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안(內)을 마중하기,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 574호
- 기사입력 2025.10.27
- 취재 이정빈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387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라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대열에 발맞추어 걷다가도 멈춰 서고 싶을 때가 있다. 뜻하지 않게 만난 거대한 슬픔이 잠식해 올 때에 우리는 발을 끌며 세상의 대열에서 이탈한다. 기다려 주지 않는 초침과 분침 속에서 가끔 우리는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본다. 세상과 나 사이에 시차가 생긴다.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서 김애란은 상실 이후 생활 전선을 떠나와 허공을 헤매는 눈들에 주목한다. 회자정리에 따라 세상에 태어나 만나는 모든 이들은 헤어지기로 정해져 있다. 김애란은 그 정리(定離)에 요구되는 아픔과 시차에 집중해 사람들이 어떻게 영영 자신의 일부를 빼앗기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누어 가진 질문이다. ‘바깥’에 대한 김애란의 집필은 누군가의 ‘안’으로 입장하는 문을 여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 된다.
▶ 입동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바깥은 여름』에는 동명의 소설이 실려 있지 않다.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작가가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여는 단편소설 「입동」은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이 담는 의미를 선연하게 이어가는 작품이다.
「입동」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을 전후로 해서 쓰였다. 이십사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로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이름 붙은 ‘입동(立冬)’. 소설 제목으로 쓰인 절기의 이름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그날에 부부의 모든 시간이 얼어붙었음을 의미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아들 영우와 이별하기 전 아내는 집을 꾸미는 데 열심이었다. 틈나는 대로 ‘좁은 집 셀프 인테리어’나 ‘가구 리폼’ ‘DIY’ 정보를 살피며 실행에 옮겼다. 허름한 아파트를 아늑하게 바꾸기 위해 연신 자르고, 칠하고, 조립했다. 영우 방도 인디언 천막과 스티커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그리고 지난봄,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영우가 숨졌다. 오십이 개월이었다.
튄 복분자액을 가리려 그날 이후로 멀리하던 도배를 애써 시도하다가 벽 아래 영우가 이름을 쓰다 만 흔적을 보고 부부는 다시 무너진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소설은 앞으로 부부가 견뎌내야 할 고달픈 입동 채비를 예감하게 한다. 부부에게 영우가 있는 봄은 영영 오지 않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여전히 상중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 노찬성과 에반 『릿터』 2016년 8/9월호
아버지를 여의고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찬성은 할머니가 일하는 휴게소에서 개 한 마리를 본다. 작고 흰 개가 남자 화장실 옆 화단의 철제 울타리에 묶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개가 남아 있자, 찬성은 가만 놓아두려다 물이라도 주자는 생각에 콜라 컵에 손을 집어넣어 얼음을 건넨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으로 교감한 찬성과 에반은 그날로 함께 살게 된다.
찬성은 에반과 늘 함께 자며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하고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원래도 노견이던 에반에게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다가오고, 아파하는 에반을 동물병원에 데려간 찬성은 에반의 다리에 종양이 있음을 알게 된다. 찬성은 전단 아르바이트로 에반의 안락사를 도울 10만 원이라는 큰돈을 모으지만, 스마트폰 유심과 보호필름, 케이스를 구매하느라 모아둔 돈을 써버린다. 그 후 에반이 실종되고, 휴게소 갓길에 놓인 붉은 자루를 발견한다. 자루 아래로 선홍색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중략)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용서’는 작품 처음과 끝에서 등장하며 수미상관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다. 할머니에게서 처음 들었던 단어, ‘용서’. 에반을 떠나보내고 찬성은 그 단어를 스스로 떠올리며 ‘용서’를 절실하게 느낀다. 찬성은 에반과의 정리(定離)로부터 용서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 찬성의 사랑은 진실했지만 스마트폰과 맞바꾼 사랑하는 강아지의 평안은 이미 떠난 지 오래다. 에반에게 용서를 구하는 찬성의 고해가 메아리처럼 떠돈다.
“능숙한 폼으로 고개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했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 건너편 『문학과사회』 2016년 봄호
하나의 생애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인간의 일생은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버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시절에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인연이라는 뜻을 지닌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도 있듯, 사람은 죽음으로써만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질 때 서로를 뒤로하기도 한다.
「건너편」은 노량진에서 수험 생활을 함께한 연인이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글자 하나로 삶이 달라져 건너편에 서게 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도화와 이수는 수험생 때 만나 8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해 온 오랜 연인이다. 도화는 경찰 시험에 합격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어엿한 공무원으로 바로 서지만 이수는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셔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바쁘디바쁜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어선 안 됐다. 가장 행복해야 할 고요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에 값비싼 참돔회를 먹으며 둘은 이별했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건너편」에서 노량진은 도화 이수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도화와 이수는 노량진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끝맺는다. 저자가 배경으로 선택한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은 실제로 취업과 공무원 시험 준비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공무원 시험을 모두 준비할 수 있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학원이 많다. 인생을 갈아 넣는 수험 생활이 펼쳐지는 노량진의 연인. 합불이 갈라놓을 수 있는 현대적 사랑이 서글프다.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저 '시간' 혹은 '인생'으로 뭉뚱그려 부를 수 있을 것들을 굳이 이십사절기로 자르고 입춘, 동지 등 세세하게 이름 붙인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런 식으로 시간과 화해하고 죽음 혹은 무의미를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김애란이 안으로 입장하는 문을 연 까닭은 시간과 화해하기 위해서다. 우리를 멈춰 세우는 수많은 이별에도 우리는 기어코 시간과 화해하고 발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회자정리에는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이 짝으로 늘 함께한다. 이승에서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세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아야만 하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 『바깥은 여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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