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읽고 있는가 『절창』
- 590호
- 기사입력 2026.06.23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398
“무용하면 무용한 대로 다만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읽기 아닐까요. 읽기의 자리에 살기를 넣으면 어떻습니까.”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충격을 안겨주는 책 『절창』.
| 경계를 읽는 작가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구병모는 2008년 장편소설 『위저드베이커리』로 등단한 이후 『파과』, 『아가미』 등의 작품을 쓰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가다.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를 구축해 온 그에 대해 일부에선 긴 문장과 생소한 어휘가 어렵다는 평도 존재한다. 쉽게 읽히기를 거부하며 독자의 발걸음이 평탄하지만은 않게 만드는 그의 고집은, 효율성과 효능감만을 따지는 세상 속에서 무용한 과잉의 가치를 논하는 해당 작품에서 깊이 드러난다.
▲ 『절창』표지. 출처: 교보문고
| 상처를 읽는다는 것
그런 그의 신작 장편소설 『절창』은 누구보다 드넓은 문학적 영토를 지닌 구병모의 그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도 만족시킬 만하다. 제목인 ‘절창(切創)’은 칼 따위에 베인 상처라는 뜻을 품고 있다. 소설은 상처에 접촉하는 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우리의 언어로 쉬이 정의 내릴 수 없는 특별한 사랑, 관계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깊은 물밑에 자리한 상대의 생각을 읽는 일이 그 복잡성과 가변성으로 인해 대체로 오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전제한다. 결국 소설은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타인’이라는 영원한, 동시에 불확실한 텍스트를 독해하고자 하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근원적인 불가능성과 가능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아간다.
|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작가는 거듭된 곡해 속에 난파된 말들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뗏목의 파편 하나를 발견하여 올라타는 것을 가리켜 ‘사람 사이’, 즉 인간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인간이란 서로의 사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암실 속에서, 서로를 헤아린다는 거대한 착각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상식과 사회적 합의라는 선에서 타인을 ‘당연하게’ 재단하려 할 때, 소설은 타인의 이야기가 내 상식의 껍질을 벗겨내는 생경한 경험을 선물한다. 상대의 과거와 상상이 상처를 통해 맥락 없이 온 감각기관으로 밀려올 때,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결국 이 소설은 상처 없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타인 혹은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공존해야 하는 비극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 비극을 묵묵히 견디는 것 자체가 인생의 전부임을 말한다.
| 읽는 것의 과잉이란 존재하는가
이토록 지독한 타인과의 비극 속에서 ‘읽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오늘날의 독서는 각종 시험 대비나 결과로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의 효능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책 속의 한 인물은 이와 같은 효율 중심의 사고가 인간이 지닌 ‘무용한 과잉’에 대한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행위의 목적은 세상에 만연한 쓸모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 있다. 쓸모만을 따진다면 인간의 살아 있음 자체가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초과하고자 하는 마음, 즉 배움의 과잉은 인간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넘쳐도 해로울 것이 없다. 진학이나 승진 같은 실용적인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배움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 읽기, 나아가 인간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보통은 책을 읽고 난 뒤 인생을 뒤흔들 만한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무용하면 무용한 대로 다만 그 읽기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읽기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 ‘읽기’의 자리에 ‘살기’를 대입해 보자. 즉각적이고 거대한 효능감이나 눈부신 성취가 없을지라도, 삶을 다만 이어가는 것 자체가 곧 살아감이다. 이 책 속에서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세상에 드러나려면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듯, 우리 역시 삶의 무수한 밤을 통과하며 상처를 통해서만 겨우 타인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른다.
거듭된 곡해 속에 난파된 말들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뗏목의 파편 하나를 발견하여 올라타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사람 사이, 즉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서로의 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암실 속에서 서로를 보고 듣고 헤아린다는 착각과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적 현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p63
학점과 취업이라는 선명한 효능감의 요구 속에서, 때로 오독하고 방황하며 자신만의 암실에 갇힌 느낌을 받는 성균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절창』이 건네는 무용한 과잉의 문장들이, 당신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삶을 이어가게 할 뗏목의 파편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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