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가? <br>영화 〈집으로 가는 길〉 Ⅱ

누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가?
영화 〈집으로 가는 길〉 Ⅱ

  • 298호
  • 기사입력 2014.04.22
  • 편집 노현종 기자

글 : 김성돈 법학전문대학원교수

공무원의 종됨과 국민의 주인됨

<집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를 분노케 만든 외무 공무원들이 큰 비리나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거들먹거리는 태도와 이죽거리는 언어가 우리를 분노케 만든다. 이들이 보여주는 고압적 태도와 이들이 사용하는 불손한 언어는 먼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과 ‘데자뷰 현상’을 일으키면서 어렴풋한 공감대를 만들어 낸다.


그 공감대를 만드는 핵심 단어 중 하나가 ‘어디서 감히’라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한국의 모든 공무원들의 착각과 망상이 집약적으로 들어 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란 ‘어디서 감히’라고 국민을 윽박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어떻게 감히’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법적 근거가 국가공무원법에 있다. 이 법의 제1조는 국가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은 공무원에 대해 그 직무를 민주적으로 수행하고, 공과 사를 분별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친절하고 신속·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이 ‘어떻게 감히’라는 말을 들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도 분명하다. 공무원은 이윤을 창출하는 일에 기여하는 일반 기업의 직원과는 달리, 오로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만 보수를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국민의 공복公僕인 공무원은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종과 같이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온 것이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무원의 범주에는 ‘넓은 의미’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도 포함된다. 이를 아는 선출직 공무원들은 선거철마다 주인을 섬기겠다고 충성 맹세를 한다. 충실한 머슴이 되겠다고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다.

공무원에게 철밥통을 준 이유

물론 법은 공무원에게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만 부여하고 있지 않다. 국가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공무원의 이러한 이중적 위상에서는 우선 그 봉사자로서의 지위가 주이며, 신분의 안정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부분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즉, 공무원에게 신분 안정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철밥통’을 준 것은, 공무원으로 하여금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그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지, 공무원들이 잘 나서가 아니다. 선거에 따라 교체되는 정권의 눈치도 보지 말고, 선거에 따라 바뀌는 정치인들에게도 맞서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라는 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경쟁이 치열한 국가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자 대우인 것으로만 착각한다. 국가가 부여하는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가에 대해서만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국민 개개인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우선해야 하는 것으로 오판한다. 공무원의 이런 인식과 태도 역시 국민에 대한 배반이며 착각이다.

기능적으로 국민을 위하지 않는 국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거칠게 말해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기관들의 총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앞세우고, 국격을 높여야 한다며 토론회나 청문회에서 입에 거품을 무는 자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러한 자들의 정신에서 어른거리는 신념 체계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느꼈던 살 떨림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살 떨림으로 이어진다.

표류하는 국민을 위한 법

학창시절 영어 명문장을 통해 영어 실력을 향상한다고 열심히 외웠고, 또 자주 회자되던 존 F. 케네디의 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겐 하나의 사기극에 불과하다. “국가(미국)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요구하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그래도 미국의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나 그런 말을 할 자격이라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전쟁 포로나 실종자 그리고 국외에서 구금된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수 년에서 수십 년 동안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으로 모든 노력을 다한다. 놀라운 것은 한국 전쟁 포로의 유해를 가져오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외교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주한 미 대사관 영사들의 경우, 3개월에 한 차례씩 한국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인 수형자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면담이나 통역을 위해서는 한국인 직원까지 대동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2004년 6월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물자를 납품하던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단체에게 납치돼 참혹하게 살해당한 후에서야 비로소 해외 거주 자국민 보호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몇몇 의원들이 재외국민 보호 법안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말만 무성했을 뿐, 그 법안이 성안되는 일은 그다지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게 된 것을 계기로 표심을 의식한 국회가 앞 다투어 법안을 발의했지만, 재외국민 보호법(안)은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건재한 공무원을 위한 법

이와는 달리, 국민 세금으로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에게 절대적인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제도는 1960년부터 시작되어 어느덧 반세기 넘게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엔 일반 국민들이 알게 되면 불편할 진실들이 너무도 많다.

2013년을 기준으로, 퇴직 후 받게 되는 국민연금의 경우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이 84만4천 원인 반면, 공무원연금의 경우 219만 원이나 되어 2.6배나 많다. 게다가 공무원연금은 그 유족에게 상속되기까지 한다. 2013년에는 공무원연금의 적자 부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 준 금액이 2조 원이나 된다. 2020년에는 공무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부족액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액수가 6조 원이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그래도 공무원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2001년 개정된 공무원연금법은 공무원연금에 적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전액 국고로 보전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의 수지 불균형은 이미 1993년부터(군인연금의 경우 1973년부터 적립금이 고갈, 2013년도 1조3천억 원을 세금으로 보전) 시작되었지만, 2009년도에야 겨우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것’을 목표로 한 개혁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익 집단화한 공무원의 저항에 부딪쳐 사실상 실패하고, 국민연금과의 격차는 더 커지게 되었다. ‘신의 연금’이라고 불리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 사학연금 포함)과 비공무원 직장인이나 비정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상실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으면 사회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요인이다.

국가 및 지방 공무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혁신이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정치권에 이어 정부 및 공공 기관을 꼽았고,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혁신이 미흡한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설문자의 70퍼센트가 변하지 않은 관료 사회를 꼽았다.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한 해 약360조의 예산을 가지고 국가를 운용하면서 각종 법안과 시행령, 규칙을 만들어 내고 직접 집행하는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관료들이 기득권과의 카르텔을 구축해 버린 현실적 상황에서 한국의 공무원 사회를 일컬어 한국판 ‘카스트 제도’라고 부르는 것도 과도하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을 통과시킨 후 공무원연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예산을 수백만 가구의 빈민에게 나누어 준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의 성공 사례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