 상했다고 한다. 잦은 비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무더웠던 2004년 여름, 그는 경찰에 체포되었고, 21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일 때 나도 대학원생들 몇몇과 법정방청객으로 앉아있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유영철이다. 유영철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을 무렵에 유영철이 다시 나타났다. 맹한 눈동자와 히죽히죽 소리 없는 웃음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 분)의 이름으로, 다혈질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한 인상을 주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식 분)의 추격을 받으면서 영화, ‘추격자’의 영상공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유영철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추격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잔혹한 연쇄살인마 영민을 최초로 등장시킨다. 우산을 받쳐들고 옆에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긴머리여인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싼 그의 뒷모습은 마치 초대한 애인을 마중하러 나온 자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간 그의 태도는 돌변한다. 목소리는 낮고 차가왔으며,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읽히지 않는다. 한손으로는 맹수 앞에 토끼마냥 떨고 있는 출장안마사 미진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이미 수많은 여인네들을 내리친 피 묻은 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향하여 찍는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빈집에서 계속되는 잔혹사에 접근을 시도하는 자는 외관상 출장안마사소를 운영하는 전직형사 중호 외에는 없다. 출장온 안마사들을 살해한 영민과 행방불명된 안마사들을 찾아 나선 중호의 조우는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다. 중호에게 덜미잡힌 영민은 잠시 도망치지만 무기력하게 잡히고 만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추격 장면 뒤에, 그것도 영화의 초반부에 범인이 잡히는 것으로 처리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이후에 계속되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가지는 제한된 상상력에 관한 우리의 단견과 성급한 판단을 이내 바꾸게 만든다. 자백을 보강하는 물적 증거가 없음을 이유로 풀려나오는 영민의 태연한 모습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공권력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며 인간기생충과 다를 바 없는 중호가 인간 존엄성의 숭고한 실천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다시 풀려난 영민과 어려운 상황에서 추격의 고삐를 더욱 바짝 당기는 중호의 부딪침은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뻔한 실화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추격자’로 하여금 그 이후로 막을 올린 수많은 영화들의 막이 차례로 내려지는 동안에도 여전히 한국최고의 흥행기록을 맹렬하게 따라잡게 만들고 있다.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흔히들 영화, ‘추격자’는 범인을 좇는 추격자의 집요한 추격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추격당하는 영민의 극악한 살인본능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흉악한 살인범은 존재해왔다는 역사적 사실도 그렇거니와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얘기할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범죄자가 되고 누가 범죄자가 되지 않는가에 대한 전통적인 통설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언제나 다르게 행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간행동의 원천을 자유로운 의사로 보아 범죄는 결국 범죄자의 자유의사에 기한 자유로운 행위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근대 이후의 모든 법체계의 토대가 되어 있다. 반드시 임마누엘 칸트의 고전적인 관념철학부터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형법은 개인의 자유라는 계몽적인 관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자유로운 의사와 그로부터 나오는 인간 행동의 개인책임원리는 형법의 비난(책임) 내지 형벌메카니즘을 무제한적으로 타당하게 만들었다. 즉 형법은 의사자유가 있기 때문에 범죄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범죄행위에 대해 형벌로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행동의 원천을 의사자유에서 찾지 않는 견해가 뇌과학의 이론적 성과로 알려지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우리 몸의 신경계를 연구한 결과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책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일지라도, 원칙적으로는 범죄자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의 생리와 유전, 그리고 환경조건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그런 결함을 제공한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의 책임을 묻는 법정의 청문회라는 것은 고장난 자동차를 몽둥이로 내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범죄학 이론에서 범죄의 원인을 이와 같은 차원에서 추적한 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세기 이탈리아의 의사 롬보로조였다. 그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군대의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관찰한 결과 범죄인들에게 있는 신체적 특질을 발견하고서 범죄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범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진다라는 이른바 생래적 범죄인론을 주장한다. 그 후 범죄의 원인을 비정상적인 두개골, 염색체이상, 호르몬의 이상분비 등에서 찾는 롬보로조의 후예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최근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싸이코 패스’도 생물학적 차원에서 범죄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먼저 싸이코 패스의 선천적 요인으로서, 뇌파에 이상이 있고 뇌반구의 기능상 생각, 감정, 의도를 언어화하는데 극심한 비일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이코 패스는 좌뇌의 결함으로 좌뇌의 활성을 요구하는 일에 취약하고 우뇌의 결함으로 감정을 경험하는데 장애를 보이기 때문에 얼굴표정에 나타나는 감정을 읽어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염색체의 이상으로 몸속의 효소를 조절하는 MAOA유전자가 적을 경우 뇌속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줄어들어 전두엽의 기능을 줄어들게 하고,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매우 담담하고, 말초신경계가 둔감하여 무감정적이며, 공감이나 후회, 자책이 결여되어 있고, 쉽게 거짓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물론 사이코패스가 되는 후천적 요인으로 성장기의 나쁜 환경도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다. 나쁜 환경에서 성장할 경우 유전적 요인은 다소 낮더라도 내부적으로 스스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학습하게 되고 사이코패스 발현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한다.

연쇄살인범은 거의 대부분이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의 출소 후 재범률은 80%, 그 중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40%이며, 이는 일반 범죄자의 8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하기도 한다. 유영철이 싸이코패스라면,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수많은 사건의 범죄자들이 싸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흉악한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형벌의 수위를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대처한다. 혹자는 흉악한 살인범에 대해 무기징역은 과분하다느니, 내딸의 목숨을 앗아간 자가 어떻게 이땅을 활보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감정에 호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그 동안 널리 퍼지기 시작하던 사형폐지론의 목소리도 다시 움추려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법무부가 준비중인 ‘예진·예슬법’도 이러한 맥락에서 중형주의만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법은 범죄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가로막고 집단무의식에 호소하면서 인간본성의 제의에 받쳐질 희생양을 모으는 종교적 의식에 가깝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단기효과를 거둘 수 있을 런지는 모르지만 정치인들은 그 이상의 다른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할 도리를 다했다고 쉽게 믿는다. 이러한 상징적 입법은 장기적으로 볼 때 범죄억제나 예방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사회의 이상적인 징후를 고착시키는데 그친다. 형벌이 그리고 형법이 과도한 사회는 그 사회가 문제 많다는 점을 방증하는 가늠자이다. 형법은 그 사회의 명함이기 때문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용을 들여야 하고, 인간본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 범죄자 자신이 아니라 범죄에 이르게 된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따져보는 견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에게 성폭행을 한 사람, 혹은 흉악한 살인자에게 감정적인 증오만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그들을 수리나 부품교체가 필요한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싸이코 패스로 만든 사회환경적 원인에 합당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성장기에 형성되는 변연계의 경험프로그램에 네거티브적 요소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따뜻한 배려와 눈길을 주어야 한다. 그들이 애착을 가지는 일과 직장이 있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동료와 가족이 있을 때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범죄행위로 인해 함부로 버리지 못할 통제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에게 타인존중과 인간의 존엄의 가치를 행동원리로 삼게 하는 동시에 자기 규율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최상의 형사정책은 최상의 사회정책’이기 때문이다.

편집 ㅣ 성균웹진 정동환 (restart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