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며 시나브로 쌓여가는 나를 마주한다
『내가 되는 꿈』

  • 592호
  • 기사입력 2026.07.26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224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은 부분은 존재할 테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마치 만난 것만 같았다.

문장 속에서.

과거의 나를.”


이 작품은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나’라는 가깝고도 먼 존재를 읽어내는 깊은 여정을 다룬다. 효율과 성취만을 촉구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대신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며 편리한 ‘지름길’을 택하곤 한다. 하지만 뻔한 대답을 듣지 않으려면 뻔한 질문을 피해야 하고, 뻔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되는 꿈』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소외되었던 내 안의 수많은 ‘나’와 대면하기 위해, 효율적이기만 한 지름길을 벗어나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제시한다.



| 서정적이고 담담한 문체로 상처를 직시하는 작가, 최진영

최진영은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의 두터운 신뢰를 받아온 소설가다. 그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바래지 않는 인간 고유의 온기와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구의 증명』의 작가이기도 하다. 최진영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또 단단한 문체는 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모른 척 덮어두지 않고, 오히려 맑고 분명한 언어로 투명하게 직시하도록 만든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을 향한 깊은 관심은 『내가 되는 꿈』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며,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번갈아 비춰보게 만든다.


| 책의 줄거리

부모와 떨어져 외가에서 자란 주인공 태희는 자신을 키워주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외면해 왔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엄마, 자신을 방에 얹혀사는 식객 취급하며 분풀이하던 이모, 모욕감의 뜻을 알게 해준 친구 순지, 그리고 폭언을 일삼던 담임까지, 태희의 과거는 오롯이 상처로 점철되어 있다.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픔 속에서 방황하던 어린 태희는 한 장의 편지를 써 우체통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태희의 자취방에 거짓말처럼 그 편지가 배달된다. 소설은 펼쳐보지 않으면 끝내 화해할 수 없는 과거의 나를 비롯해, 꼬여버린 모든 관계를 되돌아보기 시작하는 태희의 내면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엉킨 목걸이처럼 던져두었던 해묵은 질문을 어린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소리 없이 스며들며 오랫동안 외면해 온 삶의 지난 장면들을 강렬히 마주하게 된다.


| 생각 무덤, 그리고 무거운 책가방의 의미

이 책의 이야기는 중학생 시절 주인공만의 특별하고도 통찰력 있는 이론들을 통과하며 단단해진다. 일례로 ‘책가방론’이 있다. 어른이 되어 지구처럼 어마어마한 돌멩이를 짊어지기 위해 학창 시절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근육을 단련한다는 이 이론은 청춘이 감내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를 역설한다.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주워 거기에 생각을 가둬 버린다. 그리고 외갓집 앞에 버린다. 점점 쌓여 가는 나의 생각 무덤. -p108


사춘기의 한가운데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마다 나뭇가지나 돌멩이에 생각을 가두어 외갓집 앞에 버리던 ‘생각 무덤’의 일화는 불안한 유년기의 기록이다. 주먹보다 작은 돌멩이에 “엄마도 나도 행복하지 않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체념을 가두고, 거친 나뭇가지에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불행하다고 말하기는 쉽다”라는 깨달음을 묻는 아이의 행위는, 아픈 상처를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며 통과해 온 우리 모두의 서툰 계절을 고스란히 복원해 낸다.


|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반추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옷이나 양말 대신, 정확히 나의 이름이 적힌 일기장과 편지처럼 남들에겐 종이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로 비로소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것만이 나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특정 물건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은 그 자체로 중요해진다고. 언젠가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물건을 보며 간신히 나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 이모와 함께 무작정 떠난 주인공은 비 내리는 바다를 마주한다.


운동장에 내리면 흙이 젖고 도로에 내리면 아스팔트가 식지만, 바다에 내리는 비는 그저 바다가 될 뿐이다. 무수한 물방울이 거대한 물에 합쳐질 뿐이다. 대체 무슨 소용이지? 물은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는 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는 게?

....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p165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는 자각. 그러나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이기에, 섞인다고 해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을 다시 겪고 또 아파할지라도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언은, 결국 같은 나이더라도 조금씩 바뀌는, 인물들의 성장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 정답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지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오답을 고르며 방황한다. 하지만 소설은 나직하게 위로를 건넨다. 시험의 정답이 언제나 지문 속에 있듯, 삶의 정답은 다름 아닌 ‘시간’ 속에, 수많은 ‘실수’ 속에, 그리고 깊은 ‘침묵’ 속에 숨겨져 있다고 말이다.


정답은 지문 속에 있다. 그 문장에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며 '지문' 대신 넣을 수 있는 단어를 생각했다. 정답은 시간 속에 있다. 정답은 실수 속에 있다. 정답은 침묵 속에 있다. 정답은….

-p179



이 책의 끝물에 어른이 된 주인공 태희가 과거의 일기를 빠르게 훑어 내리는 행위는 단순히 흘러간 날들을 후회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은 사람일 수는 없을지라도, 문장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변치 않은 내면의 본질과 화해하고, 또다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드는 유의미한 만남이다. 『내가 되는 꿈』을 읽는다는 것은, 태희라는 한 인물의 서사를 거쳐 마침내 내 안에 갇혀 있던 진짜 나를 꺼내는 일, 흐르는 시간 속에 온전히 세워두고 마주하는 일과 같다.


|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내고 싶은 성균인들에게

학점과 취업이라는 세상이 정해놓은 거대한 돌멩이를 짊어진 채, 다양하게 방황하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탐구할 시간조차 부족한 성균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지금 우리가 메고 있는 책가방이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우리가 지나온 실수와 침묵의 시간은 절대 무용하지 않다. 외부에서 규정한 지름길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스스로 쓰인 문장 속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보길 권한다. 비 내리는 바다를 본 뒤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 수 있듯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들 역시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되는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