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작가

  • 446호
  • 기사입력 2020.06.28
  • 취재 김지현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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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를 넘기기 전, 제목부터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단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닌가. SF, Science Fiction이라는 책의 장르를 제목에서부터 자명하게 드러내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상대적으로 SF장르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찾는 베스트셀러 칸에 당당히 꽂히게 되었다. 자신의 공상과학소설 7편을 합쳐 책을 발간한 김초엽 작가는 신인 작가로는 놀랍게도 1993년생이라는 어린 나이로,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완연한 ‘과학도’이다. 작가는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려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0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02. 스펙트럼

03. 공생 가설

0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5. 감정의 물성

06. 관내분실

0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각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완연히 드러나듯, 각 장은 이과 장르에 문과적인 감성이 가장 적절한 비율로 섞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드넓은 우주로 나가 우리와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순간까지 낯선 이야기로 가득한 책. 따라서 대다수의 감성적인 소설처럼 대놓고 감정을 자극해 사람을 울리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좋든 싫든 한평생 인간 사이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인 우리에게, 더 잔잔하고 오랜 시간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에서 기술했듯이, 제목이 제목인만큼 각 소설은 모두 과학적 이론과 원리를 서사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기반으로 삼는다. 7개의 단편 소설 모두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각 소설의 초반부에는 소설 속 상황에 대한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적응기가 지난 후 각각의 독자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인물 간의 관계에 누구보다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인 인간이, 여전히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며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 우울, 모성애, 그리움 등 우리가 인간이기에 낯설지 않았던 감정들이 ‘이렇게 복잡한 느낌이었지, 우리는 인간이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새롭게 다가온다.


 태양계를 벗어나 웜홀을 통해 수만 광년 거리의 우주까지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게 된 먼 미래의 이야기,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과학의 발전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사랑과 연민. 이 모든 것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한줄 한줄 써내려가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본질이 바뀌지 않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