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의 「합리적 의심」<br>이란 무엇일까?

형사재판에서의 「합리적 의심」
이란 무엇일까?

  • 280호
  • 기사입력 2013.07.15
  • 편집 최보람 기자
  • 조회수 12750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 대학 4학년 여학생으로부터 고소장이 제출되었다. 졸업 여행을 가 숙소 근처에서 풀밭에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는 도중 남학생으로부터 추행을 당했단다. 피해자가 치마를 살짝 올리고 사진을 찍어 제출하였는데, 허벅지에 시꺼먼 멍(좌상)이 나 있었다. 남학생이 반항한다고 양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어 눌러 난 것이라고 한다.

     “이런 나쁜 ××! 이렇게 연약한 여자의 신체를...”

      구속되어 송치된 피의자가 계속 억울하다고 변명하지만 검사는 이를 무시한다. 피해자를 다시 불러 확인할 필요까지도 없다. 아픈 기억을 재차 진술하게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검사는 적어도 피해자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여자를 울리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는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교수의 말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허벅지의 멍이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좋아 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믿어 주십시요”

     피의자는 일관되게 변명한다.

     “두 번 좋아했다가는 애 잡겠다. ××하지 말고, 판사한테나 변명해봐. 지가 좋아서 자해하더라고...”

      막상 검사는 기소하였으나 마음이 편치 않다. 피해자를 불러 다짐을 받아 놓았어야 했나 걱정도 된다. 그런데 아뿔싸! 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1심 판사는 피해자의 허벅지 상처가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해행위라는 증거도 없지 않은가?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을 위한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을 요한다. 법관의 심증이 이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어떠한 판단을 하여야 하는가?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검사로서는 난감하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고소인에게 뒤늦게 전화해 보지만 연락이 안 된다. 피고인은 여전히 둘이 좋아서 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영리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허벅지에 난 상처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법정에서 증언해 줄 의사를 찾는다. 어렵사리 법정에 나온 거만한 풍채의 의사 선생님, 검사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여성의 피부는 약하고, 특히 허벅지 부분은 조그마한 마찰에도 멍이 들 수 있습니다. 애 또... 성행위 중에 정상적인 경우에도 멍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검사는 씁쓸한 마음에 의사를 째려보지만 결국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판사가 피고인의 변명에 속았다” “고소인이 변절했다”고 검사는 남의 탓을 한다. 성행위 도중에 그러한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개연성이 남아 있다면 피고인의 변명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원칙을 모를 리 없다.

      피해자가 합의하였다는 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않는 것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런데 법정에서 공판검사에게 대놓고 말을 바꾸는 피해자도 있다. “뒤늦게라도 말을 바꾸려는데 수사검사님이 진술의 일관성을 보이라고 해서...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일관 했단다.

     최근 대다수 성폭력 범죄에 대해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고소 없이도 수사가 이루어지고 공소제기 될 전망이다. 그러다 보면 법정에서 말을 바꾸는 피해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에도 이를 배척해 가는 합리적 기준이라도 만들어 가야 할 판이다.

      「합리적 의심」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는 없다. 검사가 과연 어느 정도로 입증해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분명하지도 않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이를 설명하는 「배심원 설시」 도 그렇고, 법원마다 그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합리적 의심의 정도」가 더 이상 「모르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용이 들쑥날쑥하면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합리적 의심」이 더 이상 법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뒤늦게나마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정착되면서 심리학, 통계학, 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가진 법률가들이 양산되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합리적 의심의 정도를 넘어 유죄선고에 필요한 입증의 정도가 객관화되고, 계량화될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