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남자' - 따돌림이라는 중대범죄에 대하여

  • 173호
  • 기사입력 2009.02.27
  • 취재 이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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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최근에 시청률 1위를 차지한 또 하나의 막장드라마가 있다. 귀족 사립 고등학교에서 돈 많고 잘생긴 남학생과 평범한 집안의 예쁘고 착한 여고생 사이에 벌어지는 하이틴 로맨스 같은 스토리. 바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다. 일본 원작만화를 바탕으로 일본과 대만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이미 인기리에 종영된 상황에서 약간의 설정을 바꾼 채 다시 만들어져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남녀 주인공들의 진부한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선정적인 내용과 함께 납치, 감금 및 폭행 장면들이 보여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문화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기이유를 분석할 이유는 없다.

단지 법률가로서 관심이 있는 것은 만화가 원작인 탓으로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F4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학교내 (집단)따돌림 또는 집단 폭력’이다. 대개의 경우 따돌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따돌림에는 집단폭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 보도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으로 ‘이지메’가 자주 소개되었다.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인지 여러 차례 이지메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행해지고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어졌다. 보도에 따른 모방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우리 학교 현장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이지메’가 스며들어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그에 따라 국어사전에서도 ‘이지메’에 대응하는 ‘왕따’ 또는 ‘(집단)따돌림’이라는 신조어가 수록되었다.

‘꽃보다 남자’ 제1화에는 여주인공인 잔디가 학교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F4의 사주에 의해 학생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심지어 복도에서 학생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잔디가 경제력에 맞지 않는 신화고등학교에 가게 된 계기도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려는 민하에게 세탁물배달을 가면서다. 따돌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사람 이상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인을 소외시켜 반복적으로 인격적인 무시 또는 음해하는 언어적?신체적 일체의 행위"로 나와 있다. 이러한 정의를 분석해 보면 따돌림의 구성요소에는 ①집단성, ②상습성, ③명예훼손 또는 모욕이나 폭행?협박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현행 형법 및 관련특별법 규정에 대입시켜보면 상습적으로 폭행이나 협박을 한 자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라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단체나 다중의 위력으로써 폭행이나 협박을 한 자 역시 형이 같으며, 상습적으로 단체나 다중의 위력으로써 폭행이나 협박을 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이러한 형이 어느 정도 중한 것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현행 형법에서 정하는 법정형(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처벌의 정도)에는 사형부터 몰수까지 9종의 형벌을 정하고 있는데 이중 징역은 사형 다음으로 중한 처벌이다. 다음으로 형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가장 낮은 형만(형의 하한)을 정해놓은 방식, 가장 중한 형(형의 상한)만을 정해놓은 방식, 형의 상한과 하한을 모두 정해놓은 방식의 세 가지가 있다. 이중 위와 같이 ‘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방식은 가장 낮은 형만을 규정하는 것으로 형을 줄여줄 이유가 없다면 법관이 내릴 수 있는 가장 가벼운 형이 징역 2년이라는 것이다. 강도죄 및 강간죄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 중상해(사람을 다치게 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것)가 1년 이상 10년 이상의 징역이므로 거의 강도나 강간에 준하는 중대범죄임을 알 수 있다.

과중한 학업부담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그 해결책으로 자신보다 약한다고 느껴지는 자들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하는 따돌림현상은 강도나 강간에 준하는 범죄임에도 중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실제 처벌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따돌림은 그 자체가 중한 범죄이기도 하거니와 피해자에게 미치는 해악이 너무나 크다. 대부분의 따돌림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 등교거부, 등교를 채근하는 부모와의 마찰 및 그로 인한 가정 내 폭력,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함으로 인한 사회부적응 및 정신장애와 자살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가벼이 볼 수 없는 것들로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그럼에도 따돌림을 하는 학생들은 죄의식이 별로 없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신의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따돌림은 도덕적?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행 형벌로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할 행위다. 교복을 입었다고 하여 처벌의 칼끝이 비켜가지는 않는다. 설사 사법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처벌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따돌림을 한 학생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똑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폭행이나 협박을 일삼을 가능성이 높다.

어려서 형성된 잘못된 버릇은 결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남의 인생을 망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정상적인 성장도 망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지 말고 무엇이 문제임을 늘 생각해야 한다. 같이 보는 초등학교 동생들이 있으면 반드시 현실에서는 그러한 따돌림을 해서는 안 되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면 바보가 된다. 지성인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같은 드라마를 보시는 부모님께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면 반드시 말씀드려야 한다. 따돌림의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관련 교사, 학교 및 해당 교육청도 손해배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오죽 하였으면 교사의 손해배상상책임에 대한 우려를 이용한 ‘참스승배상책임보험’, 피해자의 치료비 등을 보장하는 ‘어린이보험’과 같은 보험상품이 판매될까? 꽃미남을 보고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숨겨진 따돌림의 범죄성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편집 | 성균웹진 이승민 기자(jrjss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