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548호
  • 기사입력 2024.09.29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13292

한자가 동북아 국가에 갖는 영향력만큼 유럽에서는 라틴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라틴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이루는 로망스어의 모태가 되어 유럽의 언어, 문화, 종교, 학문적 기초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라틴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보다 증가하는 분위기다. 모든 외국어가 배우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특히 라틴어는 수많은 동사 변형을 비롯한 복잡하고 어려운 장벽의 고충을 겪는 학습자가 많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은 저자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한 라틴어 수업 강의를 글로 옮긴 저서다.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 언어들, 그리스 로마 사회의 문화, 법, 종교 그리고 오늘날의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라틴어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가의 이야기와 삶의 철학을 녹여냈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작가, 교수, 사제 등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 외에 다양한 학술서의 저자이자 후학 양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한동일 교수를 만나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공부하는 노동자 한동일입니다.


◈ 성균관대학교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떻게 우리대학에 오게 되셨나요?

이번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부임하여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열어주고 싶다는 성균관대학교의 의지’와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저의 의지가 만나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서강대학교에서 강의 할때 성균관대 의학전문대학원에 계셨던 교수님이 제 수업을 들으러 오셨었는데, 우리 의대생들에게도 꼭 필요한 강의라고 하신 말씀이 깊이 기억에 남아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정말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성균관대학교 총장님과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님께서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제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총장님 및 학교 관계자들께서 “우리 학교는 앞에 있는 학교를 제치고 경쟁하고 1, 2위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성균관대의 모토인 ‘인류와 미래 사회를 위한 담대한 도전’을 실현하고자 장차 국가와 인류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위해서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훌륭한 교수님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 법학, 의생명, 또 그 어떤 분야든 어떤 곳에 계시든 훌륭한 교수님을 모셔 오는 일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셨는데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책임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 이번 학기에는 어떤 강의를 맡고 계시나요?

학부생 강의 두 개와 로스쿨 강의 하나를 맡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와 법의 정신> 수업과 다른 하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의가 무엇일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다른 선생님과도 대화하면서 로스쿨 입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학부생들에게 도움이 될 법철학 학부 수업을 열 계획입니다. 2025년 학기 시작에는 로스쿨 면접에도 도움이 될 법철학 강의를 진행해 보려 합니다. 출제자의 관점에서 학생들이 한 번쯤 사고해 봤으면 하는 법철학 내용들을 중심으로 다룰 계획입니다.


저의 수업을 처음 듣는 분들은 조금 두려울 수 있어요. 모두 잘 모르는 길로 향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이번 학기에 제가 맡은 강의가 아쉽게도 폐강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학부생들과 만나다 보니 첫 주차의 욕심이 되려 학생들을 겁먹게 한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8월 말 교수 임용으로 제 강의를 알릴 시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는 것 같고요. 현재는 다음 학기에 열리는 <라틴어 수업>과 로스쿨 교수 시점에서 알려주는 <로스쿨 준비 강의> 이 두 개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학기에는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제 수업을 들어보세요. 성균관대 학생 여러분을 되도록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어려운 라틴어 얘기만 하지 않을 것이고요, 학생들이 학점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학점도 후하게 드릴 겁니다. (웃음) 수업에서 만나요.  


◈ 이전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 강의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만의 특별한 수업 방식이 있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저의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번 교수 임용 면접에서 총장님과 이사장님께 이렇게 얘기했어요. 


“40대의 한동일은 자신감도 있었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0대가 된 한동일은 부족한 점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학문적으로 매일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많은 한계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또 인간적으로도 미성숙함을 많이 느낍니다.”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통찰을 공유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헤겔이 말했듯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서야 할지를 아는 것'처럼, 제 수업이 그런 약함을 인정하고 디딤돌 삼아 다시 나아가는 길에 여러분의 손을 잡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번 신간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어떤 책인가요?

짧게 말씀드리면, 제가 학생 시절부터 유학 시절, 변호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 이후, 사제로 살다가 그만두기까지, 그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를 위로하고 지지해 주었던 문장들을 수록했습니다.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이들이 각자 자신의 어려움만을 말하다 보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허공에 외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로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아픔이 스토리가 되어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할 힘이 되도록 염원하며 썼습니다. “인생을 나누면 자신이 쉬워지고 인생을 결합하면 자신이 어려워진다. Zerstücke das Leben, du machst dir leicht/Vereinige es und du machst dir’s schwer.” 라고 괴테가 이야기했습니다. 인생에서 어려움, 고통, 힘듦, 괴로움을 겪어 나가는데 이 기억들을 다 합치게 되면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잘게 쪼개야 하는 것이죠. 시간들을 잘게 쪼개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내게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게 될 겁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큰 기로에 서거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을 때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시나요?

제가 예전에 한 특강에서 30대 CEO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어요. “선생님은 많은 것을 이루셨는데, 앞으로 더 무엇을 남기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남기고 싶은 것보다 남기고 싶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후회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가 후회가 별로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많은 후회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의 기준을 후회로 잡습니다. 예를 들어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 과정을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미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것으로 충분한데 굳이 왜 그 길을 가냐고 했죠. 그때 저는 44세였는데 20년 후의 제 모습을 떠올려 봤습니다.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야구를 보면서, "그때 그걸 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제 모습이 보였어요. 그래서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요. 앞으로 만날 학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지금의 결정을 할 때, 현재의 나만 보지 말고 20년 후의 나를 떠올려보세요. 그때 그 결정을 안 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질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장 유익하거나 이익이 되는 것보다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라틴어 수업 중에서 ‘데 메아 비타(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이야기가 가슴 깊이 남았습니다. 교수님께선 밖에서 봤을 때 정말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을 걸어오셨는데 교수님의 ‘데 메아 비타’를 쓰신다면 그 한가운데에는 무엇이 들어갈까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 언제나 그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질문의 답을 현재로선 참 드리기 어렵네요. 저도 여러분과 같이 아주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라’는 말을 듣지만, 경쟁과 비교가 만연한 시대에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만의 길을 찾으려고 해도 우린 서로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이러한 반문 속에 담겨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저도 긴장하죠. 낯선 곳에 오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해요. 두려움에는 긍정적인 두려움과 부정적인 두려움이 있어요. 긍정적인 두려움을 발돋움 삼아 자신만의 걸음을 찾고 남과 비교하는 대신 나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더 나은 모습으로 나를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비슷합니다.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삶은 늘 '그만둬'라며 유혹하죠. 그때마다 저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계속 구별하면서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될까 안될까를 간 보지 않고 '그냥 하기'만 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 앞으로 교수님의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다음 학기 수업을 잘 열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갖고 있더라도 이야기를 펼칠 마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회가 저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이유도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해서입니다. 학생들을 얼른 만나보고 싶네요. 제 수업을 듣고 나가는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인가 한 가지라도 깊이 남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라틴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Vivere est semper secum quaerere qui suus locus in universe sit


“평생 내가 설 자리를 고민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내가 발붙이고 서 있어야 할 한 뼘의 자리, 엉덩이 붙이고 견뎌야 할 나의 의자는 어디인가?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中


인간은 평생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묻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내가 설 자리를 찾기 위해 한 발 한 발 떼어놓는 발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재미있는 놀이와 유흥을 뿌리치고 지금 책상 앞에 공부하는 나, 화창한 날 어딘가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나, 이 모습들은 결국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자 대답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내가 설 자리를 바꿔놓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