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부정부패척결 의지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 238호
  • 기사입력 2011.10.12
  • 취재 최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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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는 6.25 동란을 겪으면서 완전히 파괴된 산업을 하루빨리 재건하기 위해 급속한 수출성장위주의 정책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우리사회의 엘리트라는 관료의 역할이 매우 컷고 짧은 기간 동안 세계가 깜짝 놀란 만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관료들의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관료가 여러 가지 목표와 정책을 세우고 그러한 목표를 민관이 일체가 되어 실현 시켜나가는 것으로 사회는 급속히 진보 해 왔다. 이러한 구조를 행정학자들은 호송선단식(護送船團式) 혹은 행정지도형(行政指導型) 사회라고 한다. 호송선인 관료가 앞에서 깃발을 들고 인도하면 국민은 이를 뒤따라간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료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지고 이는 개발 독재정권과 맞물려 부정한 뒷거래를 형성하고, 미군의 배급품 횡령, 대규모 공사하청, 저리(低利)의 은행융자 등을 둘러싸고 부정부패가 공공연히 암약해 왔다. 특히 일제의 못된 와이로(賄賂)문화라고 일컫는 정실행정도 한 몫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뇌물의 양상도 많이 바뀌고, 먹이사슬 구조도 달라진 것 같다. 1970년대 후반까지 만해도 상하 결재제도를 갖춘 피라미드 조직형태에서는 담당공무원이 받은 돈을 계장에게, 과장에게, 기관장에게 순차적으로 상납하던 구조였다. 이러한 먹이사슬을 漢字로 바꾸면 입 口(구)가 네 개인 밭 田(전)자에 비교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차츰 기관장은 빠지고 입이 세 개인 눈 目(목)자 구조를 취하더니, 1990년대에 들어 아주 최근에는 입이 두 개인 날 日(일)에서, 입이 하나인 입 口(구)로 변한 것 같다. 담당공무원이 자기 혼자 뇌물을 받아 눈감아 주고 적발되면 자기 혼자 책임진다는 논리다(물론 상사도 관리책임은 져야겠지만 형사책임만은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가(單價)도 많이 내려갈 것 같지만 한 번의 기회에 왕창 벌고 만다는 속성이 더해져 금액도 커졌다고 한다.

  최근 오만원권 현찰이 나오면서 뇌물을 주고받기도 쉬어지고, 뇌물 단가 또한 올라갔다는 소문이다. 종래 만원권으로 100만원 한 뭉치면 상의 윗주머니에 넣어도 볼록하게 튀어 나왔기 때문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만원권 20매 정도는 지갑에 간단히 수납(收納)이 된다. 종래 뇌물 액수가 2,000만원을 상회하게 되면 만원권 20다발을 어떻게 전달했는지가 법정에서 틀림없이 문제가 되었다. 박카스 빈 상자에 돈을 세로로 넣거나 테니스라켓 커버에 2,000만원을 넣고 지퍼(ZIPPER)를 잠그면 어렵지 않게 들어간다. 백화점 쇼핑백으로는 무게 때문에 30다발 이상을 넣으면 찢어지기 쉽다. ‘007가방’ ‘굴비 상자’ ‘사과상자’ ‘라면 땅 박스’ 등 한 때 뇌물전달 수단의 대명사가 된 적이 있다.

  필자는 某 국회의원에게 5,000만원을 건네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다음 은행의 협조를 받아 돈다발의 실제 무게가 어는 정도인지, 부피는 얼마인지 나중에 법정에서의 공방에 대비하기 위해 某 백화점 쇼핑백에 만원권 100만원 묶음 50다발을 직접 넣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오만원권으로 3,000- 5,000만원 정도는 서류봉투에 간단히 넣어 한손에 건네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부패의 온상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여왔다. 전두환 정부시절에는 ‘사회정화운동’의 일환으로, 노태우 정부시절에는 ‘부패와의 전쟁’을, 문민정부에서는 ‘신한국’ 창조를 위해 ‘부조리 척결’을, 참여정부에는 ‘특권과 정실주의 타파’를 주장하였고, 현재의 실용정부에서는 ‘경제 살리기’를 목표로 그 장애물이 되고 있는 부패의 방지와 투명사회 회복을 슬로건으로 내 걸고 있다.

  그래서일까. 1995년부터 국제투명성기구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해 왔는데, 한 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국제부패지수 또한 매우 낮아 그만큼 국가경쟁력 순위도 하위에 머문 시절이 있었다. 필자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털면 나온다’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기업마다 뒷돈주머니, 속칭 비자금을 조성하고 암거래가 있었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2010년 5월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글로벌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에 의하면 ‘지난 1년간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6%미만에 그쳐 비로소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과 함께 상위그룹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검찰이나 경찰, 감사원, 국가청렴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열정과 능력은 물론 NGO의 활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폐지론도 제기되었지만 아직도 국민은 대검 중수부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부패척결에 관한 의지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능력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이제는 벤치마킹(benchmarking)하려는 국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국민의 시급한 경제개발의 필요성과 독재정권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이러한 노력과 노하우를 배우려는 운동이 새로운 한류(韓流)문화의 한 단면을 장식하고 있는 듯하다.

  부패가 만연한 국가, 부패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던 국가에서 부패척결의 모델국가, 건전한 기업문화의 수출국가로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편집 | 최예림 기자 (cheyeer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