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협조자에 대한 형벌감면제도의 도입에 즈음하여

  • 213호
  • 기사입력 2010.10.27
  • 취재 조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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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 10. 5. 형사소송법 개정 특별위원회는 살인 등 강력사범, 마약사범, 뇌물 등 부정부패사범, 테러범죄 등 수인이 관련된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그 죄에 대하여 진술함으로써 범죄의 규명이나 범인의 검거에 도움을 준 피의자에 대 해 형사소추를 면제하거나 형벌을 감면해 주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하였다(법무부주관 공 청회 필자 발표).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법상의 프리바기닝(Plea Bargaining 자백감형제)제도가 본인 자신의 범행에 대 해서 자백을 전제로 형을 감경해 주는 제도라고 한다면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는 공범에 대한 진술을 강제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본인의 형을 감면해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뇌물사건이나 강력사건에 대해 하급심 법원의 연이은 무죄선고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론의 평 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검찰의 터무니없는 기소권한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 는 검찰의 무기력한 수사를 탓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사범, 살인사건 등 강력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범행형태도 조직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는 특성을 보 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개별 범죄자의 재범방지와 재사회화를 위한 교육적 배려를 후퇴시키고, 중벌에 처 하라는 여론에 편승하여 형법과 특별형법의 법정형만을 잔뜩 높인 상태이다. 기본적인 인권보장을 앞세워 수사기관의 권한을 가능한 한 제한하는 대신 사회방위 차원에서 엄벌화 사법으로 전락하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범죄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적 비용이 증대하여 사회적, 재정적 부담이 커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

「일본의 검찰」이라는 책자의 저자인 David. T. Jhonson 하와이대학 교수는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검찰수사에 대해, 잡범 수사에는 빈틈이 없으면서도 중요 정치인이나 대기업 관련 범죄, 테러, 조직범죄 등에 대해서는 무기력하다는 점을 꼬집어 「거미집」에 비교하고 있다. 즉,「모기, 나방과 같이 작은 곤충(일반 범죄자)은 쉽게 포획하면서도 말벌 과 같은 큰 곤충(특정 부류의 범죄자)에게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강력사건이나 마약사범, 테러범죄 등 조직범죄와 뇌물 등 부정부패사범은 대개 조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당사자 간의 비밀스러운 야합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행으로서 목격자가 없다. 따라서 일반 범죄에 대한 수사기법만으로는 어렵 고, 때로는 함정수사에 의하거나 내부 협조자의 밀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자칫 위법한 수사 또는 약속에 의한 자백으로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다.

설령 범죄를 적발해 낸다고 해도 내부자의 진술이 없으면 입증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마약의 밀매를 지시하고도 현 장에 가지 않은 두목을 기소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가서 잡힌 행동대원의 진술이 필요하다. 내부자의 진술이 없는 한 특히 최상위 간부들의 역할분담이나 관여의 정도를 해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 감정은 수사나 재판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의 감면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이 강하고 따 라서 미국의 프리바기닝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를 명문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법 상에는 피의자의 동의나 자백, 권리 포기를 전제로 하는 제도가 이미 많이 들어와 있다. 약식절차, 간이재판절차, 기 소유예제도 등이 그것이다. 또한 실무상으로도 신병에 대한 결정이나 법원의 양형 판단시 범행사실을 부인하는 쪽보다 자백하는 쪽에게 유리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명시적인 약속은 없었지만 암묵의 대가이다. 그런데 이 러한 경우 법관은‘개전의 정이 현저하다(뉘우치는 빛이 뚜렷하다)’는 등으로 돌려 말하고 있을 뿐이다. 노골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였고, 재판에 협조하였으니 선처한다고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검사 또한 이러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정식기소하지 않고 기소를 유예하고 있다. 미국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실무운영이 곧 프리바기닝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묵시적 형태로 운영하다보면 일정한 한계가 있을 뿐이다.

한편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명문으로 신고자에 대해서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하 고 있다(제66조).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인의 관련범죄에 대한 진술을 전제로 명문으로 감면의 혜택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인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남은 과제는 피의자가 과연 자발적이고, 임의적으로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한 것인지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헌법 제12조 제7항은 「피고인의 자백이 ----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에는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임의성이란 고문이나 부당한 심문방법을 배제한다는 것이어서 수 사관이 조사실 안에서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신문의 테크닉으로서 선처를 약속하는 것은 임의성이 부정될 소지가 있 다. 변호인의 도움 없이는 조사실이 주는 위압감 때문에도 수사관이 제시하는 관대한 처분에 대해 냉정성을 잃고 덥석 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이미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접견과 입회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변호인이 입회하고 있는 상태 하에서 검사로부터 충분히 설명을 듣고 그 이해득실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신문방식이 아닌 대등한 당 사자의 협의로서 피의자가 선택한 결정이라면 임의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수사관은 거물을 검거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말단 내부자들에게 형사면책을 전제로 협조를 구하고 있다. 거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시로「악마와 거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한국 검사는 「악당을 잠재우고 있다」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잡범수사에만 무서운 검찰이 아니라 잡범에는 오히려 유연하면서도 거악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진술확보 방 안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언제까지나 수사기관이 잡범수사에만 매달리게 할 수 없다. 변화된 수사 환경 하에서 우 리 검찰이 수사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성균웹진 조재헌 기자 (jjh954@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