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펠드먼 배럿
-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549호
  • 기사입력 2024.10.08
  • 취재 이주원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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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당신은 화가 나면 어떤 표정을 짓는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소리 지르는가? 소름 끼칠 만큼 차분해지는가? 아니면 분을 못 이겨 눈물 흘리는가? 같은 감정이라도 이를 표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 속에 각 감정에 대응하는 얼굴은 정해져 있는 하나의 이미지다. 과연 분노하는 표정, 슬픈 얼굴, 기쁨의 표정은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값일까?


노스이스턴대학의 심리학 석좌교수이자, 하버드 의과대학원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정신의학과와 엑스선과 의사로도 재직 중인 리사 펠드먼 배럿은 대학원 시절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에 의심을 싹틔우며 시작된 연구의 성과를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담았다. 저자가 밝혀낸 감정과 뇌에 대한 새로운 과학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함께 알아보자.


저자의 발견은 낮은 자존감과 불안, 우울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이 실험에서 저자는 이미 잘 확립된 증상 목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나 참가자들은 예상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8회 연속으로 거듭 실패했다. 그 때문에 저자는 감정 측정에 필요한 객관적 기준을 찾아보고자 했다.


가장 잘 알려진 기준은 바로 표정이다. 저자는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에 따라 감정을 객관적이며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표정과 감정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려 했다. 감정마다 구별되는 신체 변화 패턴이, 즉 감정의 ‘지문’이 있을 것이라고 그동안의 고전적 견해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발견한 실험 결과는 이와 일치하지 않았다. 수많은 연구를 거듭했지만 근육 움직임으로 감정 표현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이 우리 문화를 통해 창조되었고 우리 모두가 이것을 학습했다는 이야기인가?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다. 모든 과학적 증거를 종합해 볼 때, 감정마다 그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표정이 있다는 주장에는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다. 우리는 감정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인식한다. 같은 신체 변화도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근육 움직임 외에 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감정 지문이 되지 못했다. 대다수 뉴런이 여러 목적에, 하나 이상의 기능에 관여한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확인한 것은 뇌 어느 영역에도 감정에 대한 지문은 없다는 것이었다. 즉, 동일한 감정 범주는 상이한 신체 반응을 포함한다.


| 뇌의 예측과 오류, 수정

저자는 감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뇌의 작동 과정을 분석했다. 시뮬레이션은 뇌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측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깨어 있는 매 순간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여러 잡다하고 애매모호한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때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것을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잡음과 비교한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뇌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잡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즉 뇌는 외부 세계의 자극에 단순하게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뇌는 수십억 개의 예측 회로로 구조화되어 있다.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예측, 그리고 운동 예측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뇌는 이런 예측을 통해 가설을 만들고 감각 입력 데이터에 비추어 검증한다. 그리고 과학자가 기존 가설이 틀렸을 때 이를 수정하는 것처럼, 반대 증거가 나오면 뇌는 예측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수정한다.


깨어 있는 매 순간 우리의 뇌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다만 감각의 원인을 모른 채 경험할 경우 우리는 이 감각을 세계에 대한 경험이 아닌 세계에 관한 정보로 취급할 확률이 높다. 흔들다리 효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위험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에 우리가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공포’가 아닌 ‘설렘’으로 인한 신체 반응으로 해석한다면 정말로 그렇게 인식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뇌가 믿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뇌가 믿는 것이 바로 뇌의 예측으로 구성된 세계다. 우리의 지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직접적이라서 우리는 세계 자체를 경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구성한 세계다.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감정은 당신이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다.”


| 구성된 감정 이론

저자는 우리가 감정을 경험할 때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각할 때마다 감정 개념을 사용해 범주화하면서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구성된 감정 이론의 핵심 주제다. 이때 생물학적 신호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범주화는 신호의 물리적 성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주위 맥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건 개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구성된 감정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범주화에 사용되는 개념들을 서로 동기화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지각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은 공포나 분노 같은 감정 범주가 자연에 실재하는지 아니면 일종의 착각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여왔고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했지만, 감정 개념은 사실 그런 이분법적 구분 밖에 있다. 감정 개념은 사회적 실재로서 신체, 얼굴 등의 특정 변화가 의미 있다고 동의하는 사람들 안에 실재한다. 이것들은 모두 ‘그저’ 인간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지만, 실재한다고 우리가 동의하기 때문에 실재한다는 것이다.



| 감정의 기능, 그리고 재범주화

감정의 첫 번째 기능은 의미를 구성한다는 사실에서, 두 번째 기능은 개념이 행동을 명령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 기능은 신체 예산을 조절하는 개념의 능력과 관련된 것이다. 신체 예산은 예측 회로에 의해 조절된다. 이 예측이 신체의 실제 수요와 만성적으로 부조화하게 되면 신체 예산 관리 회로는 신체가 제공하는 반대 증거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예측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예측이 상당 기간 계속해서 틀려버린다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뇌의 예측이 신체의 실제 경비에 맞게 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뇌의 예측이 알맞게 조정되고 신체 예산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당연한 일이지만,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이 있다. 잘 먹고 운동하고 충분히 잠자는 것이다. 그밖에 할 수 있는 것에는 마사지나 사람 간의 접촉을 통해 신체적 안락감을 조절하는 것이 있다. 요가, 주변 환경-소음이 적고 초목과 자연광이 많도록 주변 환경을 조절하는 것 등도 방법이라고 저자는 제시한다.


감정 입자도는 내면의 감정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를 ‘슬픔’, ‘공포’, ‘우울’, ‘불안’ 등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감정 입자도는 높은 것이다. 감정 경험을 섬세하게 구성할 수 있다면 감각을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범주화할 수 있다.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감정을 재범주화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뇌에서는 이런 감각의 원인을 예측할 것이다. 배탈이 나서 신체가 보내는 메시지의 일종일 수도 있고 “내 삶에서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것은 불편과 괴로움의 차이다. 불편은 신체적인 것이고, 괴로움은 인격적인 것이다. 이럴 때 더 많은 개념을 알고 더 많은 사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재범주화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두고 흥분을 느낀다면, 우리는 이것을 시험을 망칠 것 같다는 해로운 불안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고, 힘이 솟는다는 유익한 예상으로 범주화할 수도 있다. 인식한다면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본 기사는 감정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한 1, 2부와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건강, 감성지능 등에 어떤 실제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한 3부의 일부를 다뤘다. 감정은 보편적인 것일까? 인간은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일까? 우리의 상식, 그리고 고전적 견해를 뒤집은 이 새로운 감정 이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한권의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