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계의 틈새 사이로, 『호러』

  • 593호
  • 기사입력 2026.08.13
  • 취재 정수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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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여름밤을 견디기 힘들어지곤 할 때, 사람들은 유독 서늘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그러나 공포는 단순히 귀신이나 괴물처럼 명확한 모습을 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매일 지나치는 이웃이, 익숙한 집이,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적인 장소가 낯선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 그곳에서 공포가 시작된다.


공포가 가장 극대화될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포착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움직여 종적도 행방도 불가해할 때입니다.


코로나의 창궐로 인해 우리는 아무리 익숙해져도 항상 어느 정도 수준의 미지를 품고 있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얼굴의 반절을 가리는 마스크를 쓴 채로 마주하는 사람들, 사람들로 북적이곤 했으나 이제는 텅 비어버린 지하철, 그리고 언제 이러한 재난 상황이 끝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속 우리는 ‘미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낯선 재난이 일상을 뒤흔들던 2021년 출간된 <안전가옥 시리즈>의 여덟 번째 앤솔로지 『호러』는 바로 이러한 미지에서 오는 공포의 감각을 포착한다. 익숙했던 세계가 낯설어지는 순간, 일상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


『호러』표지


▶ <습습 하>, 김혜영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지만, 정작 얼굴도 모르는 채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이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이다. <습습 하>는 일면식도 없는 옆집 여자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며 발견하게 되는 그녀의 비밀을 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익숙한 공포를 선보이는 작품이다.

큰 평수의 한 집을 반으로 나눈 집주인 탓에 ‘나’, 그리고 ‘나’의 룸메이트는 모르는 옆집 여자와 함께 전기 요금을 내는 사이이다. 바쁜 이웃 대신 늘 고지서를 먼저 확인했던 ‘나’는 옆집 몰래 5,000원을 빼돌리고 있었으나, 어느 날 우편함에 버젓이 꽂혀 있어야 할 고지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나’와 룸메이트는 혹시 옆집 사람이 고지서를 먼저 가져가 여태까지의 횡령을 눈치챈 것은 아닐지 불안해한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나’의 룸메이트는 옆집에 몰래 들어가 고지서를 챙겨 나오자고 제안한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자는 무시무시한 제안을 ‘내’가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며 들어가게 되는 옆집 사람의 집 안에서 공포는 시작된다. 익숙한 문 너머 공간에 숨어 있던 이웃의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던 미지가 얼마나 섬뜩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 <우리 안에>, 권하원

권하원 작가의 <우리 안에>는 당시 코로나라는 재난 현실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순간에 닥쳐온 재난과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 상황의 불확실성을 다루는 이 단편에서는 한 부부가 살아가는 도시를 덮친 ‘괴물 쥐’라는 재난,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다각적으로 비춘다.

아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햄스터들에 대해 항상 일종의 불만을 품고 있던 ‘나’는 언젠가부터 도시에 나타난 쥐들에게서 이들을 겹쳐 보게 된다. 단순히 허술한 방역 탓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겼던 쥐들의 출몰은 이들이 점점 몸집을 키우고,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어린이부터 심지어 건장한 성인 남성까지도 공격하면서 점점 우리가 아는 일상의 경계를 침범하는 재난 상황으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우리 안의 햄스터, 그리고 우리 밖의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던 인간들의 관계가 전복되는 순간, 집 안에 틀어박혀 갇히게 되는 존재는 인간이 된다.



마치 햄스터들이 굴을 파고 들어가듯, 재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은 스스로 밀실을 만들어 그 안으로 몸을 숨긴다. ‘나’와 아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리’라는 밀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고자 하지만, 저자는 “그 밀실이 파괴된다면, ‘우리’가 파괴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안에>에서는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가 파괴되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다.


▶ <편의점의 운영 원칙>, 경미선

일명 ‘나폴리탄 괴담’이라고도 불리며, 독자로 하여금 의미심장한 수칙들을 따르기를 종용하는 괴담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편의점의 운영 원칙>은 심령 스팟으로 유명한 편의점의 기이한 근무 수칙서, 그리고 그 수칙서의 내용을 하나하나씩 되새겨 가며 야간 근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인공의 반나절 간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새 물건을 진열하기 전 걸레로 냉장고와 진열대를 청소할 것”, “물건 진열이 끝나면 창고의 컴퓨터로 정산 및 검수 작업을 할 것”과 같이 여느 편의점과 다르지 않은 기본적인 운영 원칙들뿐만 아니라 “화장실의 모든 창과 거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지 말 것,” “40분 넘게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면 비상 상황이므로 일단 자리를 뜰 것”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불길한 항목들이 적혀 있는 수칙서를 읽어 내려갈수록 평범해 보이던 편의점은 점점 낯선 공간으로 변하고,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무엇을 믿고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모르는 미지의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익숙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호러』 속 쥐와 이웃,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드러나는 미지의 얼굴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평범한 일상, 그리고 그 속의 균열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든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후덥지근한 하루하루에 질려 있는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뒤틀어 주는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