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은 우리나라를 위한 법이다?

  • 197호
  • 기사입력 2010.02.25
  • 취재 조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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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성재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내법이 일국에 국한된 법질서라면, 국제법은 국제사회의 법질서로서 국제사회 전체를 위한 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국제법은 우리나라를 위한 법, 즉 우리나라 사람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국제법은 국가를 지키는데 필요한 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태의 국제법은 1648년 베스트팔렌강화조약 이후, 교황의 힘이 약화되고 영토를 전제로 한 주권국가의 탄생 이후 생겨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국가간의 다툼이나 분쟁이 생길 경우 교황의 결정으로 해결되었지만, 교황이 힘을 잃게 된 이후 국가간의 다툼을 해결할 수단으로 탄생한 것이 국제법입니다. 결국 국제법을 정확히 알고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국가를 지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법학은 90년대 초반까지 해석법학이 중심이 되어 왔습니다. 해석법학이란 개별 법조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법학방법론을 말합니다. 해석법학을 중시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법조인 선발시험인 사법시험이 법조문의 의미와 해석을 묻는 경우가 보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던 법학도들은 사법시험의 출제경향인 법해석 공부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조인이 되고 나서 접하는 사건 또한 90년대까지는 부동산이나 채권채무 같은 민사적 법률문제와, 폭력행위나 사기 등과 같은 형사적 법률문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까닭에 국제법은 사법시험에서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법조인들은 국제법을 접하고 적용할 기회가 매우 적었습니다. 그 결과로 법학도나 법학자 가운데는 국제법은 중요하지 않은 법으로 치부하는 경향마저 있었습니다.

국제법을 소홀히 하여도 괜찮은 것일까요? 국제법은 국제사회의 법이라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을 어떤 내용으로 만들고, 국제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910년 일본의 강제적 병합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은 상실되고, 1945년 광복을 찾기까지 우리나라는 주권국가로서 존재하지 않았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국제법인 일본과의 병합조약에 의해 국가를 잃게 된 것입니다(물론 한일병합조약이 유효한가의 논의는 별론입니다!!!). 일본은 군대를 파견하여 대한제국 국민을 속박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를 협박하였으며, 고위관리들을 회유 매수하여 병합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국제법인 조약의 체결상 필수 요소인 조약체결권자, 즉 황제의 수결(친필사인)까지 위조하였음이 근년의 연구결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대한제국은 국제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일본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국가를 빼앗아 간 것이지요. 한일병합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한 후, 과연 우리나라에 우리의 법이 존재하였던가요? 우리의 땅임에도 우리의 법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법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주권을 잃고 국가로서의 존재가 없어지고 나면, 헌법 민법 형법 등의 국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국제법은 국내 학자들이 그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국내법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국제법은 우리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한 셈이지요.

1970년대까지,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뒤의 시기까지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은 법이 아니라, ‘power politics’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냉전 구도 하에서 힘있는 국가들의 주장에 마지못해 또는 소극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입장에서 그리 지칭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입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냉전구도의 해체와 약소국들이 국제법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국제법인 조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소위 힘쎈 국가의 독단으로 되는 경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약소국들이 소수의 강대국 생각과는 다른 국제법을 탄생시킨 경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21세기에 들어서는 국가간의 힘대결이 아닌 법논리적 경쟁을 통해 국제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훨씬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례를 들어 볼까요. 변변한 자원 하나 없이 외국의 자원을 도입하여 상품으로 만들어 외국에 내다팔아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이고, 더 많이 수출하여야 잘 살게 되는 절박한 환경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당연한 결과로서 우리상품을 수출하면서 수입국의 규제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반덤핑관세부과조치는 수도 없이 경험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련 국제법의 법리를 잘 알게 되었던 우리나라는, WTO반덤핑협정의 체결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논리를 제시하여 우리나라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많이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었기에, 두들겨 패는 국가들의 반덤핑관세 부과조치와 관련하여 부당하거나 문제성 있는 부분을 가장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많이 반영된 국제법을 만드는데 자신있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세계화를 외쳐댑니다. 그러나 이는 세계화가 잘 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 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세계화를 외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이익을 합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국제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될 것이고, 기존의 국제법을 적용함에 있어 타국의 부당한 주장을 물리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제법은 우리나라를 위한 법’이라는 주장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강대국들일수록 자국의 행위와 관련하여 ‘국제법에 따라’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고, 미국의 유명 법과대학에서 국제법 관련 강좌가 가장 많은 이유도 같은 배경일 것입니다. 수년전 중국 베이징 대형 서점의 법학도서 서가에서 국제법 도서가 여타 법학 도서의 3,4배에 달했던 모습에 놀란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편집 ㅣ 성균웹진 조재헌 기자 (jjh954@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