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넘어선 사회학

상식을 넘어선 사회학

  • 341호
  • 기사입력 2016.02.15
  • 취재 이지원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8129

이 책은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오해를 받는 사회학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소재를 토대로 사회학에 관한 관심을 환기해준다. 이 책은 크게 앞의 두 장이 핵심으로, 사회가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나 사회는 비합리적인 정서적 유대 및 결속에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유대의 감정은 종교 및 사회적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사회학의 토대의 중심적인 기본을 형성하며, 이러한 기본적 요소에 따라 다음 네 장에서 다양한 주제를 상식에서 벗어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또한 뒤르케임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학자들의 시각 및 주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흥미로운 사례를 통한 사회학적 설명을 통해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합리성의 비합리적 토대
첫 장에서 필자는 사회학은 모든 사람과 학문, 사회는 합리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반론을 제기한다고 본다. 사회학에서는 합리성이란 절대적이지 않으며, 비합리성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필자는 관료제와 자본주의를 예로 들어 베버와 만하임은 합리성을 기능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으로 분리하였으며, 기능적 합리성은 실질적 비합리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의견에 중심 및 기본에 있는 인물이 에밀 뒤르케임이다. 뒤르케임은 사회 계약론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는데,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라면 합의나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사회 조직은 궁극적으로 계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계약 자체도 비합리적인 전계약적 유대라는 신뢰에 기반하여 성립되었으며, 이는 합리성이 자신의 한계를 지적하며, 유대라는 비합리적이고 전계약적 요소가 이를 보완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로 무임승차의 문제와 키티 제노비즈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예들은 다수의 합리적 개인들만으로는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심화적 정서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계약 경제의 발족 또한 전계약적 유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사회학적인 접근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나 그것들의 궁극적인 모체는 사회학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제1장은 이 책 전체의 핵심적이면서도 기초적인 부분과 함께 뒷장들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를 쉽고 간단한 설명 및 용어정의로 이해하기 쉽게 하였고 다양한 사례들의 제시를 통해 설명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뒤르케임과 같은 사회학자들의 의견들을 제시하고 옹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반론 및 필자의 의견도 같이 피력한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신의 사회학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은 종교는 불필요한 것이며 장차 합리성의 발전에 따라 종교가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학은 이에 대해 다시 상식적 관념 외의 제3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뒤르케임의 종교 이론에 기인한 것인데, 종교 이론의 요지는 종교의 핵심이 종교 구성원들이 치르는 사회의식이며, 종교가 사회적 통합 및 유대의 열쇠라는 것이다. 종교의 기본은 모든 것들은 성스럽고 속된 것으로 나누는 이원론이며, 성스러운 활동인 의식을 통해 구성원들을 결집하며 믿음을 이루어 낸다. 이러한 종교적 특성이 곧 사회 자체의 특성과 일치하며, 신은 일종의 사회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이론을 사회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는 도덕적 힘을 발휘하여 구성원들이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집단에 속해 있으며,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함이다. 소속감 및 정서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는 집단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집회에는 의식 및 상징물을 통해 구성원들의 믿음을 강화시킨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한 정체성 및 도덕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며 외부인들을 도덕적 처벌, 즉 사회 소속감을 박탈시켜 배척하게 된다. 사회구조나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따라 종교도 변화하는데 베버, 마르크스, 레비-스트로스 등 다양한 사회학자들이 사회 구조와 종교의 변화에 대해서 다양한 인과적 관계들을 분석한 이론들을 내놓으며 이를 뒷받침하였다.

한편, 종교는 사회와 같은 거대한 단위뿐만 아니라 개인과 같은 작은 단위들에 대한 분석에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개인들의 유형도 다양하게 분화하고, 이와 같은 결과는 종교가 추상적이고 아득한 개념으로 변화하는데 일조하였다. 이와 관련된 사회학자의 이론이 뒤르케임 학파의 학자 고프만의 상호작용 의식이다. 고프만은 개인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지며 심지어 자아나 이름 자의식마저 서로 협동적인 상호작용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란 서로의 이상적이고 완벽한 자아를 교환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자아의 내면적인 복잡함이 발생하는 것이며, 성스러움을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의식과 신화적인 현대적 자아 역시 그 맥을 같이한다.

이런 사회의식에 관한 이론은 앞 장의 내용을 이어받으면서 그 내용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무신론자인 뒤르케임의 입장에서 해석한 종교 이론 역시 충분히 사고 해봄 직한 이론이었다. 한편 종교의 세속화나 이단화와 같은 종교의 폐해에 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었는데, 이와 같은 내용이 더 반영되었으면 제1장에서 받았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제2장에서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권력의 패러독스
흔히 권력은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로 당연하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사회학적으로 정의된 사회적 권력이란 권력이 사회적인 조직에 연루되어 있고, 그 조직이 제공하는 권력을 쟁취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징에서 권력은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과 반발, 투쟁을 일으키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돈과 물리적인 힘, 유대감이라는 세 가지 직접적인 방법이 존재한다. 돈과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반발을 진압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도 널리 쓰여온 가장 일반적인 방법들이지만 둘 다 비효율적이며 그다지 효과가 높지 않다. 유대감을 부여하는 방법은 앞의 두 방법과는 그 방식이 다른데, 이는 사회적인 의식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일체감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여 투쟁을 무마시키는 방식으로 매우 높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 방법은 상당한 시간 및 노력을 해야 하며 권력이 분산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직접적인 방법 외에 간접적인 방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인데 간접적인 방법이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즉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에 권력자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파고들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이지만 권력자도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나 허버트 사이먼은 모든 것들은 최대화가 아니라 만족화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완전하지 못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발휘할 수 없으며 만족할 만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하면 강력한 권력은 불완전하나 치명적인 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가며, 권력자 자신은 신비스럽게 포장하면서 직면한 문제나 상황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권력이 개인적인 자유의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는, 상식을 벗어난 결론을 가져다준다. 이 장에서 나타난 갈등 및 반발의 통제 방법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그 사례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어 공감하게끔 만들었다. 특히 간접적인 통제 방법은 현대 사회의 정치인들이나 서비스 업계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만큼 권력이라는 주제를 사회학적으로 굉장히 날카롭게 파헤쳤다는 인상을 받았다.

범죄의 정상성
범죄에 관한 상식적인 관점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보수주의적 관점, 진보적인 관점, 급진주의적인 관점이 존재하는데 먼저 보수주의적 관점은 범죄자를 악인으로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처벌만이 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문명적 처벌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만을 조성하였고 범죄를 줄이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진보적 관점은 이와는 반대로 범죄자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려 하며 이는 범죄자의 가정환경, 지위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 입장은 분명히 이타적이며 범죄자들의 교화와 재사회화에 관심을 갖는다.

진보적 관점에 따른 범죄자의 관리는 오히려 교정시스템의 역효과를 불러와 교정시스템 내에서 범죄자의 재생산을 가져오는 결과를 불러왔다. 급진주의적인 관점은 위와 같은 보편적인 이론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경찰과 같은 법 집행 기구가 범죄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 관점은 낙인이론을 반영하여 범죄활동의 순환적인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약 및 도박 등 피해자가 없는 범죄에 대한 법 자체의 제정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어 낸다고 본다. 이렇게 범죄를 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뒤르케임의 범죄 이론이 가장 사회학적이며 상식 또한 벗어난다고 본다.

뒤르케임 이론의 핵심은 범죄가 사회 구조 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범죄는 정상적이며 모든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이 주장은 확실히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이다. 범죄자의 처벌은 단지 사회의 의식, 즉 쇼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의식은 대중들에게 규칙 및 법의 정당성을 사회 전반에 유포하여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결속시키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범죄에도 한계는 존재하는데, 범죄가 조직화하고 대형화될수록 오히려 법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으며 자율적인 시스템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범죄와 사회 사이에는 상호 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제4장은 범죄에 대한 다소 새롭고 흔하지 않은 관점으로 다가가 신선했다. 현재 논란이 되는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환기해준다. 이 논란에 뒤르케임과 필자의 관점을 주입한다면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처벌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법의 정당성을 유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시민의 의식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여 있으며 중범죄자에 대한 부적합한 처벌로 시민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사랑과 소유
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남녀관계는 사회에서 가장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부분이다. 그동안 사회 및 가족 단위에서는 가족의 구성에 따른 남녀 간의 역할 구분의 형태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여성의 지위 향상 및 각종 평등운동에 따라 최근에 변화의 기류가 불고 있다. 이를 상식과는 약간 다른 사회학적 해석을 거치면 가족 및 남녀관계 또한 사회의 계층을 구성하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이론을 성별 계층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소유에 대한 기본적인 관계를 통해 논할 수 있다. 성적 소유관계, 자녀소유관계, 가정소유관계가 그것이다. 성적소유관계는 남녀 간에 서로의 성적 소유권을 거래하여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와 같은 성적 소유가 가족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성적소유체계는 사랑의 감정 및 애정과 질투는 성적소유관계의 일반적인 구조에 따른다고 본다. 성적 행위 또한 하나의 의식으로서 감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약혼반지와 같은 상징물들을 주고받는다. 그다음으로 자녀소유관계는 성적 소유물에 관한 문제와는 다르게 근친상간의 금지라거나 결정권에 대한 제한 등 이른바 소극적인 규칙의 원리를 따른다. 부모는 과거보다 산업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인해 자녀에 관한 간섭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소극적인 규칙의 원리에 일조한다. 최근에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이나 친권 등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소유권이 중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정소유관계는 가족이란 세대를 운영하는 계속 진행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으며 현대 가정에는 하인이라는 존재의 부재와 함께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경제에는 성차별적인 지배의 사례가 존재하나 현대에 와서는 고소득 여성이 증가하면서 불평등이 완화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소유권들은 가족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소유권들이 도전받고 있으며 개인에 대한 지위가 강화되고 있다. 가족 자체가 이러한 도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변화와 도전에 해당하는 것들은 상징적인 것들에 불과하며 가족의 본질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5장은 사랑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소유권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에 접목해 해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장을 읽으면서 가족의 개념이 위협받고 있는 일례로 최근에 발생한 간통죄 폐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간통죄의 폐지는 성적소유관계를 일부 부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도전 및 변화가 계속된다면 과연 미래에는 소유권이 온전하게 남아있을 것인지 의심을 품게 하였다.

사회학은 인공지능을 창조할 수 있을까
꽤 오래전부터 인류는 스스로 생각이 가능한 기계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인공지능의 제작은 사회학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컴퓨터는 인간처럼 사회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뒤르케임의 말을 빌리자면 집합의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는 인간에 의해 입력된 정보만을 저장하며, 새롭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잘못 입력된 정보에 대한 수정의 감각이 없다는 것도 인공지능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다. 이에 필자는 SOCIO라는 내면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창조적인 사유가 가능한 인공지능 컴퓨터를 가정하였다.

SOCIO가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순서를 지켜나가야 하며, 적절하고 흥미로운 대화 소재인 문화 자본의 획득이 요구되고, 말하려는 욕구인 감정적인 힘이 필요하다. SOCIO가 혼자 있을 때도 자율적으로 생각하게 하여야 한다. 사람들과 상호 의사소통을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 능력이 존재해야 비로소 인공지능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SOCIO와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제작하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하겠으나 인공지능의 조건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의 과정을 재정리했다. 이 점에서 SOCIO의 의의와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제6장은 사회학의 미래적인 전망 및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최첨단 과학에서도 사회학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필자가 사회학에 대한 밝은 미래와 다른 학문과의 연계 가능성을 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1, 2장에서 먼저 짚고 넘어갔던 합리성과 사회의식,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사회학적 접근을 토대로 3, 4, 5, 6장에서 다양한 소재 및 이론에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 일관성 있는 구성으로 해석 및 이해를 쉽게 했다. 적용 또한 명료하게 일어날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한 학문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다른 학문과 연계하여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그렇게 간단한 과정만은 아니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사회학에 대한 식욕을 돋우려는 저자의 의도는 확실하게 이루어 질 거라고 본다. 이 책은 책을 읽은 후 이해하고 사유하며 적용 시킨 뒤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사회학에 대한 지식 범위 및 통찰력의 증가로 이어지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상식과는 항상 벗어나지만 상당히 인상적이고 이해할만한 뒤르케임의 이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