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감정을 선명하게 밝히다’
유선경 라디오 작가의 『감정 어휘』

  • 515호
  • 기사입력 2023.05.16
  • 취재 송유진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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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다면


‘넌 감정적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한가? 아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감정’은 숨겨야 할 골칫덩어리로 ‘이성’은 모든 걸 해결하는 만능열쇠로 여겨진다. 정말 그러한가? 우리는 감정을 숨기고 다스리고 제어해야 하기만 할까? 자기 감정에 솔직하면서 이성과의 균형을 잘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 감정을 마주하지 않아서다. 뭉뚱그려 표현했던 감정들을 부르는 다양한 어휘와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유선경 라디오 작가의 『감정 어휘』를 추천한다.


‘사람의 말소리’를 좋아해 라디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유선경 작가는 30여 년간 매일 <유열의 음악앨범> 등의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썼고 2014년부터 단행본을 집필, 출간하고 있다. 작가로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면서 현대사회에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그녀는 『어른의 어휘력』을 집필하여 큰 공감을 얻었다. 2년 뒤 나온 신작 『감정 어휘』는 ‘세상과 사람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상에 ‘감정’이 결정적이며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해 세밀한 어휘로 표현할 때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정의 진짜 이름을 불러 우리 안 감정을 마주하는 법을 유선경 작가에게 배워보자.


“자신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리지 않고 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으로 구별하고 그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진다. 나아가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각각의 감정은 내 인생의 징후이며 각기 다른 해석과 해결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 나에게만큼은 껍데기 없이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씨도 없듯이, 유선경 작가가 생각하는 ‘창조’는 모두 꽃에서 시작되었다. 꽃은 소우주인 사람의 ‘마음 밭’에 피었는데 이들을 통틀어 ‘감정’이라고 하며 기쁨, 슬픔, 분노, 혐오, 공포, 기대, 신뢰, 놀람 등이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감정’ 꽃에서 시작되었다. 유선경 작가는 사람들의 ‘아무렇지 않은 척’이 감정 꽃을 시들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상처 입은 모습을 타인에게 그대로 보여주면 절대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아 본능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이러한 '척'을 자신의 감정을 남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씌운 껍데기에 비유한다. 더 크고 단단한 껍데기를 씌울수록 감정이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다양한 감정을 체감하는 기쁨도 줄어들 것이다. 껍데기에 막혀 내가 나와 타인과,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올바른 신호를 받지 못한다. 유선경 작가는 ‘감정’이 곧 우리가 갈 길을 알려주는 실마리이며 남들에게 감정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자신에게만큼은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기에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아닌 척하고, 그런 척하고,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를 내려놓고 솔직해지자.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을 느끼는지 인지하고 올바르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삶의 파도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서 그 파도에 가뿐하게 올라타 즐길 수 있다. 유선경 작가는 ‘나의’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나의’ 감정, ‘나의’ 선택, ‘나의’ 결정이 없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리지널(original)’ 삶을 위해 우리는 ‘감정 어휘’를 배워야 한다.


- 아름다운 흉터와 선명해질 흐림

조선시대 명의 허준은 동의보감에 타착불통방(打着不痛方), 즉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은 처방’을 기록해 두었다. 맞기 전에 백랍이라는 약재를 미리 복용하면 통증을 멎게 할 뿐 아니라 지혈하고 새살을 돋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 타착불통방을 처방하곤 한다. 아픈 감정이 우릴 괴롭힐까 봐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긍정적인 감정만 골라서 느끼려 한다. 유선경 작가는 우리는 가능한 모든 감정, 아픔마저도 생생하게 경험하고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감정은 곧 지나가지만, 영원히 떠나거나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오기에 살아있는 한은 꼭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아픈 감정이 찾아올 때, 우린 처음보다 더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느긋하고 평안하게 자신의 삶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에 상처가 없고 흉터가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의 마음에는 상처와 흉터가 없지만 광휘와 내력 또한 없다. 아픔이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노라 마음이 보내는 신호인데 상처도 흉터도 없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 머문 적 없다는 소리가 된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우리는 ‘햇빛이 밝지 못할 때’, ‘잡것이 섞여 깨끗하지 못할 때’, ‘기억력이나 판단력 따위가 분명하지 않을 때’ 등에 대해서 흐리다고 표현한다. 안개는 ‘분명하지 않고 어렴풋하거나 아리송하거나 가물가물하거나 희미한’ 상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은유(metaphor)다. 안개는 온도의 차이가 클수록 더 짙어진다. 이를테면 희망과 현실의 온도 차이라든가, 나와 타인의 온도 차이 말이다. 유선경 작가는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흔들려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것에 흔들려 흐려진다. 그럴지라도 살면서 몇 번쯤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려도 괜찮다. 아니, 내가 나를 흔들어 놓아서라도 흔들려봐야 한다. 비록 흔들리는 동안은 혼란스러울 테지만 키질을 하는 거처럼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맹이만 남을 것이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인생이라는 길을 가야 할지 흔들리고 흐려진 다음에야 선명해진다.”


마지막으로, 흔히 ‘좋다’라고 표현하는 <평안-기쁨-황홀의 감정 어휘>의 진짜 이름 일부분을 소개하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당신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 성품이나 태도가 따뜻하다

정답다/정겹다/다정하다/다정다감하다/자상하다/상냥하다/친절하다/사근사근하다

서글서글하다/살갑다/곰살맞다/온화하다/인자하다


• 마음이 편하고 걱정이 없이 좋다

편안하다/안락하다/아늑하다/무사하다/포근하다/포실하다




▲ 출처: YouTube ‘마이 금희’ [열여섯 번째 밤] 지금이 오히려, 어휘력이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l 어른의 어휘력 북토크 l 유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