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동남아』가 먹여주는 맛있는 이야기 한 입

  • 584호
  • 기사입력 2026.03.22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516

동남아시아를 ‘관광지’가 아닌 ‘이웃’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음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읽어보고 싶다면


우리는 동남아시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행지로는 익숙하지만, 그곳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까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이자, 경제·문화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숙한 지역이다. 대학생들도 방학마다 방문하고, 대학 근처에도 동남아 음식점이 즐비하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동남아는 보통 ‘저렴한 물가’나 ‘휴양지’ 같은 이미지에 그치곤 한다. 

단지 관광객, 외부인의 단편적인 관점을 넘어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어떨까.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쉽고 생생하게 이해할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을 음식에서 찾고 싶다면, 현시내의 『미식 동남아』를 추천한다.



| 음식을 통해 역사를 읽는 법, 현시내에게서 배우다

『미식 동남아』의 저자 현시내는 동남아시아 지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에서 동남아시아 지역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오랜 시간 현지 조사와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이 지역을 연구해 왔다.

특히 저자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음식’이라는 일상적 매개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직접 요리하고 먹으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국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풀어낸다.

동남아시아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현시내가 제시하는 ‘미식의 시선’에 주목해 보자.



|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는 음식, 그리고 문장들

『미식 동남아』는 24가지 음식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역사와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고립된 지역은 음식도 만날 수 없다. 음식이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얼마나 밀접한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


이 문장은 음식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어떤 음식이 어디에서 소비되는지는 해당 국가의 노동, 이주 등 다양한 사회 영역과 깊이 맞물려 있다.


또한 저자는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역사적 층위를 강조한다.


“오늘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쌀국수 한 그릇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역사의 여정이 녹아 있다.”


익숙한 음식일수록 그 이면의 역사는 더 쉽게 간과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음식이 식민지 경험, 전쟁, 분단과 같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고렝


| ‘다양성’을 버무린 음식들

“다양성 속의 통일성(Bhinneka Tunggal Ika :인도네시아 공식 국가 표어)”

인도네시아의 대표 음식 ‘가도가도’는 다양한 재료를 하나로 섞어내는 요리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조리 방식이 아니라, 역사적 혼합성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동남아시아는 인도, 중국, 아랍, 유럽 문화가 교차하며 형성된 지역이다. 식민지 경험과 무역, 이주가 반복되면서 음식 역시 다양한 요소를 흡수했다. 가도가도가 여러 재료를 땅콩 소스로 버무리듯, 이 지역의 문화 역시 충돌이 아닌 ‘혼합’ 속에서 발전해 왔다. 음식은 그 과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다.


▲소토아얌

▲론통, 가도가도(왼쪽), 망고스틴, 수박(오른쪽)


| 한 끼 식사에 담긴 삶의 조건


“인도미가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음식이 단순한 기호를 넘어, 삶의 조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간편식 ‘인도미’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생존과 직결된 음식이다.

또한 필리핀의 ‘빤싯’, ‘할루할로’와 같은 음식은 단순한 요리를 넘어, 식민지 경험과 산업화, 계층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처럼 『미식 동남아』는 음식이 개인의 취향을 넘어, 사회 구조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준다.


▲인도네시아의 밤하늘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여행을 ‘경험’에서 ‘이해’로 확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미식 동남아』는 단순한 음식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해 온 동남아시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한 그릇의 음식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이 지역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가볍게 읽히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이야기, 재밌게 읽히지만,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

『미식 동남아』는 우리를 순식간에 동남아의 식탁 앞으로 데려가 주는 작지만, 묵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