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사건의 재판에서 엄한 국민적 합의를 보여줄 때이다

  • 227호
  • 기사입력 2011.05.27
  • 취재 최예림 기자
  • 조회수 3765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 1.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하고 선원 21명을 인질로 잡고 있던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면서 인질 선원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방부의 발표내용대로 ‘아덴만 여명 작전’은 우리 국민들에게 속시원한 뉴스이며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이들 생존 해적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고, 마침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재판하고 있다. 이러한 해적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형법상 단 한 개의 조문을 두고 있는데 동 사건을 계기로 형법 제340조가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동 규정은「다중의 위력으로 해상에서 선박을 강취하고, 사람을 상해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동 제2항).

 법무부 자문기관인 형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는 이러한 해상강도 조문이 살인 또는 치사 등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 밖에 없어 너무 무겁고, 사실상 처벌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한 때 해상강도죄 조문 자체를 폐지하고, 형법상 일반강도죄의 한 유형으로 편입하자는 논의도 있었을 정도이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911 테러사건을 계기로 테러대책을 국가안전보장의 커다란 과제로 삼고 각종의 예방과 사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사전의 정보수집과정은 물론 사후 수사과정에서 종래의 영장주의 원리를 과감히 수정하는 취지의 형사소송법상 특례조항을 신설하거나 특별법을 마련해 대처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이러한 해적 사건이전에 미얀마 랭군 폭탄테러사건이나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김선일 목사 피살사건 등 테러사건의 피해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테러리즘으로부터 ‘안전지대’로 여겨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우리나라는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하여 대규모의 군 병력을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병해 왔고, 2)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북한 정권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폭격사건 등 연속적인 테러와 그에 수반하는 테러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 3)글로벌 테러리즘 또한 점차 지능화되고 첨단무기로 무장해 가고 있는데다가 테러활동의 중심무대가 점차 아시아권 특히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 4)우리나라는 특히 아시아의 경제 선진국 중 하나로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지난 5월 1일(현지시간)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의 `공공의 적'으로 꼽혀 왔던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소식에 반짝 상승하였던 코스피 주가가 곧 이은 보복의 목소리에 큰 폭으로 하락한 것만을 보아도 우리 국민들은 테러의 위협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 이상 우리나라는 테러리즘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를 책임지는 정부로서는, 이러한 테러의 동향을 정밀히 분석하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National Counterterrorism Center나 영국의 Joint Terrorism Analysis Centre, 캐나다의 Integrated Threat Assessment Centre 등과 같이 대테러 총괄 센타를 설치하고, 각 부처의 정보수집 역량을 통합하면서 부처 간 정보의 공유는 물론 전 세계의 대테러 정보 네트워크와도 긴밀한 연계, 협력관계가 절실하다.

 수사의 주제자인 검찰로서는 대 테러 수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의 fusion center와 같은 지역레벨의 정보통합사무실을 구성하고, 정보기관과의 연대를 강화해 증거수집에 철저한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USA PATRIOT Act에서 볼 수 있듯이 테러범죄 유형을 법률로 명확히 입법화하고,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외국인과 테러용의자를 신속하게 구금 또는 추방하는 등 기존의 영장주의 원리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긴급한 필요성에 대처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상 특례조항을 과감히 도입하고. 그 중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도 소홀함이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수사요원들의 수사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특수 교육과정의 개설도 절실하다.

 다만 이러한 입법 조치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장애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특정기관에 불필요한 권한의 집중을 방지하고, 기관 상호간 견제 및 감시를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영국과 같이 테러용의자의 긴급구금 등의 경우에 관하여 절차와 기간을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고, 미국에서 하고 있는 의회 사법위원회에 대한 사후 보고 등 국민적 통제장치의 마련도 검토할만하다.

 테러범죄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적인 수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함에 따른 불이익 간의 적절한 조화가 위험 형법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현재 재판계류 중인 해적사건은 정치적인 목적의 테러사건과는 다른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을 노린 해상강도 사건에 불과하다. 비록 알카에다 조직과 같은 체계적인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은 아닐지 몰라도 다중의 무자비한 테러세력임은 분명하다. 문명국가 법률의 엄함을 보여줄 때이다. 이러한 해적 사건은 미국, 말레이지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현재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언론이나 댓글 내용을 보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해적들이 ‘상부의 지시에 의한 나이어린 하수인에 불과’ 하다든가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든가 하는 온정적인 표현들이 떠돌고 있다. 해적들이 한국말을 배워 ‘검사님 다시는 안 할께요’라고 하면서 선처를 요망하고 있다는 법정의 분위기도 전달하고 있다. 자칫 온정적인 판결을 유도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테러이든, 해상강도이든 인류의 평화에 대한 국제적인 위협이며 ‘공공의 적’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국민참여재판부에서 유․무죄의 사실인정은 물론 양형에 있어서 해적 들 각자 자신의 책임에 합당한 국민적 합의를 보여줄 때이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편집 | 최예림 기자 (cheyeer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