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의 순애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 566호
- 기사입력 2025.06.25
- 취재 이정빈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733
“사랑을 나눌 존재가 하나라도 있다면 더는 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으니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기가 막힌 괴담을 한 편씩 써 보자.” 1816년 여름의 우중충한 하늘 아래,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별장에서 시인 바이런이 던진 제안은 한 젊은 여성에게 문학사에 길이 남을 축복을 안긴다. 함께 있던 메리 셸리의 손에서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와 함께 영문학 SF의 효시로 거론되는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것이다. 초판은 1818년 영국 런던에서 익명으로 출간되었으며, 몇 해 뒤 메리 셸리의 이름을 내건 두 번째 판이 출간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에 심취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실험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려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공포 스릴러 SF다. 많은 독자가 책 제목 ‘프랑켄슈타인’을 괴물 이름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가리킨다. 이름 없는 피조물은 그저 괴물로 호명될 뿐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광기 속에서 사랑 없이 태어난 괴물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 17XX년 12월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액자식 구성을 띠며 서신으로 시작된다. 이야기는 북극 탐험가 로버트 월턴 대위가 아르한겔스크 항해를 앞두고 그의 누나 매거릿 월턴 새빌에게 부치는 첫 번째 편지에서 발단한다. 실패한 작가 로버트 월턴은 지식을 넓히고자 북극 탐험에 나선다. 런던에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원정을 떠나온 그는 지금껏 이 항해를 고대했다는 말과 함께, 위대한 모험에 헌신하겠다는 자신의 확고한 결단을 전한다.
첫 편지로부터 8개월이 흐른 네 번째 편지에서 선원들은 항해 중 거대한 인물이 모는 개 썰매를 발견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원들은 사지가 얼어붙고 끔찍하게 야윈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구출한다. 그는 빙원 위에서 선원들이 앞서 관찰했던 거대한 남자를 줄곧 추적해 왔으며 매우 절망한 상태였다. 월턴은 깊은 절망 속에서도 다정하고 친절한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형제처럼 아낀다. 극진한 돌봄 속에서 점차 회복한 프랑켄슈타인은 지식을 추구하는 월턴에게서 자신을 파괴한 강박을 보게 되고, 이를 경고하기 위해 비참한 이야기를 되뇌어 본다. 월턴의 서신은 액자의 틀을 구성하며, 빅터가 월턴에게 전하는 이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 서사의 액자 속 그림이 된다.
|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신비함에 매혹된 광기 어린 과학자였다. 그때쯤 그는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연구에 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당시 하늘의 섭리로 간주되던 질문, 생명의 원리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하여 그는 담대하게 도전했다.
“바로 11월의 어느 음침한 밤에, 노동의 성과를 보게 되었다. 고통스러울 만큼 걱정이 되어 주변에 흩어진 생명의 도구들을 끌어모아, 발치에 놓인 생명 없는 물체에 생명의 불꽃을 주입시키려 했다. 새벽 1시였다. 우울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렸고, 촛불은 거의 타 버렸다. 바로 그때 반쯤 꺼진 희미한 촛불에 느릿느릿 누런 눈을 뜨는 피조물의 모습이 보였다. 그 피조물이 간신히 숨을 들이쉬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프랑켄슈타인』의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티탄으로, 헤파이스토스 이전 장인(匠人)의 신이다.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같이 최초로 인간을 창조했다. ‘선지자’, ‘인간을 창조한 신’, ‘인간의 옹호자 또는 대변자’라는 이명이 있다.
메리 셸리는 과학 실험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했던 프랑켄슈타인을 인간 창조의 신 프로메테우스에게 비유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인간을 향한 사랑이 신의 질서를 거스른 대가였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신의 영역에 도전하며 생명을 창조한 뒤 고통과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창조와 책임의 문제를 되묻는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호칭을 프랑켄슈타인에게 부여한 것은 자신의 창조물 앞에서 책임을 외면한 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 인간을 본떴기에
『프랑켄슈타인』은 괴물로부터 추격당하는 외형을 갖추지만, 그 속은 사랑받고자 하는 괴물의 장문 순애보다. 괴물은 끔찍하고 섬뜩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악인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분노보다 슬픔이 깃든 문장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하나의 요청으로 귀결된다. 시신으로부터 해체되고 조립된 괴물은 인간을 본떴음에도 오히려 인간과 유사해서 더욱 진저리 나는 형상이 되고 만다.
“당신이 그렇게 혐오하는 몰골을 가려주겠다. 그래도 내 말을 듣고 온정을 베풀길 바란다. 아직 남아 있는 선한 마음으로 청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라. 아주 길고 기이한 이야기지. 당신의 예민한 감각은 이곳의 추위를 견딜 수 없을 테니 산 위의 오두막으로 가자.”
괴물은 인간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프랑켄슈타인에게 무릎 꿇고 비는 존재로 등장한다.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나를 사랑해 달라’는 순애보를 구성한다. 탄생 이래 끝없는 고독 속에서 그가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프랑켄슈타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동반자, 여성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 태어난 이상 버려지지 않기를
괴물의 말은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탐문하고 회의하기보다, 태어난 이상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바라지 않은 생명을 떠안았고 세상에 나온 이래 끝없이 죽어 마땅한 존재로서 기피된다. 하지만 끝없이 요구하는 괴물은 동시에 혐오에 거부하고 대항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로써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와 사랑의 관계를 되물으며 사랑받지 못한 존재들의 계보를 드러낸다.
“나를 지켜봐 준 아버지도 없었고, 웃는 얼굴로 나를 어루만지며 축복해 준 어머니도 없었다. 설사 있었을지 몰라도 나의 과거는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공백이었어. 내가 기억하는 한 내 몸집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았다. 나와 비슷한 존재를 본 적도 없고 나와 교류하려는 사람도 없었지. 나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괴물은 자신을 끝없이 거부하는 프랑켄슈타인을 끝까지 보호자라고 칭하며 희망을 거두지 않는다. 괴물의 보호자가 되어 줄 이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을 추천한다.
“하지만 결국 내 보호자들(순진하고 씁쓸한 자기기만이라고 해도 나는 그들을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을 향한 사랑과 존경이 더욱 깊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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