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난쟁이 발사’ 사건

  • 537호
  • 기사입력 2024.04.15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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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전문대학원 이승민 교수


1. 예전에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술집이나 디스코텍에서 ‘난쟁이 발사’라는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놀이는 난쟁이를 자루에 묶어서 발사하는 것이었고, 멀리 보낼수록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끔직한 것이었다. ‘난쟁이 발사’는 1990년대에 프랑스에도 도입되었고 프랑스어로 ‘lancer de nain’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난쟁이 발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지금으로서는 찾기 어렵지만, 최근에 찍은 아래 사진들을 보면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난쟁이 발사 기록은 3m 30cm라고 한다.


 ▲ ‘난쟁이 발사’


난쟁이 발사는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문제가 컸다. 발사되는 난쟁이는 자원을 하거나 발사의 대가로 돈을 받았고, 일체형 옷과 안전모를 착용했으며, 착륙지점에 깔려 있는 양탄자를 통해 보호되기는 했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 특히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약자를 놀이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1991년부터 지역별로 이 놀이가 금지되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대법원인 꽁세유ㆍ데따(Conseil d’État)도 1995년에 이 놀이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런 조치와 판결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난쟁이 발사’ 공연으로 많은 돈을 벌던 술집ㆍ나이트클럽 업주들의 반발이 심했고, 이런 비인간적인 놀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놀이이니 당연히 금지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왜 논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행위의 금지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 이념상,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국가의 공권력도 국민의 대표들이 제정한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프랑스에는 공연에 관한 법률이 있었다. 1945년 10월 13일에 만들어진 이 법률에 따르면, ‘기이한 공연’은 시장의 허가 대상이었고, ‘난쟁이 발사’도 이러한 ‘기이한 공연’에 해당하여 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다만, 현재는 위와 같은 허가 제도는 사라졌는데, 사실 공연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국가가 어떤 공연에 대해 사전허가를 요구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난쟁이 발사’는 1990년대 초에 프랑스에 도입되어 시장의 허가를 받아 진행되었지만, 당시부터 논란거리였다. 프랑스 내무부장관은 1991년 11월 27일에 프랑스 각 도의 도지사들에게 ‘도지사들은 시장들에게 ‘난쟁이 발사’를 금지하도록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모르상-쉬르-오르쥬(Morsang-sur-Orge) 시장이 ‘난쟁이 발사’ 공연을 실제로 금지했다. 그러자 ‘난쟁이 발사’ 공연 기획자들이 베르사유(Versailles) 지방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시장의 금지는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시장도 똑같이 ‘난쟁이 발사’를 금지했고, 이에 대해 마르세유(Marseille) 지방행정법원에 똑같은 내용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베르사유 지방행정법원에서는 ‘난쟁이 발사’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이것을 금지하려면 그러한 금지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르세유 지방행정법원에서는 ‘난쟁이 발사’는 공공안전이나 공중도덕을 크게 해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이처럼 공연 기획자들이 모두 승소하였다. 시장들은 꽁세유ㆍ데따에 상고하였다. 꽁세유ㆍ데따는 1995년 10월 27일에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는데, ‘난쟁이 발사’는 “신체장애가 있고, 그것이 드러나 있는 사람”을 발사물로 이용하는 것이고, 난쟁이가 여기에 동의하고 돈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꽁세유ㆍ데따에는 사건이 접수되면 먼저 그 사건을 살펴보고 의견을 정리해서 대법관들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하는 판사, 즉 보고관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 보고관이었던 프리망(Frydman)은 ‘난쟁이 발사’는 “한 인간을 단지 하나의 탄환으로 취급하여, 다시 말해 물건으로 격하시켜 발사하는 공연”으로서, 국민들이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은 2류 취급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저속하고 패륜적인 행동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3. 꽁세유ㆍ데따의 판결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지만, 법적으로는 그 근거가 명쾌하지 않았다. ‘난쟁이 발사’와 같은 ‘기이한 공연’은 1945년 10월 13일자 법률에 따라 시장의 허가를 받은 것인데, 이를 ‘인간의 존엄성 침해’를 이유로 금지할 수 있다는 명문규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프랑스에서는 명문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공공질서(公共秩序)’에 장애를 야기하는 경우에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가 인정되고 있었다. 다만, ‘공공질서’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는데, 1900년대 초반까지는 (1) 국민의 안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거나(‘공공안전(公共安全)’에 대한 장애), (2) 국민이 편안하게 생활할 권리를 해친다거나(‘공공평온(公共平穩)’에 대한 장애), (3) 전염병이나 식중독 등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공중위생(公衆衛生)’에 대한 장애)에 대해서만 명문의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었다. 즉, 공공안전, 공공평온, 공중위생, 이렇게 3가지만 공공질서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모두가 지켜야 할 당연한 질서와 윤리, 즉 ‘공중도덕(公衆道德)’에 크게 어긋나는 경우에도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 추가되어 공공질서는 공공안전, 공공평온, 공중위생, 공중도덕, 이렇게 4가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난쟁이 발사’는 문제가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위의 4가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발사되는 난쟁이에 대해서는 안전장치가 있었고, 관객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난쟁이 발사’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과 같은 실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밖에서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해로운 음식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었다. 발사되는 난쟁이도 보수를 받았다. 그래서 지방행정법원에서도 ‘난쟁이 발사’는 금지될 이유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낳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권사상이 강화된 데다, 1990년대에는 인간은 누구나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절대로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즉 인간의 존엄성이 이미 널리 강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놀이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난쟁이가 돈을 벌기 위해 ‘난쟁이 발사’에 지원하는 것도 진정한 자유의지에 기인한 자발적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난쟁이라는 신체적 약점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 쉽지 않아 열악한 처지에 놓이다 보니 할 수 없이 ‘난쟁이 발사’라도 하게 된 것일 수 있었다.


꽁세유ㆍ데따의 ‘난쟁이 발사’ 금지 판결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 나온 것인데, 여러 모로 의미가 컸다. 공공안전, 공공평온, 공중위생, 공중도덕, 이상 4가지 외에 ‘인간의 존엄성 존중’도 공공질서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리망은 이렇게 서술하였다: “비록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현행 법령의 공백 때문에 우리의 결론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가 보기에, 법적 공백이 있거나 유효한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 입법자 또는 규제기관의 부작위를 가능한 한 메우는 것은 판례의 역할인 것 같다.”


4. 꽁세유ㆍ데따의 ‘난쟁이 발사’ 판결의 결론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정한 법률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며, 위와 같은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이러한 법치주의 원칙이 함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 프랑스 국민들과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의 공공질서 개념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사회적 해악을 야기하는 잘못된 행위들을 법에 모두 다 미리 규정해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대비한 일반적인 조항을 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은 늘 공권력 남용의 우려를 수반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고, 그래서 이 문제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