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가?<br>영화 〈집으로 가는 길〉 Ⅰ

누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가?
영화 〈집으로 가는 길〉 Ⅰ

  • 298호
  • 기사입력 2014.04.22
  • 편집 노현종 기자
  • 조회수 7973

글 : 김성돈 법학전문대학원교수

살 떨리게 만드는 영화

영화 〈변호인〉이 아니었다면 혼쭐이 났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들과 외교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한 영화가 〈변호인〉과 동일한 시기에 개봉되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일찍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 영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제목에서 연상되거나 영화 포스터가 주는 인상처럼 절대 가족애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굳이 장르를 규정짓자면 외무 공무원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고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지도 않고,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과도한 슬픔으로 우리의 동조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잔잔한 감동을 살 떨리는 분노로 전환시켜 주는 이 영화는 다만 상영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 외에는 탓할 것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

후배에게 보증을 잘못 서 준, 어리석지만 착한 남편 김종배 때문에 살길이 막막해진 가정주부 송정연이 집을 떠난다. 남편의 또 다른 후배로부터 보석의 원석이 든 가방을 운반해 주는 대가인 400만 원을 벌기 위해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송정연의 가방 속에는 원석이 아니라 다량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고, 이것이 발각되어 그녀는 마약 운반책으로 즉각 체포된다. 그녀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파리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한국 영사와 외교부 직원이 자신들의 업무가 많아질 것을 귀찮게 여겨, 그러한 가능성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다.

그 뒤 송정연은 파리에서 비행기로 9시간이나 날아가야 하는 마르티니크라는 섬의 교도소로 이감되지만, 불어는 물론 영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이 소식을 간신히 접하게 된 남편 김종배는 한국의 외교통상부와 프랑스의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면서 협조를 구하지만 번번이 냉대와 무시를 당한다. 게다가 대사관으로부터는 마르티니크 섬 현지에는 한국인이 없어서 통역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만 받는다.

이후 송정연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한 사건 주모자의 진술이 담긴 재판 서류가 번역되어 파리의 대사관에 도착하지만, 영사와 직원들의 무시와 무관심 탓에 폐기 문서로 처리되고 만다. 이렇게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집을 떠난 송정연이 한국 영사로부터 받아야 적절한 보호와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집 밖에서 방치된 시간은 무려 756일간에 이른다.

대한민국 여권과 외무 공무원

우리가 거의 눈여겨보지 않는 여권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 여기서 이 ‘여권의 소지인’이 대한민국 국민인 한, 이 글귀는 누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조항이다. ‘관계자 여러분’에는 외국의 출입국 공무원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파견된 공무원들도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서 영사 등 외무 공무원들은 바로 이 여권 첫 페이지의 요청을 무시함으로써 헌법상 규정된,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재외국민의 안전과 보호는 애당초 관심사가 아니다. 범죄자이니까 편의를 봐 주어서는 안 되고, 나라를 망신시킨 자이므로 경원하고 질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행패냐, 바쁘니까 나중에, 귀찮아 죽겠다, 어디서 감히, 참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에게 우대받고 배려 받는 자들은 본국에서 오는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이나 기자 등 힘 있고 높으신 양반들뿐이다. 기억에 남을 만큼 그들을 잘 접대하고, 현지의 영향력 있는 자들과 친분을 쌓아 그 반대급부로 일급지 발령이나 기다리며, 마침내 제1계급 외교 사절인 대사로 승진하고, 또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나 탐하는 일에만 그자들의 신경은 가 있다.

이자들이 송정연의 불구속 기소의 가능성까지 외면해 버린 이유는, 그녀가 재판을 받을 동안 자신들이 피의자를 보살펴야 하는 일이 단지 귀찮기 때문이다. 3년간이나 마르티니크에 체류하면서 파리 대사관에 여권 연장 서류까지 보낸 유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국내의 네티즌에 의해 밝혀지기 전까지는 통역해 줄 사람이 없다고 발뺌하기 바빴다. 국민의 세금을 범죄자를 위해서는 쓸 수 없다면서, 자신들의 안일한 태도를 정당화한다. 전 세계 모든 문명국가에서 관철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재판도 받지 않은 자국민을 마약 사범으로 낙인찍는다. 더구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송정연과 그녀 남편의 구명 활동이 괘씸죄에 걸릴 것이라고 겁박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송정연이 김종배와 함께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가고 싶어 했던 꿈의 섬에서 피눈물 나게 서럽고 신산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영사와 그 직원은 고통 받는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임무지를 그저 매력적인 휴양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송정연의 귀갓길을 더디게 만드는 데 책임 있는 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절제된 선율과 음조로 이루어진 배경 음악을 사용한다. 이 묘한 울림은 우리에게 감정의 변주를 일으켜 준다. 공감에서 분노의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