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2', '외과의사 봉달희', '뉴하트' - 그들의 이야기

  • 172호
  • 기사입력 2009.01.06
  • 취재 황경주 기자
  • 조회수 5456


글 ㅣ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한 직원이 "변호사님, 인터넷에 변호사님이 드라마 주인공 모델이라는 기사가 떴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반신반의하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종합병원2\'라는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연예기사를 볼 수 있었다. 법대 다닐 때 한국 최초로 의학드라마가 제작되었고 인기가 대단했다는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의 두 번째 시리즈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지인들로부터 몇 차례 같은 얘기를 들어 호기심에 인터넷으로 드라마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하루 저녁 시간을 내어 실제로 드라마도 보았다. 솔직히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는 있었다. 주인공은 나처럼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를 하다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의료전문변호사를 꿈꾼다는 설정이었다. 게다가 촬영을 진행하는 장소가 내가 졸업한 의과대학의 부속병원이기 때문에 의료계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로서도 드라마의 설정에 무슨 관여를 한 것이 아닌가, 에피소드의 일부가 실제 경험담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외의 설정은 전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실제 인턴이나 전공의들의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러나 학생 때 경험과 지금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사실들로 그들의 생활을 추측하고 이해한다면 그저 고달프다는 것이다. 가장 곤히 자는 오전 2-3시에 호출하는 병동간호사, 응급실에서 잘 몰라서 쩔쩔매도 겁이 나서 고참 전공의를 제대로 호출할 수 없는 현실 등은 이들의 일상적 삶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주인공은 위암진단을 받은 조직폭력배가 수술을 거부하자 이를 설득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결국은 수술을 받게 한다는 내용에서 보는 시청자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과연 현실에서 어떤 전공의가 선배나 동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조직폭력배를 설득하려 할 것인가. 드라마는 이러한 일들을 단지 개인의 가치관이나 양심의 문제-영웅적인 한 개인의 활동-로 몰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해야지 어떻게 여느 직장인들과 같이 사무적일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은 같은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다. 굳이 공자의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라는 말씀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대거나 지나친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보편화되어 오히려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뉴스를 보면서 사회의 부조리나 범죄행위에 분개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은 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술 먹고 운전하고 과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른바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드라마가 의료계를 보는 시각도 이런 것이 아닐까하여 걱정이 되었다.

일반외과는 기피과, 소위 \'3D과\'다. 이를 두고서도 어떻게 의사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하는 일반인들이 제법 있다. 언론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외국으로 수술을 하러 갈 수도 있다는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낸다. 사람들이 \'외과의사 봉달희\'를 열광하고, \'뉴하트\'에 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학드라마는 외과 계열 외에는 소재를 구하기 어려울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은 현실에서 있었으면 하는 희망과 바람을 드라마 속에서 보았기에 열광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가정이 무너져도 환자만을 위하고, 자신보다 환자를 위하는 의료진을 드라마 속에서 확인하고 이들에 대해 \'나도 저런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는 욕망이 투영된 것이 드라마의 인기비결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 자식, 내 친구는 잘나가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를 해야 하고 퇴근시간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물론 고생하는 의사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고생하는 이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일주일에 8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지, 왜 멋져 보이는 외과계열의 지원자가 없는 것인지, 호기 있게 지원하고서도 1년도 안 되어 병원에서 도망치거나 수련을 포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있어야 될 것이다. 가장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은 노조를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는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의 신분과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신분이 병존한다. 현실적으로 지방의 외과 전공의는 드라마 속의 고난도 수술은 커녕 일반적으로 흔하다고 알려진 수술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피교육자의 신분이 강조되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싼값으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녀전공의의 숙소 구별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인턴이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였을까.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 조치들이 따라야 하지만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의사들의 삶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낭만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고 힘듦일 뿐이다.

드라마를 볼 때 나타나는 면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을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는 습관을 기르자. 그것이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지는 바보상자 제공의 프로그램들로부터 자신의 지적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지켜나가는 길이기에. 혹자는 굳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 골치 아픈 일까지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반문할 수도 있다.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10편보다 드라마 1편이 나으며, 나 아닌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화면으로 본 대가로 그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한 번 고민해주는 정도의 시청료는 지불해도 되지 않을까?


편집 ㅣ 성균웹진 황경주 기자 (icarus7@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