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서예미학』지은이 조민환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 510호
  • 기사입력 2023.03.07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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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표현하는 예술’ 차원에서 바라본 조선조 서예사의 큰 흐름



이 책은 우리네 서예사에 자취를 남긴 주요 작품들과 여러 인물들의 서론(書論)을 통해 조선조 서예미학의 전모를 되짚어낸 연구서다. 한 시대의 서예풍조가 어떻게 그 시대를 이끈 철학, 문예사조, 정치 상황과 연관되는지, 한 시대를 풍미한 서가(書家)들은 또 어떻게 자신만의 서예미학과 서예세계를 구축해나갔는지 살펴본다. 주자학ㆍ양명학ㆍ노장학이란 세 가지 거시적 사유틀에서 출발하여, 문인사대부 주류의 서예인식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주자학 중심의 중화미학(中和美學)적 기제를 재조명하면서도, 무엇보다 그 면면에 내재한 ‘심화(心畵)’ 차원의 서예인식을 해명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아울러 주자학과는 또 다른 지형에 놓이는 양명학ㆍ노장학의 차원에서는 조선조 서풍(書風)의 진폭을 넓혀간 자유롭고 독창적인 서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서예사대주의를 넘어서는 한국서예의 가능성까지 타진해본다. 작가 자신이 어떤 마음을 표현하는가에 따라 작품이 구체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 차원에서 조선조 서예사의 큰 흐름을 조망해볼 수 있는 책이다.


◈ 조선조 서예미학을 이해하는 기본 사유


1부는 조선조 유학자들의 서예인식에 대해, 특히 ‘서예’라는 용어를 ‘마음의 그림[心畵]’이라고 이해한 것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일찍이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규정한 이는 한대 양웅(揚雄, BC 53~AD 18)이었다. 글씨 속에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이러한 사유는, 서예가 문자를 통한 단순한 의사소통과 지식전달의 도구라는 실용적 차원에서 벗어나 ‘마음을 그린 예술’이라는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서예는 심법(心法), 심학(心學), 전심(傳心) 등으로 말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서예인식은 조선조 유학자들의 서예작품 속에서도 두루 확인되며, 이 책에서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탐색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흔히 한국은 ‘서예’,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는 용어를 써서 서예가 지향하는 점에 대한 차별점을 드러내곤 한다(조선조 유학자들의 문집을 보면, 이미 퇴계 이황(李滉)이 ‘서법’이 아닌 ‘서예’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 주자학과 서예미학 1 —이황의 상징성


제2부에서는 주자학이 조선조 유학자들의 서예미학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조선조 서예미학의 큰 틀을 제시한 퇴계 이황의 서예미학에서 출발한다. 특히 이황이

‘지경(持敬)’을 바탕으로 삼아 서예미학을 전개하면서 ‘심화’ 차원의 서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서법’이 아닌 ‘서예’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한 지점들에 주목한다. 이황의 서예인식은 주로 영남남인 계열에 속한 인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조선조 서예미학의 한 ‘경향성’과 그 특징을 보여준다.


◈ 주자학과 서예미학 2 —어필과 추사


서예가 어떤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가는 때론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 사람을 키우는 교육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조선조 제왕 가운데 이런 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가 바로 22대 국왕 정조(正祖)다. 정조는 주자학을 지배이데올로기 삼아, 당시 유행하던 백하 윤순(尹淳)의 ‘시체(時體)’ 풍 서체는 진기(眞氣)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온 나라 사람들이 윤순과 같은 사람의 필체를 따라 써서 참모습을 잃어버려 경박스럽다고 개탄했다. 또 개국 초 안평대군(安平大君)과 한호의 순정한 서풍으로 돌아갈 것[書體反正]을 촉구하면서 ‘심화’ 차원의 서예를 강조했다. 저자는 이렇게 정조가 글씨를 통해 당시 풍속을 진단한 것은 그만큼 글씨가 갖는 ‘심화’적 요소와 그 정치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 평가한다.


◈ 양명학ㆍ노장학과 서예미학


제3부에서는 양명학과 노장학이 서예미학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한국서예사에서 동국진체의 가교였다고 평가받는 백하 윤순(尹淳)은 글씨에 진기(眞氣)를 통한 ‘창경발속(蒼勁發俗)’을 담아내고자 했다. 겉으로는 주자학의 중화 서풍을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미불(米芾) 등 이른바

광기(狂氣) 서풍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같이 겉으로는 주자학이나 안으로는 양명학을 지향한 윤순 서예의 ‘외주내양(外朱內陽)’의 총체적 결과는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시체(時體)’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조는 이런 윤순의 서체를 도리어 ‘진기’가 없다고 문제시했는데, 저자는 조선조 서예미학을 이해할 땐, 정조의 윤순 비판처럼 예술성 이외의 정치ㆍ윤리ㆍ교육적 측면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한국서예 정체성의 진로


보론은 양명학과 노장학을 통해 한국서예의 정체성을 모색해보기 위한 제언으로 꾸려진다. 저자는 남아 있는 자료들로 한국서예의 정체성을 규명할 때, 두 가지 차원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주로 비학(碑學)이나 금석문 서예에서 보이는 부정형성, 무작위성의 차원이다. 이는 한국미의 특질로 말해지는 자연미와 유사한데, 다만 이런 분석이 한국서예사의 중심을 이루는 첩학(帖學) 측면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을 여전한 한계로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서예가들이 중국서예가들과 어떤 차별상을 보였는가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통해, ‘고아(古雅)한 예술 측면으로서 한국서예미의 특질과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왕희지의 서예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지점들이다. 보건대 그 ‘다른 점’에 한국인의 심성과 미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편(偏, 경향성)’에 담긴 서예를 기교의 공졸(工拙)이나 미의 우열(愚劣)만 기준 삼아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천진스러움과 천기(天機)를 담아낸 서체로써, 즉 자신의 마음과 감성을 자유롭게 담아내는 방식을 통해 어떻게 표현해내는지 심도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