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넓얕을 쓴 지식가게 주인’,
채사장 동문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513호
  • 기사입력 2023.04.11
  • 취재 송유진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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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타자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관계’를 떼놓고 우리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의 관계.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상처와 위로를 받다 보면 문득 타인이 살고 있는 세계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타인과 만나 각자의 세계에 침투하고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아름답고도 먹먹한 과정은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아와 타자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심오하고 놀라운 통찰을 듣고 싶다면 성균관대학교 01학번 국문학과, 철학과 동문 채사장(채성호) 동문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추천한다.


채성호 동문의 필명 ‘채사장’은 본인의 성인 '채'에다가 ‘지식 가게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사장'을 붙인 것이다. 채사장 동문은 성균관대학교 재학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마저도 가장 어려운 분야를 ‘타인과의 관계’로 뽑았다. 2014년 겨울에 출간한 첫 책이자 밀리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세계’를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열한 계단』으로 ‘자아’를 이루는 지식의 단계를 풀어냈다. 이제 그는 ‘세계’와 ‘자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다시 펜을 들었다. 흩뿌려진 관계들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만나 별을 이루는지, ‘만남’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채사장 동문에게 들어보자.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 껍데기가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만남세계와 세계의 충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남’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채사장은 ‘만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뒤흔들고 우리가 모두 언젠가 만난다는 신비로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만남은 우리를 무너뜨린다. 사람들이 새로운 ‘만남’에 주저하는 이유이다. 한편 만남은 우리를 기어이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 중에 반드시, 관계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내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왜냐하면 타인과 세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거기에 비친 자아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의의가 ‘자아의 진정한 의미 확인’이라는 구절은, ‘타인 중심적’인 보통의 만남을 되돌아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맺어왔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관계가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떤 강렬한 흔적을 남겼는지 되돌아본 적이 있는가? 채사장 동문은 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그토록 두렵던 타인이 닿을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존재이고, 타인으로 가득 찬 이 세계가 사실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우리 곁의 사소한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들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해주었지만,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만큼 우리가 성숙했을 때, 그들은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만남’과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미 부여와 자아 성찰이 중요한 이유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은 자기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우연처럼 만난 타인들로부터 천천히 해답에 다가가야 한다.



인생에 대한 상징, ‘만다라

원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반복으로 채워지는 만다라(曼陀羅)는 미적인 색감, 그리고 완성하는 데 드는 승려들의 엄청난 정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만다라가 담고 있는 내용은 우주의 진리와 깨달음의 경지이다. 제작 과정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이나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작은 금속의 관에 모래를 담고 이를 진동시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만다라가 완성되는 순간, 승려는 둘레의 가장자리부터 중앙까지를 손짓으로 훑어 만다라를 지운다.



채사장 동문은 만다라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를 ‘인생에 대한 상징’이라는 데서 찾았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모든 노력과 정성은 집착이 되어 모래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이것을 붙들고 싶어하지만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거나, 삶을 움켜쥐고 싶을 때 만다라를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성공, 풍요, 만족, 승리, 부유함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도, 극적이지도 않으며, 세속의 자신이 원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심연의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와서 배우려고 한 ‘무엇’은 어디에 있는가? 채사장 동문은 우리가 성숙한 영혼이라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용기 있는 영혼이라면 ‘무너지는 것’ 안에서 배우려고 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움켜쥔 만다라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의지. 그 의지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세상에 왔다.


책장을 넘기며 천천히 삶과 만남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은 당신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나는 이제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임을 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바로 그것임을 안다.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거울에 비추어보듯 희미하게나마 관계의 끈을 잇고 있지만, 무한의 시간이 지난 먼 훗날의 어느 곳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반갑게 마주할 것이다. 헤어짐도, 망각도, 죽음도, 아쉬운 것은 없다. 우리는 운명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출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