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피로를 이야기한 책
피로사회-한병철

  • 483호
  • 기사입력 2022.01.14
  • 취재 박창준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1730

- 유난히 피로한 당신에게


현대 사회는 피로하다.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리며 꼭 뒤를 돌아보지 말라곤 한다. 물론 이는 과거에 대한 후회에 깊이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하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피로한 사회는 성별, 나이, 신분과 관계없이 공평히 작용한다. 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피로에 찌든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피로한가?”


철학가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는 이전 세기와는 다르게 변화한 모습의 현대 사회에 대해 다룬다. 특히 성과사회를 긍정성이란 키워드로 설명하는데, 이번 이 한권의 책에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 속 피로를 이야기한 책 ‘피로사회’를 소개하려 한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책은 시대의 특징을 질병에 빗대며 시작한다. 질병은 전염성 질병과 경색성 질병으로 나뉜다. 전염성 질병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등 면역학적 공격을 본질로 하며, 경색성 질병은 우울증, 주의력결핍 등 면역학적 기제로 방어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전 세기는 규율사회이자 면역학적 시대였다. 즉, 면역학적 기제가 외부의 박테리아를 공격하며 방어를 이루어 내듯, 산업혁명을 거친 후인 현대 사회 이전 시대는 이질성과 타자성을 제거하며 강제와 지배를 주된 착취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강제, 금지, 거부와 같은 부정성의 수단이 주가 된다. 따라서 규율 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우리의 현대 사회는 바로 성과사회다. 면역학적 방식과 타자 착취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한계를 맞으며 자기 착취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능력, 자기 주도, 과잉으로 이루어진 성과사회는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을 따르며 사회의 피로를 야기한다. 이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망가뜨리는 피로 사회를 가져온다.


긍정성의 과잉 현상은 규율 사회의 부정성과 대비된다. ‘해서는 안됨’으로 대표되는 부정성은 현대 사회의 무엇이든 ‘할 수 있음’으로 대체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과 성과의 과잉은 자기 착취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성과주체가 겪는 자기 착취는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에 이러한 역설적인 자유는 탈진과 피로를 낳는다. 결국 긍정성의 과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이들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된 이런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긍정 과잉 속에서 ‘할 수 있음’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칫 피로와 우울을 유발할 수 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돌이켜 생각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긍정적 힘은 계속 생각해나가기만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색적 삶을 되찾아야 한다. ‘할 수 없음’을 인정하여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깊은 심심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할 수 있음’ 속에서 찾은 하나의 치유제는 바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던 것이다.


128페이지의 얇은 두께와 작은 크기를 지닌 ‘피로사회’는 앞만 보고 달리는 상당수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리는 우울증이 억압, 타자의 부정적 신호 등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서는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의 과잉에 의한 탈진과 소모가 심리적 불안정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목표를 두고 스스로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우리는 피로하다. 또한 피로해서 우울하다. 그 상대는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이라는 것이다. 피로사회 속에서 멈추어 사색하며 각자의 피로회복제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