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의 불구속 기소와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국정원장의 불구속 기소와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 278호
  • 기사입력 2013.06.18
  • 편집 최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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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검찰은 국정원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선거법위반 등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이를 둘러싸고 공소시효가 임박하였음에도 이례적으로 선거법위반이 인정된다는 수사팀과 증거 보완과 법리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법무부 장관 사이에 의견조율이 어려웠다든가, 법무부 장관의 압력으로 수사팀의 구속의견이 달라졌다는 주장 등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정치 개입 활동을 인정했고, 전 국정원장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기로 한 만큼 향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특정사건수사와 관련하여 보완수사와 법리검토가 필요하다든가, 개별사건에 대해 불구속기소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등의 지휘는 현행법상 가능하다. 즉,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하여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구체적인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이러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지휘한 것은 법에 따른 명령인 만큼 검찰총장으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국정원장 사건에서 법무부장관이 과연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법무부장관의 지휘권은 검찰 업무에 대한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어서 그 발동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와 같이 법무대신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총장(우리나라 검찰총장과 동일)에게 지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법무대신이 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1954년 조선의혹(造船汚職)사건 당시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검찰이 자유당의 간사장인 사토우 에이사쿠(佐藤榮作)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이누카이 다케루(犬養 健) 법무대신이 내각과 상의한 결과 중요법안심의를 이유로 체포를 허가하지 않고 불구속 지휘를 하였다. 검사총장은 이를 받아들여 불구속 상태로 기소하였으나, 사건이 다 처리된 1년 후 “당시 법무대신의 지휘권 행사는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직하고 만다. 그러자 언론이 떠들어 대고 법무대신도 결국 사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곧이어 국회에서 내각의 불신임안이 제기되었고 전후 일본재생의 터전을 닦았다고 자부하던 요시다(吉田 茂)내각도 붕괴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만다. 이후 법무대신이 검찰의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 지휘권을 발동한 사례는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동국대 모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과 관련하여 법무장관의 지휘권이 발동되자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에 불만을 품고 사직서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검찰총장의 사표를 바로 수리하였고, 당시 장관은 그 이듬해 7월 대통령 후보출마를 이유로 사직할 때까지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언론은 검찰총장의 사퇴로 만사가 해결된 것인 양 아무런 커멘트도 없이 잠잠해 지고 말았다.

  청와대 관련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에 대해서는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내각책임제 하에서도 법무대신이 내각 수반인 총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각제 하에서는 국민의 신임이라도 잃게 되면 내각 자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대통령은 중간신임 제도가 없는 이상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서 사뭇 다르다.

 검찰수사와 관련하여 국정질문 형태를 통해 국회에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법무부 장관이다. 따라서 그 범위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청 법상의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도 그런 취지이다.

  그런 점에서 애당초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사건을 검찰이 수사할 수 없도록 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대통령 친인척, 판사, 검사 등 중요 공직자에 대한 사건 수사를 도맡아 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나 별도의 수사기구를 만들자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아쉽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에 대해서 검찰이 손을 떼는 것이 바로 설 수 있는 해법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