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람, 삶은 무엇인가"
— 『자기 앞의 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 578호
  • 기사입력 2025.12.22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917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인생의 맛은 정신 나간 사람만이 알고 있지.”


사랑은 어디까지 가능한 감정일까.

혈연이 아닌, 국적과 종교도 다른 두 사람이 끝까지 함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다가올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에서 여전히 ‘살아 있음’을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인가.

『자기 앞의 생』은 이처럼 본질적인 질문들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등장인물과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든다. 프랑스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한 소년과 노년의 여성이 나누는 일상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평소에 잊고 살기 쉬운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랑과 존엄, 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삶의 끝에서 대체 무엇이 남는지 묻고 싶다면,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어보자.


| 작가 로맹 가리, 그는 누구인가

『자기 앞의 생』의 저자 로맹 가리(Romain Gary)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19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유럽을 전전하다 1927년 프랑스에 정착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쿠르상을 두 차례 수상한 것은 로맹 가리가 유일하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 정체성 문제를 일평생 탐구한 사람이다.



|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사랑과 존엄

이 책의 이야기는 파리 빈민가에서 성 노동자 출신 노인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져 자란 아랍계 소년 모모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늙은 유대인 로자 아줌마와 아랍인 소년 모모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 사랑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인 로자 아줌마는 병들어가고, 모모는 자연스레 성장해 간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에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놓인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빈민층, 노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이민자, 성 노동자 등 소외됐던 이들은 그의 소설에서만큼은 비극의 장치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조건이다. 그는 화려한 언어 대신 소년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독자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로맹 가리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목숨만 남았을 때’ 삶이 얼마나 비좁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살아 있음 그 자체보다,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모모를 살아가게 만드는 건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생명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 로자 아줌마의 행복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었다.


| 삶보다 오래 남는 것들

『자기 앞의 생』에서 사랑은 이상적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로자 아줌마는 병들고 늙었으며, 기억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이 책은 또 한 번 묻는다.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남을 수 있는가.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의 본질을 함축한 문장이다. 사랑은 상대가 완전할 때만 가능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불완전한 순간에 비로소 그 의미가 완전해지고 힘이 발현된다. 이처럼 로맹 가리는 사랑을 ‘함께 견디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의 사랑은 마냥 아름답기보다 불편하고, 그만큼 현실적이다.


|  사랑, 사람,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사랑을 쉽게 정의할 수 없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삶의 끝에서도 인간다움을 잃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자기 앞의 생』을 추천한다.

이 책은 연민과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감동을 설계하고 있지도 않다. 대신 독자에게 반복해서 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끝까지 붙잡고 싶은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사랑은 어떠한 모습일까?

『자기 앞의 생』은 빠르게 읽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그 여운은 독자의 삶 앞에 조용히 놓인다. 지금,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균인들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