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
–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 552호
- 기사입력 2024.11.25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392
공부의 길을 가려면 입시 공부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움을 논해야 한다. 이 책은 넓은 의미에서 공부란 무엇인지 탐색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토론, 배움의 의미를 밝히며 입시나 취업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이야기한다.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작가 특유의 문체와 이야기로 재치 있게 풀어냈다.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공부란 무엇인지 같이 따라가 보자.
작가 김영민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를 연구하며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사설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다른 책으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있다.
1부 - 지적 성숙의 과정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물고 늘어지다 보면, 상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죄송합니다. 오늘치 인내력이 바닥났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주십시오.
철학자들은 일찍이 말한 바 있다, 명료함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고”
명료함은 소통의 기본 요소다. 물론 모든 의사소통에서 명료함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학술 담론에서 이를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국가, 정부, 사회, 공동체 같은 단어들은 유사하지만 다른 단어다. 이들을 일관된 기준 없이 글 또는 대화에서 사용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학술장에서 명료함 없이 내 주장을 내세우면 상대방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남기 때문이다. 반대로 명료함 대신 모호함을 일부러 사용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보통 정치인이거나 예술인이다. 이들에게 모호함은 무기가 되어 상대에게 해석 작업을 넘긴다. 정치인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예술인은 추상성을 내세우기 위해 모호함을 이용한다. 즉 여러분이 문학을 하거나 정치인이 될 것이 아니라면, 교수님에게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하고 있다면 모호함은 잠시 넣어두자.
“말이 재정의되는 일은 한 사회의 마음이 변화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명료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념 정의가 요구된다. 저자는 대머리를 예로 든다. 대머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가령 ‘반짝이는 머리’로 정의한다면 이는 대머리의 정의가 아닌 단순한 비유일 뿐이다. 만약 ‘머리털이 적은 상태’로 정의한다면 얼마큼 적어야 대머리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제가 여전히 남는다. 이렇게 가다 보면 누군가 ‘대머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 그를 대머리라고 불렀을 때 대머리로 간주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개념도 언제든 정의가 바뀔 수 있음을 함의한다. 저자는 사회 다수가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개념은 언제나 재정의될 수 있다고 밝힌다.
“세상은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을 단순화해서 보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들은 대상을 직관적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은 이리 단순하지 않다. “세상 속에 산다는 것은 모순, 긴장, 혹은 혼란 속에 사는 것이다.” 따라서 정교함과 개념 정의를 끝냈다면 경험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 이로 하여금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배우고, 이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삶을 기획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2부 -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
“지식 탐구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가?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 (중략)
대상을 섬세하게 판별하게 되는 일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그에 수반하는 저주도 만만치 않다.
안목이 밝고 섬세해져 대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되면,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도 감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간 몰랐던 더러움도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섬세함은 경험 혹은 지식을 수반한다. 한국인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동양인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지만 서양인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도 백인을 보면 유럽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 섬세한 인식을 기울이는 작업은 고되다. 우리는 살아가며 자신이 매진하는 분야에서 섬세함을 얻기 위해 분투한다. 반대로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학, 철학, 정치학을 특정 짓지 못할 것이고, 게임을 하지 않는 자는 아이템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타자의 영역에서 “섬세함이 왜 필요한데”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에서 무용해 보일지라도 이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사회는 항상 변화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시선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서로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고 각자 분야에서 섬세함을 갈고 닦자. 사람들은 무용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행복과 동력을 얻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만일 당신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라인홀트 메스너(등반가)의 말을 떠올리자.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결핍으로 고통받기는 했지만,
결핍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사는 인생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나직하게 중얼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하는 생애 주기>에서는 작가가 바라는 삶을 풀어냈다. ‘어릴 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운이 가득하기를’, ‘청소년기에는 타고난 육체적 역량을 펼쳐보기를’, ‘외국어를 공부하고 한문이나 라틴어 같은 희소한 문자도 배워보기를’,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운전, 요리 등 자격증을 따보기를’, ‘기초체력을 틈틈이 기르기를’, ‘대학에 들어가서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설득당할 줄 알기를’, ‘명강의를 찾아 들어보기를’, ‘엄하고 깐깐한 교수를 한 번은 만나기를’, ‘중년이 되어서는 내가 가진 결핍을 받아들여 보기를’, ‘노년이 되어서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자세를 가지기를’. 끝없는 배움의 길에서 방황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3부 - 질문과 맥락 만들기
“여러 경험과 생각이 쌓여서 하나의 성체를 이루고 나면,
그 성 내에는 일정한 온실 효과가 발생하여, 이런저런 입체적인 잡생각이 추가로 생겨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견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생각과 경험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덕목이 필요하다.”
수동적인 공부는 재미있을 수 없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자.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괜찮다. 그럴 여유가 없다면 수동적인 공부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독서를 해도 좋고, 내 분야를 깊게 파거나 새로운 학문에 빠져봐도 좋다. 흥미를 끄는 공부는 지속하기 쉽다. 덧붙여 일단 시작하자. 공부는 하기 전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면 크게 힘들지 않다. 겪어보지 않았는가?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책을 읽었다면 서평을 쓸 수 있다. 과제로 서평을 받으면 학생들은 난감해한다. 12년 교육과정 동안 독후감을 써봤지, 서평은 생소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감상과 느낀 점을 작성하는 것이 독후감이라면, 서평은 이를 쓰되, 책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녹여내야 한다. 추천사와는 다르게 책에 대해 비판할 소지가 있다면 여지없이 비판하고 평가도 내려야 한다. 다음은 서평을 쓰는 방법이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한다. 책을 요약하면서 작품의 주제, 구성 등을 살펴본다. 좋은 질문을 떠올리며 이야기 속의 의미를 밝혀도 좋다. 설득력 있는 문체로 잘 그려냈다면 글 완성이다.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책에서 확인하자. 4부는 토론에 대하여, 5부는 현대 사회 속 공부의 의미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독자들에게 저자는 휴식을 주제로 글을 마친다.
“마지막 수업 주제는 휴식입니다.
산악인 존 크라카우어는 어떤 바보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의 길에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중요합니다.”
대학 공부의 이유를 찾고 싶거나 최근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면, 당신에게 이 한권의 책 『공부란 무엇인가』를 추천한다.
“이것이 삶이었나요? 이미 다 지난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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