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행위자의 변명

성폭력 행위자의 변명

  • 272호
  • 기사입력 2013.05.09
  • 편집 신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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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 자백만 안하면 언제든지 무죄일까? 범행을 시인하는 자백은 유죄선고를 위한 결정적인 직접증거가 되지만 필수조건 만은 아니다. 범죄행위를 간접적으로 추정케 하는 정황증거에 의해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들은 사건이 중대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둘 사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범죄에 대해서는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피고인이 부인하면 정황증거 밖에 없는데, 이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무죄일 수 밖에 없다.
최근 성폭행으로 고소된 연예인이 폭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화제이다. 요전에는 연예기획사 관계자가 기소되었고, 목사가, 사회봉사자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어 우리를 실망케 하고 있다.
성폭행은 가해자가 부인하더라도 피해자의 자세한 진술만 있다면 검사가 기소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누구의 말을 진실한 것으로 믿어 줄 것인가는 최종적으로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自由心證主義(자유심증주의)라고 하며, 이것이 실체적 진실에 합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소 된 이후 피해자가 진술을 바꾸기라도 하면 검사는 낭패를 보게 된다.
필자는 성폭행죄로 기소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기억이 있다. 검사는 자신이 확신을 갖는 사건이 아닌 이상 기소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검사의 준사법관적 지위의 산물이다. 경찰관 앞에서 “자신의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이 들게 폭행을 당하였다”고 주장하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하게 된 사유를 쉽게 추정할 수는 있지만 피고인과 피해자간 은밀히 이루어진 범행에 대해서 피해자의 진술만을 믿고 기소하는 것은 검사에게 그만큼 많은 부담이 된다.
상습 절도죄로 기소된 피고인으로부터 장물인 100만원권 수표가 압수되었는데도 길거리 공중전화 부스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주운 것이라는 주장이 통하고 있다. 직접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니 나머지는 모두 정황증거 뿐이다. 결국 절도죄는 무죄이고, 피고인이 인정하는 점유이탈물횡령죄만 유죄란다. 충주소재의 피해자 안방에 있던 수표가 몇 시간 만에 피고인의 주거지인 제천까지 날라 갔다는 것인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꾸 우겨대면 판사는 갸우뚱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외국에서 국제우편으로 배달되는 마약의 경우에는 우체국에서 검찰청에 통보하고, 출동한 마약 수사관의 감시 하에 수취인에게 전달이 된다. 그래서 수취인이 자신의 물건이라고 수취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있다. 이를 통제배달(control delivery)이라고 하며,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 관한 법률에서 특례 규정을 두어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 현장에서 피의자를 체포하려하면 “나는 그냥 수취인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마약인 줄 모르고 받았다” 고 변명한다. 바로 변호사가 선임되고, “의뢰인은 이디오피아에 아는 사람도 없고, 마침 관광코스가 새로 생겼다고 하여 몇 달 전에 한번 여행 간 적이 있을 뿐이다” 고 변론하기 시작하면 난감해 진다.

 살인사건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검사는 범죄현장에서 피고인의 신발족적이나 지문, 정액의 DNA감정 결과 등을 찾아 이를 범죄의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증거는 “성행위 후 피해자를 피해자의 주거지에서 살해하였다”는 범행사실에 대한 직접증거가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집에 피고인이 간 적이 있다는 사실이나 죽기 전 피해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다는 간접사실이 될 뿐이고, 정황증거가 될 뿐이다. 그나마 피고인이 “평소 피해자와 내연의 관계이어서 피해자의 집에서 몇 차례 성행위한 적이 있다”는 변명을 하면 난감해진다.
최근 극장가에서는 「7번방의 비밀」이나 「신세계」 등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에 상위랭크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외국영화로서 흥행을 예고하는 영화가 있다. Flite(플라이트)다. 탑승자 102명을 태운 비행기가 베테랑 파일럿인 윕 휘태커(덴젤 워싱턴)의 놀랄만한 기지로 들판에 불시착하였고, 승무원 2명을 포함하여 승객 6명이 사망하였지만 나머지 96명은 기적 같이 생존한 사건이다. 같은 상황 하에서 다른 10명의 베터랑 파일럿이 모의 비행을 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 전원 사망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이었다.
사고 비행기는 날개 상층부분의 제조 결함이 있었고 그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기장인 휘태커는 사망한 동료 여승무원과 전날 무리한 과음을 하였을 뿐 아니라 운항 도중에도 위스키 두병을 주스에 타 마실 정도로 알콜중독자였다.
막대한 손해배상을 면하려는 항공사의 노력과 항공사가 제공한 일류 변호사의 변론덕택으로 휘태커의 당시 음주측정결과 수치는 위법수집증거로 무효화되었다. 그래서 휘태커는 마지막 Hearing(청문회)에서 “자신은 술을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면 감옥에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없어진 위스키 두병은 죽은 여 승무원이 마셨다고 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휘태커는 그 자리에서 “내가 위스키 두병을 마셨고, 알콜중독자이고, 당시는 마약까지 한 상태였다”고 하면서 고개를 떨군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음주를 선택한 자신의 잘못에 때문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그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항공사 직원은 물론 참석자 모두가 탄식을 자아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검찰은, 연이은 상습 성폭력이나 성도착행위자의 범죄에 대해, 약물치료명령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함께 청구하는 등으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범행을 과감히 인정하고, 피해자에 대해 사죄함과 동시에 재발방지를 위해 치료를 받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짓된 삶으로부터 난생 처음 자유를 찾았다”고 독백하면서 의연히 교도소에 수감되는 윕 휘테커의 용기와 치료의지를 우리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