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에 가칭 ‘과학수사대학원’을 만들자

  • 217호
  • 기사입력 2010.12.30
  • 취재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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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형사사법은 과거 50년 동안‘정밀사법’의 명목 하에 가능한 한 모든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고, 보편적 원리에 바탕을 둔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에 의해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 정의 실현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밀사법은 현대 문명이 가져온 첨단과학기술의 발달과 그에 편승한 범죄수단의 지능화라는 변화된 사회 환경 하에서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승인된 보편적 원리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빨리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환경, 원자력, 전기통신, 사이버테러 사건 등 특수한 사건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조그만 법률행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 사실상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급변하는 재판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법관의 사실인정을 보조하기 위해서는 해당 과학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인접과학과의 융합된 복합 학문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과학적 증거를 적법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수집하여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는 일련의 절차를 흔히‘포렌식(forensic)’이라고 한다. 이러한 포렌식은 그 배경이 되는 학문영역별로 디지털 forensic, 이화학 forensic, 유전자 forensic 등 여러 분야로 나뉘고 있는데, 영역별 독자적인 연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함께 모여 복합학문영역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변사체의 장기에 남아 있는 독극물을 이화학적으로 분석하여 보험 살인사건의 실상을 파헤치고, 컴퓨터의 로그접속 내역을 확인하여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깨는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장면이 아니다. 하나하나 사건마다 최첨단의 과학적 기자재와 과학수사기법을 선보이고 있는 CSI라는 TV드라마는 이러한 융합학문의 성과물로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능력은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발달되어 있다. 반면 이러한 과학수사의 우수성과 중대성에 비해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이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태부족한 상태이다.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http://forscience.knu.ac.kr/index.html),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http://www.cnu.ac.kr/~peace/index.html)이 과학수사학과를 개설하고 있고, 학부로는 혜천대학교가 과학수사학과(http://www.hu.ac.kr/dept/health/science/)를 개설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나마 실무기관과의 교류도 매우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infra의 부족은 범죄의 지능화와 전문화에 대한 과학수사 능력의 한계상황으로 다가올 것은 뻔한 이치다.

우리보다 한발 앞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캘리포니아 범죄연구소(California Criminalistics Institute, http://www.cci.ca.gov/)와 포렌식과학기술센타(National Forensic Science Technology Center, http://www.nfstc.org/)가 실무교육기관인 FBI Academy나 다양하게 설립된 전문대학원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획기적인 연구 성과물을 제공하고 있고,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과 최신 기술에 대한 평가와 재교육 등을 통해 검찰의 입증활동과 법관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CCI에서 개발된 프로그램 중 대부분은 POST(Peace Officer Standards and Training) 위원회의 인증을 받고 있는데(http://www.cci.ca.gov/about/aboutcci3.htm) 이들 프로그램에 의해 매년 7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그 중 대다수가 연방/주/시/군 기관 소속의 범죄학자, 증거분석기술자, 전문수사관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날로 과학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는 범죄수법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를 상회하는 수사기법의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사기법은 일선 수사기관만의 노력이나 개인적인 자율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

2009년부터 우리는 법조 인력의 새로운 양성기관으로서 법학전문대학원 System을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종래 사법시험이 가져온 각종 폐단을 시정하면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양성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법률적 수요에도 충족하자는 것이다. 종래의 先敎育 後選拔 방식이 아닌 先選拔 後養成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고시병이라는 고질적인 폐단도 없애고 국민의 수준 높은 법률적 수요도 충족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로-스쿨의 학생과 연구소의 연구기반을 공유하면서 수사 실무가의 현장 경험과 상호 연계하여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도 성균관 대학교에는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시험 검정본부가 설치되어 (사)한국포렌식학회 주관으로 디지털 분야 전문가 시험을 실시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상하반기 2회 이상의 시험을 준비 중에 있고, 국가의 인증도 받을 예정이다. 지금은 비록 디지털 증거분야 전문가 시험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향후 이화학분야, 유전자 분야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 제도의 신속한 정착과 전문적인 조사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산학간 공동연구도 긴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가칭‘법과학대학원’ 또는 ‘과학수사대학원’의 설립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실무기관인 대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인터넷진흥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식품연구소 등 연구, 분석기관과 공동연구도 하고, 강사를 파견하는 등 협조체계를 구축해 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학문 영역간 벽을 허물고 때로는 전공을 뛰어넘어 융합적으로 연구하고, 때로는 실무기관과의 연구 성과물을 공유해 가는 산실로서 우리 학교 로-스쿨에 가칭 ‘과학수사대학원’의 설립을 절실히 기대해 본다.

편집 ㅣ 이수경(good710@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