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히어로' - 기소독점주의의 무서움

일본드라마 '히어로' - 기소독점주의의 무서움

  • 175호
  • 기사입력 2009.03.26
  • 취재 황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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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미국드라마는 막대한 제작비와 치밀한 시나리오를 무기로 매회 잘 짜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어서 좋은 반면 일본드라마는 아기자기하고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개성적인 인물들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성캐릭터로는 고쿠센의 양쿠미, 야마토나데시코의 사쿠라코가 있고 남성캐릭터로는 히어로의 쿠리우가 있다. 히어로는 일본드라마 중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로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인기극이며 쿠리우 코헤이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단순하다. 중학교 졸업의 지방검사 출신의 쿠리우가 동경지방검찰청에 발령을 받아 기존의 검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다소 진부적인 스토리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기무라타쿠야라는 슈퍼스타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점과 함께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해 준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다.

쿠리우 검사는 홈쇼핑중독자다. 텔레비전을 통해 늘 새로운 상품들을 구입하고 검사실에서 새로 구매한 물건들을 사용해 본다. 또한 일반적인 수사방식과는 다소 다른 일견 엉뚱하게 보이는 수사를 한다. 하지만 다른 검사들과는 달리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엘리트들이 모인 동경지검의 검사들이라면 그냥 넘길 사건을 집요하게 수사하여 피의자의 무죄를 밝히거나 진범을 잡아낸다. 특히 피의자가 자백을 한 사건임에도 수사를 통해 자백이 허위였음을 밝히는 경우를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검사라면 마땅히 유죄를 입증하여 기소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지만 쿠리우는 피의자가 죄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함을 잘 알고 사명감에서 시작함에도 한 해, 두 해, 해가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중요성을 망각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조금 경력이 붙었다고 자신의 경험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일이 잦아지고 승진이나 좋은 부서로 발령을 받는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쿠리우는 이와 같은 기존의 경력 검사들이 보란 듯이 수사를 한다. 승진이나 좋은 부서로의 발령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러다보니 동네에서 여성들의 속옷을 훔쳤다는 이유로 붙잡힌 피의자의 수사를 위해 현장을 확인하기도 하고, 정치거물이 연루된 사건에서 쏟아지는 주위의 외압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의 이름에 걸맞게-이름의 한자가 공평이다- 공평하게 모든 사건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일반인들이 검사와 관련하여 자주 듣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의자로 잡혀 온 사람을 처벌할 것인가의 여부는 전적으로 검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사의 권한이 그만큼 큰 것이다. 경찰이 열심히 수사를 하여 범죄자를 처벌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수사기록을 보내도 담당 사건의 검사가 증거가 없다거나 범죄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하거나, 범죄 사실은 맞지만 경미하여 기소를 유예한다는 기소유예처분을 하거나 벌금형에 처하는 구약식기소를 할 경우 헌법소원이나 재정신청과 같은 예외적 절차를 제외하고는 검사의 이러한 결정을 뒤집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체계이다.

반대로 경미한 범죄라고 경찰이 판단한 것도 검사의 판단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어 중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에 해당하는 고등학생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이 학생을 절도죄로 처벌해달라고 하며 관련 수사기록을 검찰에 보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검사가 학생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자꾸 범행을 부인하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자 절도죄가 아닌 준강도죄로 죄명을 바꾸어 기소하였다. 절도죄의 형량은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준강도죄의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6년 이하의 징역일 경우 최소한은 1개월이고 최대한은 6년이며, 준강도죄의 경우에는 최소한이 3년이고 최대한은 15년이므로 양자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준강도죄의 구성요건이 절도죄의 범인이 재물의 탈환을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가 경찰에게 잡힐 때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가? 물건을 훔치고 난 후 주인이 잡으러 올 때 잡히지 않으려고 몸싸움을 하거나 밀치는 정도로 힘을 쓰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검사의 판단에 따라 어떤 자는 절도죄로 어떤 사람은 준강도죄로 의율되는 것이다. 검사의 판단에 따라 위 학생의 일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은가? 검사 또는 검찰의 기소권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권력은 국가가 법률로 보장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검찰이야말로 가장 정의로워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즘 대한민국 검찰에 대해 말들이 많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공안검찰이, 권력의 시녀다 등등. 많은 국민들이 검찰 수사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신뢰를 쌓는 것은 힘들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여자의 속옷을 훔치는 잡범사건도 성실히 처리하고 거물정치인에게도 당당한 쿠리우 검사들로 채워진 대한민국 검찰조직이 되기를 기대하며 히어로를 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 ㅣ 성균웹진 황경주 기자 (icarus7@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