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폴리스 라인 vs 대한민국의 폴리스 라인

  • 166호
  • 기사입력 2008.10.17
  • 취재 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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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많은 학생들이 미국유학의 길에 오르고 있다. 부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힘든 타향살이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유학생의 숫자가 적었던 과거에는 ‘미국유학생’이라는 자체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자 취업의 보증수표였다. 심지어는 한 유학생이 외국대학에 없는 수석졸업이라는 거짓말을 해도 국민 대다수가 이를 믿었고 그 내용이 담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은 미국유학생들이 너무 많아 국내 유명대학과 같이 최상위권의 미국대학 졸업자가 아니면 과거와 같은 프리미엄을 누리기 힘들게 되었다. 최근 미국의 불황과 맞물려 많은 유학생들과 그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따라간 부모들이 미국에 정착하지 않고 귀국하고 있다. 이들이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미국생활을 국내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며 얘기해 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법질서를 지키는 부분에 이르면 대부분은 선진국인 미국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다고 말하며 ‘한국은 아직 멀었다’, ‘선진국은 뭔가 다르다’는 식의 얘기를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한국 놈은 안 돼’라는 말을 내뱉는 분도 계시다. 민족에 따라 준법정신의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다.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법을 더 잘 지킨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하였다.

진실은 무얼까?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법문화의 차이와 법집행의 엄격함에 있다는 것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경우 인류보편의 정서(情緖)를 제외하고 민족에 따른 다양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들이 어울려 살다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대화로 해결하기가 몹시 힘들다. 따라서 객관적인 분쟁해결의 기준이 필요하게 되고 법이 해결도구로 등장하게 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두,세 사람만 거치면 친척이 되는 사회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법적 잣대만을 들이대면 ‘매정한 놈’, ‘피도 눈물도 없는 놈’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따라서 법으로 해결하기 전에 당사자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언쟁하고, 술마시고, 화해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엄정한 법집행을 들 수 있다. 자주 비교되는 예가 폴리스라인을 넘은 경우 경찰의 대처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집회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불법집회에 대한 응징은 확실하다.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유혈이 낭자한 상황이 발생해도 누구하나 경찰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는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제대로 주가조작을 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발각되면 추징과 함께 국내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장기간의 형을 살게 됨은 물론 같은 직종에 재취업할 수 없다. 한 마디로 한 번 걸리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폴리스라인을 넘었다고 경찰이 시위참가자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피가 난다면 바로 그 날 저녁 9시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물론 경찰청 홈페이지가 불이 날 것이다. 주가조작해도 잘 만하면 몇 년 살고 은닉한 재산으로 평생 잘 살 수 있다. 수 천 억원의 추징선고를 받고도 소유 재산을 29만원으로 신고한 전직 대통령이 외국 여행가고 호의호식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심야에 흉기로 사람을 때리고 납치한 재벌총수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면을 받았다. 유모차로 차의 흐름을 방해했다고 주부들을 기소한 수사기관이 수 십대의 차량을 동원한 고엽제동지회의 시위에는 아무런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거의 매년 언론보도에서는 한국인의 준법정신에 대한 통계조사를 내놓곤 한다. 늘 결론은 우리 국민의 준법정신이 낮으며, 대부분이 국민은 ‘법을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비난한다. 법률가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순전히 법을 집행하는 정부 및 사법기관과 법률전문가인 법조인의 잘못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법에 대한 대규모의 세미나나 토론회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엄격한 법집행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단지 상식에 반하는 판단과 법집행이 이뤄지면 된다. 이념, 사회적 지위, 경제적 차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 없는 법집행이 이뤄지면 사법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국민의 준법정신은 향상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법령만 수입하려 하지 말고 엄정하고 평등하게 집행하는 그들의 태도를 우선 수입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