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한 대문호의 고전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564호
- 기사입력 2025.05.27
- 취재 이정빈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702
★ 《렉스프레스》 선정 2016년 [올해 최고의 그래픽 노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원작 소설에, 프랑스 만화가 마르탱 베롱(Martin Veyron)의 손길이 더해져 그림으로 살아 숨 쉬는 고전이 탄생했다. 고전을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재해석한 마르탱 베롱의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2017년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해바라기상을 수상하며 눈으로 만나는 고전의 힘을 다시금 증명했다.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미국 만화계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코믹스란 단어 대신 이 단어를 씀으로써 만화의 위치를 소설의 권위를 빌려 격상하고자 한 데 의의가 있다.
◀ 레프 톨스토이
“만일 세상이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다면 톨스토이처럼 쓸 것이다.” 20세기 러시아 작가 이사크 베빌이 톨스토이에 남긴 찬사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표작을 펴내며 현실주의 소설의 대가로 유명한 그는 인간 의식을 해체 분석하여 삶의 파편을 살피는 데 탁월했다. 그 방증의 하나였던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프랑스 출신 만화가 베롱의 뛰어난 연출을 통해 시각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톨스토이가 인간에게 배당한 땅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베롱의 그림 세계를 함께 좇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 욕망의 서막
1885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에 수록되어 세간에 등장했던 이 단편은 독자의 뇌리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남긴다. 19세기 러시아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인간과 땅에 대한 이야기로, 가난한 소작농이 거대한 땅을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난한 소작농 바홈은 품앗이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시골 공동체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소유의 땅은 없지만, 농사지을 조금의 땅이 있으면 그것으로 괜찮다는 검소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마을의 대지주였던 백작 부인의 아들이 악질 관리인을 고용하면서 국면이 전환된다. 관리인의 감시하에, 대지주의 땅을 사용하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징벌이 내려졌으며 바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말이나 소가 대지주의 땅에 들어가서 귀리를 뜯어 먹거나 풀밭을 뛰어다니는 날이면 벌금형 혹은 태형에 처했다. 하지만 밤새 내린 눈에 돼지우리 지붕이 내려앉고, 바홈은 이를 수리하기 위해 대지주의 숲에서 잡목을 캐다 검거되고 만다. 잘린 나뭇값을 배상하기 위해 결국 아들마저 대지주의 집에 일꾼으로 보내게 된다.
“가축들이 더 싱싱한 풀을 찾아 목초지로 가는 게 잘못이오?”
“이봐요, 백작 부인은 이 나무가 필요 없어요. 난 필요하고!”
시골은 더 이상 백작 부인의 너그러움으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백작 부인이 관리인에게 땅을 판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은 관리인에게 예속될 마을이 두려워 더욱 고가로 매입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간다. 하지만 돈이 없어 다들 망설이던 순간, 그간 관리인에게 시달려 온 바홈은 유복한 처형 부부에게 빚을 내기로 결정해 새로운 대지주가 된다.
▶ 걸은 만큼의 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면
바홈이 땅을 동반자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지주가 된 바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땅 사는 데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며 이전의 관리인과 닮아간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미움이 늘어가던 어느 날, 정체 모를 나그네가 바홈의 집을 찾아와 ‘바시키르로 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으면 한없이 넓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해준다. 1년 동안에도 다 돌아볼 수 없는 넓이에다 매우 비옥하다는 바시키르의 땅을 얻기 위해 바홈은 선물로 줄 양탄자를 가득 싣고 먼 길을 떠난다.
황무지와 사막, 바다를 건너 도착한 그곳에는 정말로 바시키르가 있었다. 준비해 온 양탄자를 건네며 땅을 달라고 요청하는 바홈에게 족장은 땅이 부족하지 않으니 마음껏 가져가라고 이야기하고, 이 말을 첨언한다.
“아주 간단하다오. 1,000루블만 내면 당신이 하루 동안 걸어 다닌 땅을 전부 가져갈 수 있소. 물론 뭘 타지 않고 걸어 다녀야 하오. 단, 조건이 하나 있소! 해가 지기 전에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은 돈과 땅 모두 잃게 되오.”
바홈은 단돈 1,000루블에 지대한 땅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기뻐하며 밤새 머리를 굴려 계획을 세운다. 한 시간에 5킬로미터는 족히 걸어야 한다거나, 해가 떠 있는 시간은 15시간이니 좋은 지역이 있는 쪽으로 한 변이 12킬로미터인 정사각형으로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등 책의 한 페이지가 생각 주머니로 가득 채워질 정도로 고심한다. 그는 계산 끝에 16,000헥타르의 땅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걷기 시작한 바홈은 계획과는 달리 갈수록 나오는 비옥한 땅에 매혹되어 시간을 놓친다. 해가 지기 전에 원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다가 마지막 언덕을 뛰어오른 그는 결국 도착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족장은 그를 묻은 후 무덤의 길이를 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길이 2미터, 폭과 깊이 1미터 50…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이 정도라네.”
▶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 )이 필요한가
하얀 배경 중앙에 무덤 그림 하나가 위치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계속해서 더 많은 땅을 갈구하다가 무덤이라는 단 2미터의 땅을 갖게 된 바홈의 이야기는, 무언가를 소유함과 동시에 커가는 인간 욕망의 비애를 잘 담고 있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류 탄생 이래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해 온 동반자, 무수히 밟고 서 온 ‘땅’을 소재로 삶을 통찰함으로써 땅에 대한 인간의 주인의식과 물욕에 물음표를 던진다. 책은 인간의 욕망이 낳는 결과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엄중히 경고한다. 21세기의 바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땅뿐만 아니라 ( )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이 소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이러한 이야기를 활자 속에서 숨쉬게 했다면, 베롱은 펜과 붓으로써 인물들을 활자 바깥으로 꺼내었다. 세상에 대해 신랄한 환멸이 담긴 풍자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베롱은 대문호의 소설에 도전했고 수많은 고심 끝에 새롭게 단장한 고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실적인 대화와 생동감 넘치는 손길로 고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관리인의 흉을 볼 때 주점에 담배 연기가 가득한 장면이나, 눈길을 뚫고 바시키르로 향하는 장면, 대책을 논하기 위해 급박하게 모인 장로 회의의 장면은 마치 영화를 보듯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질주하는 장면에서 양가감정을 표현한 대사와 연출이 뛰어나다.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너무 멀리 와버렸네. 어쩌면, 욕심이 과했는지도… 어리석었어. 욕심을 너무 부려서 다 놓치겠다. 자, 힘내자! 빨리 걷는 것만 생각하자. 해낼 거야. 저 가증스러운 태양이 미친 듯이 지고 있네. 빌어먹을 언덕은 가까워지질 않고. 뛰어가지 않으면 다 잃겠다. 돈도 땅도 체면도. 성공적인 인생은 이렇게 뛰는 거지! 더는 안 되겠어, 죽을 것 같아. 됐어! 더 불안해하면 가엾은 심장이 멈출 거야. 미친 듯이 달리자!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부자 인생이 기다린다!"
고전은 거듭해서 다시 쓰이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몇백 년 전 톨스토이의 손에서 탄생한 이 고전은 마르탱 베롱의 손을 거쳐 오늘날에도 가치를 증명한다. 좋은 고전이 후대에도 널리 읽히기 위해서, 원작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한 재해석은 계속되어야 한다.
문학적 깊이와 시각적 감동을 함께 누리길 원하는 이에게, 레프 톨스토이의 필력과 마르탱 베롱의 연출력이 만난 이 한 권의 책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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