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플까-<br>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 저

우리는 왜 아플까-
대리언 리더/데이비드 코필드 저

  • 322호
  • 기사입력 2015.04.28
  • 편집 김진호 기자
  • 조회수 8822

이 글은 오거서 독서리뷰에 chashercat 님이 올린 것입니다.


가끔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화병이 났다거나 혹은 심병이 들었다는 말을 자주 본다. 이 화병과 심병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화나 스트레스에 의해서 나타나는 신체적인 질병 또는 심병이나 화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개방한 이래 한의학과 양학은 꽤 두터운 벽을 쌓아두고 서로 이야기를 안 했고, 이러한 심리적인 이유에 의한 질병을 인정 하지 않다가 최근 십 여 년 사이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책 '우리는 왜 아플까? ; 질병 심리학'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금 넓은 의미의 심리적 상태가 몸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리적 상태라는 것은 심리적인 외상 즉 '트라우마'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포함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환자의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스트레스성 질병의 원인을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 스트레스성 질병들의 원인이나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알레르기 같은 과민성 반응의 원인으로 어린 시절 겪었던 일종의 공포증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얼추 논리와 사례들을 들어보면 맞는 이야기이다. 확실히 의사들은 인간에 대해서 그저 단순히 화학반응의 집합체로 보고서 대상을 이해하려 하고, 심리적 기재들을 배제했다. 뇌과학이 발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심리학을 질병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는 말도 어이없는 말이고, 그렇다고 신체를 화학반응적으로 보지 않는 것 또한 멍청한 행위다. 다만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연관관계가 있는 상황'인가 혹은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 상황'인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D.Hare는 말했다. 경험이란 것은 단순히 그런 상황이 있다는 것이지 원인을 말해주지는 않는다고. 진정으로 과학자라면 이 책을 읽었을 때 이것이 과연 정말로 인과관계의 선상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연관관계의 선에서 멈추는 것인가. 또한 이것들은 정말로 과학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심리학으로 설명 한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설명 하자. 정신분석학은 19세기에 프로이트에 의해서 제창되었고, 그 이후 카를 융이 새로운 정신분석학을 내놓으면서 카를 융의 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으로 임상심리학을 두 가지로 분류를 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과 함께 이 둘은 심리학에서 퇴출당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심리학'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을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라고 대답을 하는데, 심리학입문을 들은 사람이라면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비 규칙적인지 알 수 있다. 일종의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프로이트에 기초한 정신분석학도, 카를 융에 기초한 정신분석학도, 과학적으로 과연 그게 옳은 분류이고, 법칙이 일관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 확인을 위해서는 엄청난 수준의 뇌 과학의 발달이 요구된다. 프로이트의 인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다만 이 정신분석학을 그냥 하나의 지표로 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판단 기준으로 쓸 수 있을 것인가는 논의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볼 때 원리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경향성이 그렇다는 식으로 봐야지 이것을 인과로 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에서 응용되고 있는 프로파일링도 적용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술로 인정되지 않는 것처럼 이 정신분석학을 과학적인 지표로서 인정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또한 정말로 20년 전에 있던 사건이 빌미가 되어서 질병이 일어날 수 있을까? 본 서적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과연 정말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인과의 관계일까 혹은 그냥 연관만 있던 관계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주기 위해서는 심리라는 변수가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이 주제는 아직 현대 의학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물리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스트레스의 측정 단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는 매우 특이한 존재다. 단순히 받는 압박감의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스트레스도 존재한다. 심리학에서도 사람마다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다르고, 한가지의 사건이 여러 사람들에게도 같게 다가오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아직 스트레스에 대한 합의가 많이 필요하고, 정량화도 필요하다. 그 다음에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이 오래 전의 사건과의 인과성이다.

연관성이 있고, 그것이 인과성이 입증된 것인가? 이 질문은 굉장히 재미있는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과학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자주 실수하는 것으로 인과성과 연관성을 오해한다. 생명과학의 분야 중에는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라는 학문이 있는데 이것은 세포 내부의 단백질과 유전 물질의 반응을 모두 기록해 컴퓨터로 재현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이런 학문도 이제서야 E.coli 하나를 모델화 하는데 성공했고, 이제야 다세포쪽으로 넘어보고 있을 정도로 간단한 세포라고 해도 그 단백질 반응은 무지막지하게 복잡하다. 예를 들어 히스톤(Histone)단백질의 경우에는 H3(3번 단위체)의 Y14, Y19, K15 이 세가지 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단백질 하나에도 단순히 하나의 작용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단백질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백질의 작용기를 모조리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어야하고, 아직도 연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가 진행이 되었을 때,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고 발표한 외국의 논문들이 우리나라 기자들에 의해서 소개가 되면 모두 'A에 의해서 생긴다'라는 식으로 인과적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연관성은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다만 사례가 있는 만큼 그것의 연관성이 아예 없다고는 부정하기 힘들다. 그럼 의사들은 이러한 것을 놓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사람을 보고 진찰을 해야 하지만, 의사들은 사람을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굉장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근대의 과학이라는 것이 물론 탈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지만, 그것은 오래 계속되어서는 안 되는 면모였다. 그러한 면모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결여된 학문은 결국에는 한계를 맞이하게 되어있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럼 과학자들은 어떻게 인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까? 인간적인 감정이 섞인다면 과학적 결과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인 셈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다만 생명과학적인 관점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논의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어야 한다. 생명을 다룬 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윤리의 범위를 쉽게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서 진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학적인 질병의 연관관계이다. 다만 이 책의 정보를 모두 신뢰하지는 않고 다만 아 이런 점에서 연관관계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이론으로서 받아들이려면 뇌과학, 심리학, 통계학, 의학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정확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이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례는 무시하지 않되,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