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처럼 살기- 최문형 저

  • 500호
  • 기사입력 2022.09.28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2029

식물은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무심코 지나가곤 한다. 연약하고 정적으로만 보이는 그들. 그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식물처럼 살자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식물처럼 살기’라는 책은 그저 단순히 ‘어떻게 살자’고 주장하며 답을 던지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학 연구와 강의를 해온 학자로서,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식물에 빗대어 친근하고 쉽게 접근하고자 애썼다. 이 책은 삶의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독자들에게 싱그러운 오아시스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 식물에게 시선 돌리기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이후, 지구는 전쟁, 살육, 테러, 분쟁, 환경파괴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간이 동물종의 하나라는 생각 또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탐욕, 공격성을 동물에 빗대어 포장했으며, ‘동물적 인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위장했다. 이러한 역사는 지구 생태계를 파괴했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물질적 풍요와 엄청난 발전 속에서 인간은 과연 진짜 행복한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흔히 동물은 강한 존재, 식물은 약한 존재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식물은 대단한 존재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식물은 언제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에 살기 훨씬 전부터 꿋꿋하게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  아프리카 초원부터 히말라야의 높은 산, 적도의 늪, 깊은 바다에도 황량한 들에도, 시골집 마당 한 모퉁이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라 여겨질 정도로 오랜 시간, 모든 곳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산소를 주고, 약을 주고, 그늘을 주면서. 지구상에 식물이 없었다면, 인간은 결코 지금처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나무와 꽃, 풀, 이파리와 열매가 들려주는 지혜를 배우자. 식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우리의 고민에 대한 조언과 우리에게 닥친 위기에 대한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에게서 포용력과 넉넉함을, 그들의 뛰어난 생산능력과 생존기교를, 그들의 고독과 재활능력을, 그리고 그들의 기민성과 생활력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식물처럼 살기’는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나를 찾는 모험의 여정, 미지 세계로의 항해

씨앗이 퍼지는 순간은 식물이 이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씨앗은 바람이나 물을 타고 멀리멀리 이동하기도 한다. 씨앗의 여행길은 길고 험난하지만 그만큼 더 멋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식물이 인간의 도움 없이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거리는 최대 2,400km라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태계 전역에 자리 잡고 특정한 역할을 해낸다. 바람과 물을 타고 세상 끝까지 이동하는 식물은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 인간이 내륙 바깥의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망망대해로 뻗어나간 것은 어쩌면 식물을 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평평하기 때문에 지구 끝에 이르면 떨어져 죽을거라는 오랜 믿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여행을 떠난 탐험가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식물 종자의 길고 험난한 여정과도 같았을 것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바깥 세계를 동경해왔다. 지구의 뭍과 물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는 지구 밖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삼색제비꽃이나 봉숭아가 폭발을 이용해 씨앗을 밖으로 확 튕겨 내보내는 것처럼 인류 또한 로켓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도 여행을 꿈꾼다.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열정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을 닮아있다.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늘을 나는 철새들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 같지만, 실은 먼 옛날부터 그들의 조상이 기거했거나 거쳐 갔던 지역을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정확히 순례한다. 폭포를 거슬러 강 상류에 이르는 연어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곳에 도착하여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동물들에게는 이러한 ‘귀소본능’이 있다. 하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다. 씨앗을 예측할 수 없는 시련의 길로 내보낸다. 죽음으로 끝날 수도 있는 험난한 모험의 길이다.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식물에게서 온 것일까?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인간의 용기는 식물을 닮은 것일지도 모른다.


♣ 식물처럼 살기, 고고하게 아름답게

식물은 싹을 틔울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식물은 그저 자기 본성대로 떡잎을 키우며 자기 삶을 산다.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험난한 공격과 습격을 받지만 말이다. 때로는 어렵사리 키워낸 잎을 떨구어야 하고 사랑을 위해 피운 꽃이 그대로 시들어버리는 아픔의 시간도 참아낸다.  열매가 바람에 떨어져 버리는 순간에도 식물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식물은 왜 자신이 싹을 냈고, 가지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는지 속상해 하지 않는다. 그저 고고하게 묵묵히 살고 있을 뿐이다. 그저 당당하게 자기 자신 그대로를 산다. 그래서 식물은 제각각 모두 아름답다. 곤충에 갉아 먹힌 이파리도 예쁘고 바람에 꺾인 가지도 멋있다. 바람에 우수수 흩어져 날리는 꽃잎도, 신비롭고 덜 익은 풋열매도 사랑스럽다. 생명이기에, 생명이 지닌 모든 속성과 생명이 겪는 모든 사건을 안고 꼿꼿이 살아가는 식물은 아름답다.


지금 집 밖으로 나가서 나무를 보자. 작은 풀, 발에 순순히 밟히는 잡초를 보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나무둥치의 까진 껍질은 어떻게 생겼는지, 누렇게 뜬 이파리는 왜 그런지, 밟혀서 누워버린 잡초의 기분은 어떤지, 뜰의 조경을 위해 형제인 가지들을 잃은 식물의 심정은 어떤지.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삶이라고. 살아있음에 생기는 일들이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흔히 있는 일이라고. 용서가 그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고 자신을 주는 것 또한 일상일 뿐이다. 그들의 열매와 꽃을 고마워하는 이가 없어도, 그들의 존재를 무심히 지나쳐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식물은 고고하다. 당당하다. 

말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식물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곤 한다. 가장 연약하고 정적인 듯한 그들이, 어쩌면 가장 굳건하고 역동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책 말미에 수록된 식물처럼 살기 위한 11계명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 식물처럼 살기 11계명 ]

     1계명 길가의 풀들에게 시선주고 귀 기울이기

     2계명 신성한 나무, 고귀한 꽃과 희망과 감동 나누기

     3계명 생명의 근원인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기

     4계명 꽃처럼 유혹하고 보답하며 살아남기

     5계명 치밀한 전략전술로 전장에서 이기기

     6계명 다른 생명들과 욕망 나누고 도우며 어울려 살기

     7계명 환경에 자유자재로 적응하고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변신하기

     8계명 하늘을 동경하고 땅에 굳건히 터 잡기

     9계명 순응하고 자족하며 찰나와 영원을 살기

     10계명 모험을 두려워 않고 적절한 때에 가능성의 씨앗을 싹틔워 키우기

     11계명 영혼을 발화하여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기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hmlwh/37331853762/in/photost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