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를 소비하는 현대 사회,
윤태영의『소비 수업』

  • 512호
  • 기사입력 2023.03.27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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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로 이뤄진 현대인의 삶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은 매해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리는 캠페인으로 1992년 캐나다 광고인, 테드 데이브(Ted Dave)가 처음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광고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반성의 의미로 이 캠페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캠페인은 소비가 현대인의 삶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현재 우리의 삶은 소비 그 자체다. 다양한 음악을 소비하고, 스포츠와 예능, 드라마를 소비하며 새로운 공간을 소비한다. 이런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는 소비로도 충분하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유튜브 알고리즘만 봐도 충분하다 할 정도로 소비는 그 사람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이제 굳이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질문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비양식이 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이렇게 언어의 지위까지 획득한 소비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금까지 소비에 대한 관심은 제한적이었다. 막스 베버의 금욕주의적 자본주의가 소개된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소비’는 꾸준히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소비의 의미도 변했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19세기 일반 대중이 노동자가 됨으로써 근대인이 된 것처럼 20세기 이후 대중은 소비자가 됨으로써 현대인이 된 것이다. 소비를 배제하고 현대인의 일상과 그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더불어 소비는 자본주의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꾸준한 생산력의 발전과 이에 따른 과잉 생산은 몇 차례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는데 이 위기는 소비를 통해 비로소 극복됐다. 이는 소비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져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도래했다.


윤태영 교수는 소비가 모든 것이 된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소비 수업: 우리는 왜 소비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무엇을 소비하는가?」를 출간했다.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총 열한 가지 키워드인 "유행, 공간, 장소, 문화, 광고, 육체, 사치, 젠더, 패션, 취향, 사용가치와 기호가치"로 목차를 구성했다. 이 책의 큰 장점으로는 현대 소비 전반을 역사와 학문을 활용해 쉽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소비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베버, 마르크스, 좀 바르트, 보드리야르, 부르디외와 같은 저자들의 이론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소비의 과거와 오늘을 여행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소비 수업」은 소비를 벗어날 수 없는 모든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 상반된 욕망이 만드는 유행


‘소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유행’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유행을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들 중에서 특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서 ‘사회적 균등화 경향’은 모방을 의미하며, ‘개인적 차별화 경향’은 개성을 의미한다. 결국 유행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과,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 중 달라지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모방과 개성이라는 서로 다른 욕망은 유행이 계속 바뀌도록 돕는다. 선도자가 개인적 차별화 경향에 의해 새로운 시도를 하면 다수 대중이 사회적 균등화 경향에 따라 기존 유행을 버리고 선도자의 새로운 유행에 따르는 것이다. 이로써 유행은 다른 형태로 꾸준히 우리 삶에 존재한다.


유행은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유지되도록 기능한다. 작년에 구입한 제품은 현재 유행에 의해 낡고 트렌드에 뒤처진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최신의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한다. 유행은 그렇게 생성과 소명의 과정을 무한히 거듭하며 현대인이 소비하고 또 소비하게 만든다. 이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행은 소비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저자는 개성을 살리기 위해 유행을 따르면 따를수록 개성이 사라지는 몰개성의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성형을 예로 들었다.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맞추고자 한 사람이 성형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성형의 끝은 안타깝게도 자신만의 개성을 잃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이다. 모두 비슷한 미적 기준을 가지고 성형했기 때문이다. 성형에서의 또 다른 문제는 언제까지나 유행에 맞춰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의 기준이 바뀌면 또 다시 얼굴에 칼을 대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다. 이것이 유행에 내재된 폭군적 성격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소비 사회에서 유행이란 개인의 기호 문제가 아니어서 외면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이 부추기는 ‘소망하는 나’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나’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도록 노력하여 유행에 잠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여성이 소비자가 되기까지


본래 사치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사치가 여성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는 300년밖에 안 됐다.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사치가 여성의 영역으로 진입해 발전하게 된 계기로는 신흥 부르주아와 백화점의 등장이 있다.



당시 남성들은 평등과 노동, 검약이라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검은색의 간결한 복장을 주로 입으며 사치에서 물러서 있었다. 이는 당시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청교도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한편 신흥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사회질서의 담지자로서 귀족을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부르주아의 아내가 사치의 영역에서 남편 대신 금권과 사회적 위상을 드러냈다. 여전히 여성의 소비는 남성의 진열창 역할일 뿐 본질이 될 수는 없었다.


진정한 ‘여성 소비자’가 나타난 것은 프랑스에 백화점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다. 1852년 파리의 봉 마르셰 백화점을 시작으로 대도시에 여러 백화점이 등장했다. 백화점은 대리 소비자로서의 여성이 교회나 성당을 제외하고 남성의 동행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최초의 공적 장소가 됐다. 백화점이 가정 밖에서의 여성 활동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과 소비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발전시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봉 마르셰 백화점은 상품 판매에만 신경 쓸 뿐만 아니라 마치 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찻집을 만들었고, 편리하고 안락한 화장실을 제공했으며, 점원들을 교육해 가정의 하인들처럼 여성 고객들에게 잘 봉사하도록 했다. 가정과 같은 백화점은 소비를 여성 활동으로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소비가 가지는 의미]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中


장 보드리야르의 문장에 따라 현대 사회 속 소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닌 기호인 것이다. 「소비 사회」를 읽다 보면 현대인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닌 기호를 소비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소비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이 기호를 소비하고 있다는 걸 아는 소비자는 얼마나 되는가. 소비가 모든 것이 된 시대에서 소비로 우리 사회를 살펴보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 첫걸음으로 「소비 사회」를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