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이은화 「사연 있는 그림」

  • 510호
  • 기사입력 2023.02.27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 조회수 1215

‘관람’이 아닌 ‘전개’ 영역의 미술

전시회를 찾는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터파크 빅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전시회 예매 상품 이용객이 전년 동기 대비 59% 늘었고 거래액은 81% 증가했다. SNS을 통해 전시회에서 찍은 예쁜 사진을 공유하는 것 또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전시회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한 경험 때문이다. 미술은 늘 발전하고 새로움을 추구해서 같은 전시관에서도 주기적으로 색다른 전시와 공간 디자인을 선보인다. 영화와 뮤지컬에 비해 관람료도 저렴한 편이어서 ‘다양한 경험’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시회는 최고의 선택지다. 그러나 전시회에 대한 시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SNS에 올릴 사진만을 목적으로 전시회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색감이 예쁜 작품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찰칵 소리를 낸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문객에게 사진을 찍게 비켜 달라는 경우도 많다. 예술가의 정성 어린 작품이 SNS사진 배경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과거보다 전시회 관람객이 많아졌는데도 ‘감상’보다 ‘사진’이 주목적이 된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작품 감상을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소설에 비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어서 감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으로는 그림의 경우 이야기가 한눈에 보이지 않다는 점이 언급된다. 작품이 표현하는 대상이 액자 속 멈춰진 시공간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개시키는 건 오로지 ‘관람객’의 역할이다. 관람객에게 지식과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미술은 다른 대중문화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그러나 미술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영역이다. 예술가가 어떤 생각으로 선을 잇고 붓칠을 했는지 안다면 액자 속 멈춰진 공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한층 더 다채롭게 만들 이은화 저자의 「사연 있는 그림」을 읽어보자.


예술가와 대화하는 법 

「사연 있는 그림」에선 예술가 32인의 삶과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듯 예술을 이해할 때도 대화가 필요하다. 예술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관을 형성했는지 알면 작품을 보는 시선이 넓어진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 순간에 그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라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이런 열정으로 작품이 더욱 의미 있어진 것처럼 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빛나는 것 또한 각자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 있는 그림」을 통해 예술가가 어떤 세월을 겪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이 현대에 남았는지 알면 미술이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마르셀 뒤샹 <샘>,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마르셀 뒤샹의 <샘>은 대표적인 현대 미술 작품이자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작품인 ‘변기’만 봤을 땐 이것이 어떻게 예술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사연 있는 그림」을 통해 뒤샹을 만나면 <샘>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1887년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뒤샹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화가로 활동했다. 당시엔 예술가가 그리거나 잘 만든 창의적인 것만 미술 작품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뒤샹은 작품 자체보다 미술가의 생각이나 선택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작품 <샘>을 전시에 내놓았다. 전시회 이후 <샘>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반박에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 “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한 뒤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적 의미를 상실시키는 장소에 갖다 놓는 것이다. 결국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낸 것이다.” 뒤샹의 말처럼 일상 물건도 작가의 선택으로 미술이 된다면 미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이후 예술의 영역은 망막에서 지성으로 확대됐는데 이점에서 뒤샹의 <샘>은 큰 명예를 누리게 됐다. <샘>외에도 뒤샹이 선택한 다양한 일상 오브제들은 20세기 최고의 미술 작품으로 추앙받으며 세계 유명 미술관들에 있다.


▲ 니키 드 생팔 <사격회화: 빅 샷>


1961년 어느 날, 파리 몽파르나스의 조용한 골목에 많은 평론가와 미술가가 모여 있었다. 호기심과 긴장감 속에서 니키 드 생팔은 붓 대신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고 총성과 함께 그림 위에서 물감이 흘러내렸다. 최초의 ‘사격 회화’였다. 사격 회화는 물감 주머니가 숨겨진 흰색 부조 위에 총을 쏘아 물감이 사방에 튀고 흐르게 하는 기법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평론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예술입니다. 나는 새로운 재료를 갖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높게 평가받은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은 그의 삶을 완벽하게 투영하고 있다. 니키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지만 내면은 엉망이었다. 니키가 “나는 우울한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났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니키 어머니는 우울하고 불안해했으며 아버지는 엄격했다. 니키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는데 친아버지가 어린 니키를 범한 것이었다. 사격 회화에서 니키의 총 쏘기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자 분노의 표출이고 자기 치유의 한 방법이다. 니키는 자신의 고통과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점에서 니키 드 생팔의 사격 회화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뒤샹의 기발한 발상을 모르는 관람객은 <샘>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더불어 니키 드 생팔의 고된 유년 시절을 알아야 그의 사격 회화에 깊이 빠질 수 있다. 작품 감상에 빠지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삶을 이해하며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대화의 첫걸음으로 「사연 있는 그림」을 읽는다면 미술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예술을 알아간다는 건, 허기진 영혼의 곳간을 채워 나가는 일이라고,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고 궁극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연 있는 그림」 프롤로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