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없는 원숭이 <br>데스몬드 모리스 저

털없는 원숭이
데스몬드 모리스 저

  • 324호
  • 기사입력 2015.05.26
  • 편집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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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거서 독서리뷰에 종이공 님이 올린 것입니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동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약력을 보면 런던 동물원의 포유류 관장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가 학계에서 근무했다는 경력은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현장’의 학자인 셈이다.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에 대하여 남다른 인식과 견해를 지닌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관점은 새롭다. 진화론적 인간이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견해는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데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원숭이라는 보편성과 인간이라는 특수성
그는 인간을 여러 원숭이들 가운데 하나로 파악한다.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어놓은 게 일반적인 견해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견해는 새삼스럽다. 인간은 원숭이라는 상위개념에 딸린 하위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침팬지, 오랑우탕, 비비원숭이 등과 함께 인간이라는 원숭이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그들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숭이라는 보편성과 인간이라는 특수성을 지녔다는 이 견해는 다윈 이래의 진화론에 입각한 것이며, 현대 생물학의 큰 조류와 합치된다.이러한 견해는 다른 동물은 다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나 인간만은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는 빈 서판(tabula rasa, a blank slate) 이론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이며, 생물학적 이론이 다른 동물들에게는 해당되어 설명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설명 불가능하다는 인간예외주의에 대한 대척 이론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란 동물의 일종일 뿐이며 인간 또한 다른 동물처럼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동물이다. 털 없는 원숭이일 뿐이다.

잡식동물이 된 사연
이 털 없는 원숭이는 가장 뛰어난 기회주의자로 변화한 환경에 누구보다도 재빨리 적응하는 존재이다. 이 뛰어난 적응력, 이 뛰어난 기회주의의 변모는 지구상에 빙하기가 찾아왔을 때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숲에서 살면서 식물을 먹이로 쓰던 이 원숭이들은 빙하기가 찾아와 숲이 축소되고 먹을 것이 떨어지자 숲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는 모험을 감행한다. 빙하로 뒤덮인 세계에서 식물성 먹이는 대부분 사라졌다. 애초에 과일, 견과류, 딸기류, 식물의 싹과 나뭇잎 등을 먹던 이들은 온갖 동물을 잡아먹는 습성을 키워나갔다. 이는 인간이 잡식동물이 된 기원이 된다. 육식을 하게 되면서 이 원숭이들은 후각이 발달하게 되고, 청각이 예민해지게 되었다. 손에 무기를 쥐게 되었고 근육이 발달하면서 체격이 우람해졌다. 냄새가 지독한 똥을 누게 되었다. 협동성과 사회성이 발달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두뇌가 커졌다. 무기를 잡았던 손은 이제 무기를 비롯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지니게 되었다. 바로 이들이 인간이다. 이들은 원숭이 족속 가운데 가장 성공한 원숭이로 불린다. 이들은 자신을 호모 사피엔스, 호모 파베르, 호모 로쿠엔스 등으로 지칭하면서 지구라는 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원숭이’이다. 도시를 발전시키고 인구를 증가시켰으며 문명을 탄생시켰지만 여전히 원숭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고작 수천 년 동안 쌓아온 문명 상태를 이 원숭이들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생물학적으로 이 원숭이들은 원시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데즈먼드 모리스의 진단이다. 문명적으로는 우주선을 날리는 존재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영장류의 습성을 지니고 있어, 영장류 시절의 미각대로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좋아하는 존재--그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위기
인간이라는 원숭이는 최근에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이 위기는 그들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 다시 말해 거의 모든 생물체를 음식물로 삼으며 자연을 자기 뜻대로 개조하여 생육과 번식에 이용한 까닭에 발생하였다. 데즈먼드 모리스가 적시하는 털 없는 원숭이의 위기는 ‘인구과밀’이라는 핵폭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피임과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문제가 그다지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되지 못한 지금 처지에서 보면 피임만이 현실적으로 유효한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생명체의 기본원칙이 번식이라고 압축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번식의 과도함으로 인한 인구증가 때문에 ‘피임’이라는 번식을 억제하라는 명령에 봉착한 것을 보면, 이는 ‘진화론적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때는 지구의 지배자였으나 덧없이 소멸한 공룡처럼 인간도 언젠가는 다른 생명체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저자의 예견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우주와 자연의 규칙이란 이토록 엄정한 것이다. 자가당착과 자승자박에 빠진 털 없는 원숭이들은 지금도 영장류 동물의 공격성을 드러내며 이라크와 발칸과 팔레스타인에서 복종을 허락하지 않는 무자비한 살상과 파괴를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류는 (인구증가로 인해) 굶어죽기 전에 파국, 멸종을 맞을지도 모른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그 점을 분명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