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정보관 노트북 절도범이 잡혔다

  • 246호
  • 기사입력 2012.02.14
  • 취재 이수경 기자
  • 조회수 7250
무제 문서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학교 골칫거리 노트북 절도사건이 해결되었다. 학술정보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가짜학생이 직원들의 기지와 순발력으로 수갑을 찼다.

노트북 도난 신고가 접수된 것은 2012. 2. 10. 13:20, 신고를 받자마자 용의자의 출입내역을 확인한 학술정보관 직원은 화들 짝 놀란다. 분실된 학생증을 소지하고, 정체불명의 학생이 입실한 시간은 같은 날 12:10, 범행 후 약 5분이 지난 현재까지 퇴실한 흔적은 없다.

6개월 전인 작년 8. 4.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용의자는 초저녁 720분에 입실해서 정확하게 2분만인 722분에 노트북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넘쳐 전운마저 감도는 순간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신속하게 정보관의 출구를 통제한 다음 침착하게 경찰서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혜화경찰서 소속 김 경사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작년 8. 4. 과 같은 해 11. 4. 두 번씩이나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다. CCTV와 함께 관련 자료를 모두 넘겨받고, 10일 이내 진범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건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는 한 치의 진전도 없는 답보 상태. 20년 동안 베터랑 형사로서, 대학가 호랑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요놈의 자슥! 너는 독안에 든 ×. 오늘 콩밥 먹인다

범죄현장이 메이저 대학 도서관이다보니 오랜 경험으로 경찰관 정복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고 출동할 정도의 예의도 갖추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동료 경찰관 5명과 함께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학생에게 다가가 학생증 제시를 요구한다. 그러나 범인과는 거리가 멀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덧 도서관 종료방송이 울린다. 남아 있던 학생들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출구검색대 앞으로 모이는 때이었다.

50미터 전방에서 빈손의 점퍼 차림의 용의자가 모습을 보였다. 학술정보관 직원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학생증 좀 볼까요?” 작은 체구는 아니지만 그 때까지 걸린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필자가 서울지검 외사부 창립멤버로 재직 중 첫 사건이 중국동포들의 밀입국 단속이었다. 이제는 부자나라가 된 자랑스런 조국이지만 그렇다고 위조된 여권을 소지하고 입국하면 「출입국관리법위반」으로 형사 처벌된다. 여권은 공문서이므로 공문서 위조죄와 위조 공문서 행사죄가 추가되었다.

출입국 직원 몇 명을 동행하고 검사가 직접 심사대에 나가 적발하기로 했다. 단 몇 시간 만에 20명이 넘게 체포되었다. 먼 발치에서도 출입국 직원의 눈에는 위조 여권소지자가 보인단다.

검사님! 저기 세 번째 줄의 9번째 여성! 밀입국자가 틀림없는 기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다. 간단한 질문 끝에 그 여성을 체포해 오는 모습이 득의양양하다. 벌써 나이가 503학년에 접어들었지만 자신의 눈썰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송 주사! 위조여권 소지자인 줄 어떻게 알았소?” 하고 묻자

안 가르쳐 주지요. 저희들 노-하운기라예

특별한 노-하우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으로 조사관의 눈에는 용의자가 보인단다. 죄지은 사람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아무래도 제 발이 저리기 마련... 그런 모습을 놓칠 수 없다. 내 눈에는 매일 거짓말하는 앞집 구의원은 떳떳하기만 해 보이던데... 정치인은 다른가 보다.

중앙학술정보관의 노트북 절도범은 자칭 대한민국의 명문 S대학 재학중인 동양권 외국 유학생으로 드러났다. 절도 후 출구가 바로 통제되자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것이다. 화장실 환기통에 감춰 논 훔친 노트북도 찾았다. 그 이전의 범행도 자신의 행위라고 모두 자백하였다고 한다. 20여건의 노트북 절도, 피해금액만도 2,000만원대

절도범 검거의 일등 공신은 역시 중앙학술정보관 직원들의 예리함과 용의주도에 있었다.

2011. 11. 4. 노트북 도난 사건 당시 용의선상에 오른 학생은 명륜동 인사캠 학생이 아닌 수원의 자과캠 학생이었다. 막상 학생 본인에게 확인하니 학생증이 분실되었다는 것...

그날 학술정보관의 사무실 불빛은 밤늦은 시간까지 꺼질 줄 몰랐다. 긴급대책회의가 열린 것이다. 분실된 학생증을 무효화하지 않고 재차 그분이 오기를 기다려 보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CCTV를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동안 절도행각은 동일범의 소행. 그 때마다 출입한 내역도 확보하였다. 그렇지만 자칫하면 또 다른 노트북절도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사립학교 학생증은 사용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되어 있는 사실증명에 관한 사문서이다. 그래서 남의 학생증을 가지고 학교 도서관을 출입하면 사문서부정행사죄가 된다. 만약 자기 사진이라도 붙여 사용하기라도 하면 사문서 위조죄, 위조사문서 행사죄가 추가된다.

분실된 학생증을 무효처리하지 않고, 출입하기를 기다렸다가 검거하는 것은 과연 허용되는 것일까. 흔히 함정수사는 마약거래와 뇌물사건, 증권거래법상의 내부자거래와 같이 비밀성, 조직성이 강해 쉽게 적발하기 어려운 범죄의 수사에 종종 활용되고 있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관련자를 검거하는데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함정수사에는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이 있다. 전자는 예를 들면, 매일 마약을 파는 뽕쟁이 한테 뽕을 사겠다고 해서, 팔러 나온 피의자를 현장에서 검거하는 것으로 실무상 허용되는 방법이다. 반면에 손 떼고, 더 이상 안한다는 놈에게 굳이 팔라고 해서, 기껏 만들어 온 마약을 현행범 체포하고 압수하는 것은 위법한 수사가 된다. 새로운 범죄의 창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함정수사는 수사의 중대한 위법을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의해 공소기각 판결의 대상이 된다. 무죄와 같다.

이 번 절도범의 검거는 위법한 함정수사는 아니다. 범행해 오도록 교사한 것이 아니고 단지 범행해 오기를 기다린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무에서도 「경찰관이 술에 취해 공원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는 만취객을 발견하고도 바로 구호조치하지 않은 채, 주변에서 망을 보다가 취객을 상대로 소매치기하는 피고인을 기다렸다가 검거한 사안」에 대해 위법한 함정수사가 아니라고 한 바가 있다.

하물며 본 건과 같이 경찰관이 아닌 사립학교 직원이 덫을 놓은 경우에는 더더욱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할 수 없다.

성균관대학교가 최근 다른 대학의 모범이 되는 분야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서울대 버금가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재단인 삼성의 지원도 크다. 판사들의 교육요람인 사법연수원이, 검사들의 산실인 법무연수원도 우리 대학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번에 보여준 학술정보관 직원들의 예리함과 용의주도함은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도서관 지킴이」들이 있는 한 우리 학교는 안전하다. 다른 학교에도 벤치마킹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보면서...

성균관대 학술정보관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