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로가 이루는 모두의 이야기
-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 547호
- 기사입력 2024.09.10
- 취재 이주원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608
더 나은 세상은 작은 친절이 모여 만들어진다. 우연한 인연은 때로는 삶의 중요한 순간을 선물하기도 하고, 역경을 극복할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는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상치도 못했던 대상에게서 듣게 된 작고 소박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도 누군가는 깊은 감동을 받고, 그것이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이런 따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써내는 김호연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만화 스토리 작가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소설 편집자로 일하다가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 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는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가 있으며 영화 「이중간첩」(2003) 등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그가 풀어낸 불편한 편의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 산해진미 도시락
염영숙 여사와 독고 씨의 만남은 잃어버린 파우치로부터 시작됐다. 염 여사는 파우치를 가지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그가 있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다른 노숙자들이 자신의 파우치를 뺏어가려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지킨 노숙자는 주인이 맞는지 꼼꼼히 확인까지 마치고 나서야 파우치를 염영숙 여사에게 돌려주었다. 염영숙 여사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상을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례를 거부한 그를 자신의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염 여사는 앞으로 배고플 때 언제라도 도시락을 먹고 가라고 말한다. 그 뒤로 그는 매일 편의점을 찾았다. 제공해 주는 도시락을 먹고 야외 테이블을 청소했다. 염 여사는 새 도시락을 주겠다 말했었지만 그는 시간에 맞춰 폐기 도시락을 먹으러 왔다. 알바 시현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염 여사는 그를 다시 한번 만난다. 염 여사는 노숙자의 이름이 궁금했으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다들 자신을 ‘독고’라 부른다고 답했다.
한편 그때쯤 염 여사의 가장 큰 고민은 매출이었다. 편의점 장사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염 여사는 자신은 교사 연금이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애초에 편의점을 차리게 된 것도 남편의 유산을 처리할 방법을 찾다 남동생의 조언을 듣고 결정한 것이었다. 편의점을 세 개 운영하는 남동생은 편의점으로 돈을 벌려면 최소 세 매장은 운영해야 한다고 했지만 염 여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은 연금으로 충분하고, 이 매장으로 편의점 식구들 생계가 해결된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염 여사에게 편의점에서 일해주는 직원들은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직원만 둘이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시현 역시 시험 준비에 드는 돈을 여기서 벌고 있었다. 염 여사는 줄어든 매출 때문에 망한다면 크게 곤란해질 직원들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평생 사장이나 자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염 여사가 편의점 경영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이 사업장이 자기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걸린 문제라는 걸 깨닫고 나부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야간 알바를 오랜 시간 맡아준 직원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서 상당히 곤란하게 되었다. 알바를 구하기 가장 힘든 시간대였기 때문에 염 여사는 며칠 동안 그 자리를 직접 채웠다. 그러다 술에 취한 불량배들과 대치하게 된다. 그 위험했던 상황은 염 여사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순찰하던 독고 씨 덕분에 해결된다. 염 여사는 그 사건으로 독고 씨가 야간 알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고,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그렇게 독고 씨는 생계가 생긴다.
|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시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다. 직원들을 귀하게 대하는 사장을 둔 그녀는 편의점 일에 만족하며 열심히 근무하는 알바였다. 사장님인 염 여사가 독고 씨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얼마 후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된 독고 씨를 직접 교육해야 했다. 처음엔 꽤 부담스러웠다. 아직 한참 굼뜨고 느릿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에 익숙해져 소통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시현은 참을성을 갖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힘들었지만 독고 씨를 홀로 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굳은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교육이 끝났을 때, 독고 씨는 시현에게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넨다. 유튜브에 포스기 사용법을 올려보라며 자신을 가르친 것처럼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유한다. 처음엔 뭐 하러 그런 걸 하나 싶었지만, 어쨌든 시현 자신이 이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는 것을 곱씹다 찬찬히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게 된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물론 유튜브에는 이미 제각각의 방식으로 설명한 편의점 포스기 사용법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시현의 영상은 단순했지만, 사용법을 실용적으로 익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효용이 좋았다. 게다가 시현은 영상에 달리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기까지 했다.
시현의 영상은 속도가 느려서 좋다는 평을 받았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주는 듯 하나하나 짚어주니 배우기가 쉬운 것이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편안함을 주어 좋다는 댓글도 있었다. 시현 자신이 듣기에는 졸리기만 한 목소리가 누군가에겐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은 시현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를 통해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보람 있다는 걸 체험했고, 자기에게 그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어제도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독고 씨를 생각했다. 그에게 가르쳐주듯 차분히, 천천히, 말하고 움직였다.
어쩌면 노숙자 같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그렇게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아무런 사회와의 끈도 없다고 느끼던 자발적 아싸인 자신이 무언가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독고 씨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결론적으로 시현은 그 영상을 계기로 다른 매장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추가로 새 편의점을 개점할 것이라고 밝힌 다른 매장의 사장은 시현의 말투나 가르치는 방식이 배우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배려한다고 느꼈고,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시현은 점장이자 정직원이 되었다.
『불편한 편의점』의 묘미 중 하나는 챕터마다 시점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같은 상황과 장면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서술하냐에 따라 다르게 바라봐지는 부분들이 아주 재미있다.
너무 오래 굳어져 자신의 일부로 여겼던 결핍도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꼭 큰마음을 먹고 행한 선행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등장인물 각각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소소한 감동이 마음에 쌓이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한권의 책, 『불편한 편의점』을 권한다. 독고 씨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각자 삶의 애환을 어떻게 품어낼까?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에서 이 불편한 편의점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책의 끝까지 함께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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