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동반하는 상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 570호
- 기사입력 2025.08.26
- 취재 이정빈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4722
“<노르웨이의 숲>을 부탁해.”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1965년, 한 노래가 발매된다. 영국의 4인조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는 ‘앨범 시대’의 포문을 열며 대중 음악계의 판도를 바꾼 비틀즈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Rubber Soul》에 수록되어 세간에 등장했다. 감정의 모순성을 습윤하게 노래하는 이 곡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걸작 『노르웨이의 숲』을 탄생시켰다. 책의 첫 장을 열면 곡의 가사가 쭉 펼쳐지는데, 책의 끝 장을 덮고 나면 씁쓸한 멜로디가 모든 활자를 휘감는다.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난 혼자임을 알았어요. 그 아름다운 새는 날아가 버리고, 난 썰렁한 방 안에서 홀로 벽난로에 불을 지폈지요. 그래도 좋지 않나요? 노르웨이의 숲에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1천 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에서 12위로 선정된 일본 문학의 대문호다. 고요한 문장을 재료로 격동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유럽 체류 시절에 쓴 『노르웨이의 숲』이 430만 부 이상 판매, 베스트셀러로 오르면서 국내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붐’이 일어났다.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 상실의 시대라고 쓰고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읽는다
어떤 이에게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로 기억될 수도 있다. ‘상실의 시대’란 『노르웨이의 숲』에 주어진 두 번째 이름이다. 책이 여러 나라로 발간되어 나갈 때 제목이 크게 번안되곤 했는데, 한국판으로 정식 발매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번안을 거치지 않고 1988년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으나 부진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후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바꿔 재출간한 것이 큰 반향을 불러오게 되었다. 고로, 『노르웨이의 숲』에는 두 이름이 있다.
부진한 판매량에는 당시 시대상이 개입한다. 당시 국내에서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이 퇴폐하고 불건전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가사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1980년대까지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매량이 저조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번안을 거친 것이 큰 효과를 본 것이다.
하지만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안한 제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문학사상사에 제목을 바꿔 출간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도 원제에 예민한 독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를 보였다. 따라서 현재는 원제를 더 존중하여 다시 ‘노르웨이의 숲’으로 표기하고 있다.
| 삼각형의 꼭짓점 하나를 잃다
『노르웨이의 숲』의 세계는 크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일인칭 화자이자 주인공 와타나베, 그의 절친 기즈키, 그리고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다. 책은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으며, 보잉 747 항공기 내에서 들려오는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가 이전의 기억을 헤집게 하는 도화선이 된다. 스튜어디스와의 대화 이후 그가 무언가 써 내려간 내용이 곧 이 책의 전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와타나베가 도쿄의 어느 사립대학 문학부에 갓 입학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오면서 그는 기묘한 기숙사에 살게 되는데, 룸메이트 ‘돌격대’와의 생활을 바탕으로 그의 일상은 흘러간다. 문학을 사랑하는 와타나베와 지리학을 사랑하는 돌격대가 같은 방을 쓰면서 생겨 나는 일화들은, 와타나베로부터 전해 듣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책장 너머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인상을 준다.
와타나베에게는 고등학생 때 유일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즈키다. 기즈키와 와타나베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존재로 많이 의지했기에, 기즈키의 여자 친구인 나오코도 자연스레 와타나베의 일상에 들어오게 된다. 와타나베-기즈키-나오코의 삼각 구도 속에서 그들의 시간은 쌓여 간다.
그러나 기즈키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집 차고에 주차된 혼다 N360 안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삼각형의 꼭짓점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동시에 잃었다. 첫 번째 상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속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그의 죽음이 가져다준 건 아직도 선명하게 내 안에 남아 있고, 그중 어떤 기억은 그 당시보다 오히려 더 선명할 정도니까.
| 죽음 속에서는 새로운 죽음이 태동한다
기즈키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상실로 인해 정신적 결함이 생긴 나오코는 부모님에 의해 강제적으로 교토의 산골에 있는 요양시설인 아미료(阿美寮)에 가게 된다. 아미료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고요하고 자급적인 생활을 하는 곳으로, 전문적 치료보다는 치료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는 시설이다. 그곳에서 와타나베와 소통도 하고 무난히 요양하며 점차 상태가 호전되는 듯싶었으나 증세는 다시 악화한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손으로 허공을 헤집는 등 편지를 쓰는 것조차 못하게 된 나오코는 결국 오사카 병원의 권유로 입원 치료를 결정하게 된다. 입원 결정 후 나오코는 그동안의 삶에 대한 흔적을 정리하기 위하여 아미료로 떠난다.
누군가의 죽음은 곁으로 다가올수록 거대해진다. 거대한 죽음은 살아남은 이를 짓눌러 또 다른 죽음으로 이끈다. 특히 스스로가 정한 죽음을 만나 본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오코는 결국 아미료에서의 마지막 밤, 인근 숲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기즈키를 따라간 것이다. 백옥을 닮은 나오코는 책 속에서 늘 평온했다. 숲과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퍼즐은 서로의 윤곽을 채우기에
인간이 괴롭다 못해 자신의 생명을 끊어 내고 마는 상실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오코가 들어오기 전에 기노시타라는 경리 여직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노이로제로 자살 미수, 도쿠시마라는 간호사는 작년에 알코올 중독이 너무 심해져서 잘렸어." "환자와 스태프를 전부 바꿔도 될 정도네요."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 말대로야." 레이코 씨는 포크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말했다. "자기도 이제 점점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게 된 것 같네." "그런 것 같네요." ”우리에게도 아주 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그런 우리는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거지."
나오코가 생을 마감한 아미료에는 ‘퍼즐’들이 가득했다. 아미료는 단순한 요양원이 아니다. 스태프가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태프와 환자를 모조리 바꿔도 되겠다는 문장에서 느껴지듯 모두가 아픔을 가진 퍼즐이었다.
퍼즐은 서로의 빈 부분을 메우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낸다. 퍼즐과 퍼즐은 서로의 상실을 감싸안는 방식으로 하나의 부분을 완성한다. 상실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오며,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휘감고 만다. 그렇기에 감내하는 일은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불완전한 존재들은 서로의 결핍을 매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퍼즐이 서로의 윤곽을 채워 완성되듯, 인간은 서로의 공허를 보듬음으로써 비로소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결국 『노르웨이의 숲』은 ‘상실 이후에도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사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 우린 서로의 거울이고, 의사도 우리와 같은 동료인 거지. 곁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다가 뭔가 필요하구나, 하고 느껴지면 어느새 다가와서 도와주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그들을 돕기도 해. 그 말은, 경우에 따라선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는 거야.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의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또 다른 환자는 간호사에게 불어를 가르치거든.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야. 우리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엔 전문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꽤 많은가 봐. 그래서 여기서는 모두가 평등해.
결국 상실에는 사랑이 묻는다. 사랑이 상실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이 오는 순간에 늘 사랑이 곁에 있는 것이다. 상실해야만 사랑할 수 있기에, 우리는 주변의 것들을 자꾸만 상실한다. 기꺼이 상실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숲으로 들어가고 싶은 이에게 『노르웨이의 숲』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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