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던 천국으로,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 568호
- 기사입력 2025.07.26
- 취재 이정빈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4599
“나는 천국을 상상한다. 그것이 너무 크기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곧바로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나니, 신이 천국보다는 조금 더 작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기도하면서도 계속 잠으로 빠져들 것이다. 신은 외국어를 할 줄 알까? 신은 외국인도 이해해 줄까? 아니면 천사들이 작은 유리 칸막이 안에 앉아 통역해 주는 걸까?
그리고 정말로 천국에도 서커스가 있을까?”
우리는 모국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자마자 쓰게 될 언어를 선별한 기억이 없음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태어나기도 전에 운명 지어진 나라에서 주어진 언어로 일생의 모든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2외국어’라는 단어로 2위에 머문다. 이런 점에서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의 진가가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여러 언어를 알았지만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했던 이가, ‘자신이 택한 언어로’ 처음 쓴 자전소설이다.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6권으로 출간된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는 루마니아 작가 아글라야 페터라니(Aglaja Veteranyi, 1962~2002)가 독일어로 쓴 데뷔작이자 작가 생전에 출간된 유일한 단독 저서다. 페터라니는 진정으로 느껴 보지 못하면 쓰지 못하는 문장들로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의 깊이를 심화한다. 감정을 선명히 담고 있는 문장들은 독자가 화자의 처지와 사유에 이입하게 한다. 책에 등장하는 곡예, 망명, 난민, 폭력, 소외 등 모든 자극적인 것들은 단순히 어딘가에서 주워 온 글감이 아닌 저자의 실제 경험이기에 전부 사실에 수렴하고, 이는 페터라니의 소설에 고유한 무게감을 더한다.
“어떤 현실은 더 끔찍한 상상을 통해서만 살아낼 수 있다”
|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는 자전적인 글이기에, 저자를 기반으로 한 독법이 요구된다. 이 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났고 유럽을 떠돌며 루마니아어에 이어 스페인어를 익혔지만, 읽거나 쓰지 못하다가 스위스에 정착해 독일어를 스스로 읽고 쓰게 된 이가 쓴 첫 소설이다.
▲ 저자 아글라야 페터라니(Aglaja Veteranyi)
저자 아글라야 페터라니(Aglaja Veteranyi)는 1962년 루마니아의 남부에 위치한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국립 서커스단의 유명한 곡예사였고, 아버지는 인기 있는 광대였다. 이들은 서커스 가족을 이뤄 여러 나라를 떠돌며 공연했다. 어린 나이에 곡예사로 살게 된 페터라니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루마니아어와 스페인어를 익혔고,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스위스에 정착한 다음에는 독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한다. 취리히 연기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받고 배우로 활동하는 한편 작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 페터라니는 동료들과 함께 1992~93년 실험 작가 동맹 ‘망(網)’과 실험 문학 그룹 ‘말펌프’를 꾸려 산문과 희곡, 시 등을 다수 발표했고, 1996년 퍼포먼스 극단 ‘천사의 기계’를 결성하기도 했다. 1999년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을 독일어로 쓰고 펴내 이듬해 취리히 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정신적 장애에 시달리다가 2002년 2월 취리히 호수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에 두 번째 소설이자 미완성작인 『마지막 숨의 선반』 등 유작이 여럿 출간되었다.
| 천국으로 가는 길
“하지만 무엇이 불운을 불러오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가 말하는 거의 모든 것이 불운을 불러온다. …(중략) 가장 아름다운 것들. 공연이 끝난 후 함께하는 식사.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어머니. 새벽에 조용히 일어난 어머니가 내게 이불을 덮어 주며 요리를 시작하는 것. 그을린 닭 털 냄새는 고향이다. 그런 다음 나는 잠에 든다. 어머니가 항상 잠만 잔다면 정말 좋겠다.”
서커스단 가족을 둔 그녀는 곡예사 어머니에게서 언젠가 닥칠 죽음에 대해 깊은 공포를 느낀다. 그녀는 어머니가 머리카락으로 공중에 매달려 허공을 날아다니는 순간마다 추락의 두려움에 떤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어머니가 원형 천장에 머리카락으로 매달려 있는 동안 언니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가 얼마나 아플지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머니가 언제라도 천장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언니는 말한다."
‘폴렌타’란 옥수숫가루와 소금을 물에 넣고 끓여 만드는 죽 형태의 단순한 이탈리아 요리다. 쉽게 말해 옥수수죽, 최소한의 허기를 달래 주는 단순한 요리다. 주인공은 언니의 말에 오래도록 폴렌타 속에서 끓는 아이의 형상을 떠올린다. 그 아이를 상상하는 때만큼은 미칠 듯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페터라니의 끊임없는 발길질이지 않았을까. 그녀의 삶은 무엇보다 상상 속에서만 숨 쉴 수 있었던 현실의 반영이다.
| 작은 말들의 이야기
페터라니의 글에서는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활자를 펼치는 작가가 되레 말을 아끼고, 표현을 축소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작가가 택한 말들의 사이 공간에서 또 다른 말을 발견해야 하는데, 이는 심지어 번역을 통해 이중의 행위가 된다. 작가, 즉 주인공이, 자국과 타국에서 이중의 소외를 겪었듯이 말이다. 작은 말은 보다 쉽게 움직인다. 저자는 말을 몸에 가두려는 소유의 개념을 버리고 실험 속에 풀어둠으로써 이야기가 최소한의 말들 사이를 징검돌 삼아 뛰도록 한다. 최소한의 말들 사이에, 극단적이거나 극단에 닿은 말이 아니라 극단의 자리를 마련해 거기 공간이 있음을 알리는 말들이 저의 자리를 갖는다. 익숙한 언어의 수사에 짓눌려 지내 왔음을 알지 못해 온 이들에게 이 글은 본연의 재료를 상기시킨다.
이 글은 현실 고발을 위한 글이 아니다. 페터라니가 자기 생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꾸밈없이 써내었기에 낯선 빛을 내는 글이다. 툭툭 던져지며 소수됨을 획득한 말들은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떠돌 것이다.
작은 말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페터라니의 천국으로 헤엄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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