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지도-산드라 헴펠 저

  • 482호
  • 기사입력 2021.12.28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1692

코로나가 한창인 요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동선을 파악하고 역학조사를 통해 관련 사람들에게 주의사항 혹은 격리 조치를 안내한다. 오늘날에는 동선 파악과 역학조사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러한 일의 시작은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의 전염병학(역학)은 19세기 런던에서 콜레라 퇴치를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전염병이 돌아도 원인을 찾는 것조차 애먹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중 지도를 이용해 콜레라의 원인 분석에 성공했다. 이렇게 생겨나게 된 전염병학은 발전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 우리는 지도를 보며 통계학을 활용해 여러 세기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의 대유행과 중요하고 파괴적인 전파 과정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지도 기술이 어떻게 질병의 숨겨진 패턴을 드러냄으로써 전염병을 퇴치하는데 사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며 질병에 관한 역사를 한 권으로 설명한다. 책에서는 질병의 전파 방법에 따라 분류를 해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분류별로 대표적인 몇몇 질병들에 대해 설명하며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 공기로 전파되다- 천연두 

다른 많은 전염병들이 그렇듯 천연두의 역사는 수 세기에 걸친 침략, 탐험, 무역, 그리고 문명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천연두는 중국이나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에 도입되었으며, 아랍의 침략자들은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에 병을 퍼뜨렸다. 또한 십자군은 병을 유럽 깊은 곳까지 퍼뜨렸고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서아프리카까지 확산시켰다. 


18세기에는 천연두가 전 세계로 퍼지며 최고조에 달하였지만, 의학적으로도 큰 발전이 있었다. 이 질병 뿐만 아니라 다른 치명적인 전염병들을 통제하는 데도 도움을 줄 발전이었다. 바로 예방 접종이다. 미래의 병원체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약한 질병을 일으켜 인체가 항체를 생산하도록 자극하는 예방 접종은 수 세기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천연두를 치료하는 데 쓰였다. 소의 질병인 우두라는 가벼운 질병을 통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이 시술은 소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인 ‘바카(vacca)’에서 따와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천연두는 각 나라 방방곡곡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1908년에는 WHO가 전 세계적으로 천연두가 박멸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천연두가 박멸된 시점을 지도로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처음으로 완전히 제거된 유일무이한 인간 질병이 천연두다.


◈ 물로 전파되다- 콜레라  

전염병학 시작의 단초가 되었던 콜레라에 대해 더 이야기 해보려 한다. 1854년, 영국 런던에는 치명적인 콜레라가 빠르게 퍼져 하룻밤 사이 20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콜레라가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런던의 소호에서 콜레라에 대해 연구하던 의사 존 스노(John Snow) 박사는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를 통해 퍼지는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의료 당국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실이었고 근거가 필요했다. 스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집집마다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물은 뒤, 얻은 데이터를 지도에 표현했다. 이 지도는 사망자 대부분이 브로드 가의 우물 펌프 주변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존 스노의 주장을 입증했다. 이렇게 존 스노는 질병의 발생과 분포, 결정 요인을 연구하는 의학 분야인 전염병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하수 처리 설비와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면서 선진국에서는 콜레라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거나 이 질병이 풍토병인 국가에서 위생 상태가 악화된 경우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처음 발병했는데, 당시 심각한 지진으로 이 나라의 취약한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대피소에 몰려들어 생활했다. 이 유행은 환자 수가 70만 명이 넘고 그 가운데 9,000명이 사망한 근래 최악의 사태이다. 여전히 WHO는 콜레라의 발생을 공중보건에 대한 전 세계적인 위협 요인일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결여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로 취급하고 있다. 콜레라에 얽힌 비밀은 150여 년 전에 밝혀졌지만, 이 질병을 완전히 정복하기란 아직 갈 길이 멀다.


▲ 1854년 런던에서 콜레라 발생시 존 스노 박사가 만든 질병 지도



곤충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다- 발진티푸스 

“발진티푸스의 역사는 인류 고난의 역사와 같다.” 19세기 역학자 아우구스트 히르슈(August Hirsch)가 발진티푸스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이유는 오랫동안 가장 비참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수백 년 동안 병의 단골손님이었다. 수많은 죄수들이 붐비는 지저분한 영국의 감옥에서는, 사형 집행이 흔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에도 발진티푸스가 교수형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또한,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기아로 굶주리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들도 병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 병이 ‘지저분한 하층민’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환자들이 비난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이 시기 유럽에서의 발진티푸스 발병 사례를 지도와 그래프를 이용해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유행성 발진티푸스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발생하지만 중앙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고지대와 추운 지역에서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의 발병 사례는 대부분 부룬디, 에티오피아, 르완다에서 발생했다. 부룬디에서는 한동안 이 병이 발생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인류의 고난과 함께하는 병답게, 교도소에서 환자가 나왔고, 내전으로 집을 잃고 열악한 난민 수용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발진티푸스가 발병한 바 있다.


◈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다- 에이즈

에이즈는 동성애자 남성들에게 많이 발병한다는 이유로 ‘게이 전염병’이라고 불렸다. 몇몇 사람들은 성과 도덕에 대한 오래된 생각들을 반영해 중세의 여러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이 병이 신이 내리는 형벌이라 주장했다. 여기에 이 병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에이즈 진단을 받은 사람은 부끄러워하거나 다가가거나 만져서는 안 되는 환자로 여겨졌다. 그 결과 직업을 잃는 사람들도 있었고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떳떳하지 못한 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에이즈로 사망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역시 사망 전날에야 에이즈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하면 에이즈 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이 당당히 나서서 검사를 받지 못하며, 그에 따라 질병이 확산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던 중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1996년에는 부유한 국가들에서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HAART)으로 알려진 매우 효과적인 결합 요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4년 동안 에이즈 사망률은 84%나 떨어졌고, 그에 따라 과학자들은 에이즈가 곧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HIV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은 재정 문제로 이런 약을 구할 수 없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며, 오히려 많은 약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되어 논란이 되었다. 그에 따라 제약회사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그 약을 직접 생산하거나 더 저렴한 비용으로 수입하도록 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나 대규모 치료 프로그램을 관리할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값싼 약품이라 해도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쉽게 구입하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2016년 HIV에 걸린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를 지도로 표현하고 있는데, 역시 아프리카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상태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모든 질병의 이면을 살펴보면 여러 가닥으로 얽힌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들의 이야기와 전파와 발병에 관한 지도를 결합해 질병들을 설명한다. 실제로 질병 퇴치에 사용된 지도 기술들은 의학 발전을 촉진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으며, 결과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각각의 지도 뒤에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끈질긴 노력이 담겨 있다. 이런 지식은 인류의 치명적인 적, 질병과 맞서 싸우도록 우리를 계속 도와줄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_map_taken_from_a_report_by_Dr._John_Snow_Wellcome_L007291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